나한은 어떤 인물인가?

독성, 16, 500나한 예경
예불 칠정례에도 포함돼
중생들 염원 듣는 존재

불보살상 도상 근거 있다면
나한상은 해학적 모습 넘쳐
부처님 “복전이 될 것” 命해


▲ 은해사 거조암의 5백나한. 나한들의 모습에서는 개성과 다양성이 넘친다. 이들이 이런 다양한 모습을 가진 것은 중생의 염원을 듣는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부촉 받은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아라한께 절하옵니다. (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付囑 十大弟子 十六聖 五百聖 獨修聖 乃至 千二百 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이지만 아침저녁 삼보에 예경을 할 때 영취산에서 부처님의 법을 부촉받은 10대 제자, 십육 아라한, 오백 아라한, 그리고 천이백 아라한에게도 빠짐없이 예경한다. 뿐만 아니라 나한을 위한 전각도 존재한다.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각에는 한분, 열여섯 분, 많게는 오백 분까지 아라한을 모신다. 열여섯 아라한의 대표로 빈두로존자만 모신 전각을 독성전이라고도 하는데, 때로는 산신 및 칠성여래와 함께 삼성각에 모시기도 한다.

나한(羅漢)이란 아라한(阿羅漢, Arhat)의 준말이며 원래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부처님의 십대 명호 중 하나가 이다. 아라한이란 번뇌를 모두 끊어서(살적, 殺賊) 진리에 계합하였으므로(응진, 應眞) 미망에서 벗어나(이악, 離惡) 다시 생사윤회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으며(불생, 不生) 수행을 완성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므로(무학, 無學) 사람과 하늘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존귀한 성자(眞人)이며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춘(응공, 應供) 존재이다.

최초의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그의 제자들도 네 가지 수행의 단계(四果)인 예류과(sota-apanna), 일래과(sakadagamin), 불환과(anagamin)를 거쳐 마지막 아라한과(arahat)를 성취한 성인들이다.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불보(佛寶)로서 최고의 예경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그 제자들은 비구 아라한, 다시 말해 승보로서 간주된다.

나한은 단일한 신앙의 대상으로도 모셔지지만, 16나한, 18나한, 500나한, 1200나한 등 집단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500이나 1200이라는 숫자는 부처님 제자들의 숫자를 말하는데, 제1차 결집 때 500명의 비구들이 모였다고 하여 ‘오백 나한’이라고 부른다. 오백 나한의 경전적 근거는 〈증일아함경〉, 〈십송율〉, 〈법화경〉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십육나한 신앙의 소의경전은 스리랑카의 난제밀다라 존자에 의해 불멸 후 800년경 만들어져서 654년 당나라 현장 스님에 의해 번역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題密多羅所說法住記)〉이다. 〈법주기〉에 나오는 십육나한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빈도라바라타사존자  2. 가락가발사존자 3. 가락가바리타사존자 4. 소빈타존자 5. 낙구라존자 6. 발타라존자 7. 가리가존자 8. 벌사라불다라존자 9. 술박가존자 10. 반탁가존자  11.라흐라존자 12. 나가세나존자 13. 인갈타존자 14. 벌라바사존자 15. 아시다존자 16. 주다반탁가존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16나한과 500나한의 조상이 조성되었으며 전각의 이름도 모시는 존상의 수효에 따라 독성각, 십육전, 오백전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에서는 재미있게도 십육나한에 중국의 포대화상과 재가불자인 다르마칼라가 더 해져서 18나한이 신아는 숙명통과 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의 이상인 아라한을 대승불교에서 받아들여 예경의 대상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라한은 수행을 통해 삼명과 육통, 팔해탈이라는 비범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성취한 자들인데, 그 능력이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전생을 다 사람들이 지은 업에 따라 죽은 뒤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지를 아는 천안통, 모든 번뇌를 제거하여 해탈을 얻는 누진통, 그리고 원하는 대로 몸을 바꾸고 장애 없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신족통,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인 천이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타심통까지, 슈퍼맨도 모르는 능력이다.

▲ 운문사 오백전의 5백나한.
특히 첫 번째 나한인 빈두로파라타는 목련존자와 더불어 부처님 제자들 중 신통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정하고 조신한 다른 제자들과 달리 그는 약간의 객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왕사성에 머물 때 목련존자와 함께 탁발하러 나갔다가 어느 부유한 상인이 긴 장대 끝에 나무 발우를 걸어두고는 신통력을 사용하여 그것을 가져간다면 주겠다고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귀한 나무로 만든 그 발우를 가지고 싶어 했지만 장대에 오르지 못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자 빈두로 존자가 목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통력을 사용하여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한 손으로 발우를 들고 공중에서 왕사성을 세 번 돌면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부처님은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신통을 자랑하면 안 된다는 계율을 첨가하셨으며 빈두로존자에게는 미래의 부처님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 반열반에 들지 말고 이 세상에 머물면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라고 부탁한다.

빈두로 존자는 자신의 경솔함을 깊이 반성하며 부처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실천하였다. 그는 반열반에 들지 않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했으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남인도의 마리산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말세의 공양을 받아 대복전이 되었으므로 그를 “세상에 머무는 아라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 여섯명의 아라한에게도 똑같은 의무가 주어졌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 “무상법으로 십육 대아라한과 권속들을 부촉하여 그것을 호지하고 없어지지 않게 할 것을 명령하셨고, 그 몸이 시주자들에게 복전이 되어 큰 과보를 얻게 하도록 명령하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충실한 제자인 이 열여섯 명의 성인들은 신통력으로 스스로 수명을 연장하면서 다음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정법이 머무는 곳에 항상 따라가 호지하고 시주하는 사람의 복전이 되고 있다. 그들은 중생들에게 풍요로운 물질적 환경을 제공하고 병들거나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을 받을 때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보장해주었고 가뭄이나 외적의 침입 등 재난을 당했을 때 기꺼이 신통력을 사용하여 고난에서 건져주었다.

이와 같은 신통력 때문에 아라한은 모든 불교권에서 신앙되어 왔다. 초기불교 전통을 잇는 부파에서는 빈두로파라타를 상좌로 모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동진의 도안(道安) 스님이 처음으로 빈두로존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당나라 때 나한 신앙이 성행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크게 흥성하였다. 고려 때에는 강우나 외적의 침입을 막아달라고 왕이 친히 나서서 나한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국왕이 되기 전에 나한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나한재는 주로 재앙, 천재지변, 외우내환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국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행해졌다. 나한은 용을 지물로 지니고 있으면서 비를 내리기도 하고 구병과 득남의 복을 주거나 외적의 침입을 막는 등 영험어린 존재로 각인되어 왔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유송의 승려 법현과 법경이 처음으로 그 존상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존상을 ‘독성’ 또는 ‘나반존자’라고도 부른다. 나한의 도상적 근거가 무엇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육왕경〉에서 빈두로존자를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을 덮을 만큼 긴 눈썹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것이 전범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은 경전에서 규정하는 32상 80종호라는 도상적 근거에 따라 조성되었으며 그 외관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왕자로서의 신분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의 모습을 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은 특별한 도상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평범한 외모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이나 자세도 열여섯 명, 때로는 오백 명이 각각 다르다.

염주, 죽비, 또는 금강저를 들고 있거나, 무릎 꿇고 과일을 공양하는 나한, 두건을 쓰고 선정에 든 나한이 있는가 하면, 경을 읽거나 붓과 두루마리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나한, 호랑이 등에 턱을 괴고 있는 나한, 등을 긁거나 하품을 하고 있는 나한, 거울을 든 나한, 부채를 든 나한, 꽃을 든 나한 등 오백 명의 나한이 제각각 다른 표정,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통력으로 불로장생하기 때문에 백발의 나한은 중국에 들어와서는 도교의 신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년의 나한은 두텁고 짙은 눈썹과 풍부한 턱수염이나 콧수염을 하고 있다. 청년의 경우, 눈썹은 가늘고 수염도 매우 간략하며 머리는 짙게 채색하였다.

이와 같은 개성과 다양성은 불상에서는 찾을 수 없던 것으로, 원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짐작된다. 또한 실제 승려의 얼굴을 묘사했을 가능성도 커서 매우 흥미롭다. 실제로 오대(五代)의 승려화가인 관휴(貫休)가 그린 16나한도 중 나고나존자(羅?羅尊者) 1폭이 관휴의 자화상이라는 이야기가 명대 진계유(陳繼儒)가 지은 〈이고록〉에 수록되어 있다.
<명법 스님/ 조계종 교수 아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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