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굴의 無影樹 〈24〉탄허 스님 탄신 100년 증언- 명호근

명호근 / (주)해주 사장, 탄허불교문화재단 부이사장,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총동문회 총재 쌍용투자증권 사장, 쌍용양회 사장, 쌍용양회 부회장 역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 불교방송 이사 역임
한암 스님과 3년 편지… 출가 3년 묵언
팔만대장경 요지는 ‘명심견성’
‘선악과’는 분별심… 깨치면 원죄 소멸
“흐르는 물도 아껴써야” 검소한 삶

 

-회장님은 탄허 큰스님을 어떤 스님으로 보고 싶나요?
저는 탄허 큰스님을 보통의 큰스님, 강백스님으로 부르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선지(禪旨)로 모든 것을 말씀하신 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지가 큰스님의 당체입니다. 그것은 동산 큰스님의 49재 법문에서 큰스님이 하신 법문이 그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한 그 해인 1965년도 여름에 부산 범어사의 동산 종정 스님이 열반하셨어요. 그 무렵 저는 선지식을 갈구하고 찾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동산 스님의 49재 법회에 갔는데, 그때 탄허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탄허 큰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저는 반가워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에 탄허 스님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으신 춘성 큰스님이 50대 초반인 탄허 큰스님에게 절을 하며 법을 청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제방의 선지식 및 고승대덕 큰스님 등 당대 대선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종사 열반 자리에 법문을 청하니 탄허 큰스님께서 사양하시면서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큰스님께서 주장자를 세 번 치시더니 “하동산 큰스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고 또 가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중은 한마디 이르시오” 하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장자를 한 번 탁 치시고 “금정산이 높으니 범어사가 오래되었구나” 하는 게송을 읊으신 후 법상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저는 이때 탄허 큰스님의 새로운 진면목을 더욱 알게 되었고, 아주 감명이 깊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경(經)이 나올 자리가 아닙니다. 고승대덕 큰스님들이 전국에서 다 모인 그 자리에서 그런 법문을 하였다는 것은 선지(禪旨)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경(經)과 학(學)을 말씀하신 것은 격외(格外)도리를 가지고 법문을 하시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가지각색의 상황에 맞게 불교,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방편 차원에서 하신 것입니다. 일반 대중에게 부처님 말씀, 조사님의 어록을 인용하기 위한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탄허 큰스님은 입산 직후에 한암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로 깨달았지 않았는가 합니다.

-탄허 큰스님은 입산 이전에 이미 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였고, 그런 고민 해결 차원에서 상원사로 입산하였지요?
제가 알기로 큰스님은 입산 이전에 유교, 장자, 주역 공부를 다 하셨어요. 그러시면서 늘상 격외도리, 문자 밖의 소식을 아시려고 고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대산의 대선지식인 한암 큰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아시고 편지로 3년간 대화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3년간의 편지 문답에서 벌써 불교와 도에 대한 것을 다 공부하신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오대산 상원사에 입산하시고 나서도 3년을 묵언정진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묵언정진은 참선을 말하는 것인데, 이때 한암 큰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서 정진을 한 후, 한암대종사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정황을 미루어서 볼 때 3년 묵언정진에서 참선공부는 끝냈다고 봐요. 이렇게 출가 전에 문답으로 공부하셨고, 입산 직후에 바로 묵언 참선 정진을 한 이런 경우는 이 세상에 없어요. 대단한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큰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경(經)을 보시다가 뜻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딱 책을 덮으시고 2~3일을 졸고 나서 보시면 그 뜻을 환하게 알게 된다고 하셨어요. 큰스님은 참선이라 하지 않고, 조신다고 했어요. 이렇게 큰스님은 선지로써 경을 보신 것입니다. 탄허 큰스님을 학승,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큰스님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탄허 스님은 경을 보기 위해 입산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큰스님에 있어서 경은 후학 및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어요. 따라서 큰스님이야말로 대선지식이고, 대강백이시고 또한 세간적으로는 경세적인 사상가, 중생의 아픔을 감싸안으셨던 대보살이셨습니다.

-한암 큰스님이 탄허 큰스님에게 화엄경 번역을 부촉한 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탄허 큰스님은 화엄경뿐만 아니라 스님들이 배우는 사집, 사교 등 거의 모든 경전을 다 번역하였습니다. 대선지식이라고 불리웠던 한암 큰스님도 번역은 못하셨어요. 그러나 선지식인 한암 큰스님께서 선지로 탄허 큰스님을 살피시고, 경을 보라고 하셨고 화엄경 번역을 부촉하였습니다. 이것은 한암 큰스님께서 탄허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난해한 화엄경을 현토 역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후학과 중생들을 위하여 간곡히 부촉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은 각기 이 세상에 올 때에 각자의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신 한암 큰스님이 탄허 큰스님에게 화엄경 번역을 부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화엄경에 머물지 않고, 사집·사교 등 모든 경전을 다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은 입산 이전에 격외도리, 근본도리를 터득하고 거기에 불교의 참선을 통해서 대사(大事)를 마쳤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큰스님의 이력을 미루어 볼 때에 큰스님에게 선, 경, 문자 이런 것을 갖고 고정적인 해석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까 말한 만약 탄허 큰스님이 학승이었다면 동산 종정 스님 49재라는 그런 자리에서 법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하면 방망이를 맞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말입니다.

-탄허 큰스님의 특성, 즉 다른 큰스님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으로는 종지(宗旨)를 강조하였다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종지를 강조하신 것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큰스님의 논리는 명쾌하였어요. 큰스님이 종지를 강조하였던 것은 경(經)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큰스님은 도, 우주, 근본, 마음 등에 대한 것을 늘상 고민하시고, 그것을 저희들이나 대중들에게 말씀했어요. 큰스님은 생각이 끊어진 그 자리가 본래 우리 마음자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자리는 다른 말로 하면 도(道), 법신(法身), 불성(佛性)을 증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한 생각이 끊어진 것은 곧 분별심이 끊어진 그 자리입니다. 탄허 큰스님께서는 이미 우주가 생기기 전, 부모미생전의 도리를 확연히 깨달으셨기에 법문을 하실 때나 청중들 앞에서 강의를 하실 때에도 팔만대장경의 경구(經句)를 막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은 일념(一念)이 생기기 이전, 일념이 끊어진, 일념이 없는, 즉 무명이 생기기 이전의 자리를 법신, 당체, 진심이라고 보셨지요. 즉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 본래 마음자리이기에 분별심이 있을 수 없고, 분별심과 망상이 끊어진 그 자리는 공적영지(空寂靈知)이기에 생사(生死), 이름, 모양, 빛, 색깔 등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큰스님은 팔만대장경의 요지를 일언(一言)으로 요약하면 명심견성(明心見性)이라고 하시면서 마음을 밝히면 성품자리, 즉 본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에 대하여 다른 큰스님들은 우물쭈물하였지만, 탄허 큰스님은 명쾌하게 말씀하셨어요. 스님은 도, 불법을 확연히 아시고 핵심적인 것을 이야기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종지(宗旨)입니다. 큰스님은 종지를 파악하면 자재기중(自在其中)이라고 하시면서, 종지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있어,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큰스님은 고구마 줄기를 당기면 고구마의 뿌리까지 고구마의 모든 것이 딸려 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여 말씀도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신 이후 그 요지를 대중들에게 말하였지만,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49년간 돌아다니시면서 설법을 하시고, 돌아가실 때에는 한마디도 안 하셨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탄허 큰스님이 선지에 의해서 불법, 도를 깨쳤지만 사회에 있는 젊은이나 사람들에게 불법을 심어 주기 위해서, 불법을 통해 도의적 인재양성을 하고, 그래서 사회 각 분야에 제대로 인재가 들어가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온 정열을 다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불법의 이치를 통달하신 탄허큰스님께 들은 불교 얘기가 궁금하군요.
큰스님은 항상 유불선을 같이 얘기하셨어요. 먼저 다른 종교 얘기를 예로 든 다음 불교로 마무리하셨지요. 불교에서도 역시 종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불교에서 중요한 도(道), 마음, 본래 자리, 마음의 본체, 분별심, 돈오점수, 견성 등을 자세하게, 그러나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큰스님은 “불법은 마음(心) 법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마음이 미(迷)하면 중생이 되고, 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탄허 스님은 ‘즉심시불(卽心是佛: 내 마음이 곧 부처)’이라고 설명하셨지요. 큰스님께서는 우리 중생이 원래 부처인데 현실적으로는 따로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지요. 원래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고 중생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부처도 마음으로 된 것이고, 중생도 마음으로 된 것이니 마음으로 지었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깨치면 부처가 되고 미하면 중생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마음의 작용이니 그래서 부처가 곧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리고는 중생도 수행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때 부처의 성품을 찾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은 팔만대장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심견성(明心見性)’ 즉 마음을 밝혀 성품을 봄이라고 하셨어요. 또한 도라는 것은 한 생각, 분별심이 끊어진 자리에서 아는 것이 도요, 분별심이 붙어서 아는 것을 술이라 한다. 도는 본래 마음자리를 말하는데 한 생각 끊어지고 분별심 끊어진 그 자리가 우리의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선악도 아니요, 냄새나 빛깔도 없고, 네모지거나 둥글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검거나 흰 것도 아닌 것이 라고 하셨지요. 큰스님께서는 불법을 공부하고 정진하는 데 세 가지 길이 있다고 하셨어요. 첫 째는 염불문이요, 둘째는 경전문이요, 셋째는 참선문이라고 하셨지요. 이중 하나를 선택해도 되고 같이 해도 된다고 얘기하셨어요. 탄허 큰스님은 많은 부분을 말씀해 주셨는데 다른 스님들과 달리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그렇게 하신 경우는 드물다고 저는 봅니다.

-그때 탄허 큰스님에게 들었던 내용 중에서 특기할 것을 소개하여 주세요.
그때에 탄허 큰스님이 방산굴(方山窟)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래는 스님께서 상원사에 계시다가 월정사에 내려오시면 방산굴이 있던 그 자리에 자주 오셨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서 계시면 편안하시고, 오래전에 왔던 느낌을 받아서 처음에는 방산굴을 재래암이라 하려고 하였지요. 그러다 화엄론 40권을 보시고는 이통현 장자가 공부하신 곳이 밖에서는 호랑이가 지키고, 하늘에서는 천녀들이 식사를 대접하였다는 내용을 보시고는 ‘방산굴’로 작명을 하였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나는군요. 그리고 탄허 큰스님이 저에게 근검절약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흐르는 물도 아껴 써야 한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때에 스님이 번역하는 원고를 보니까 스님은 번역하신 문장을 고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쓰다가 흔히 나오는 파지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경전 번역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방산굴로 탄허 스님을 만나러 다양한 사람들이 오셨다고 하는데 지켜보신 것이 있나요?
한번은 신부가 찾아오니까 탄허 스님이 신부에게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에 대해 물었습니다. 성부 하느님, 성자 아들 예수, 성신 성령이 다른데 왜 삼위일체 즉 하나로 보느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깐 신부가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못한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때 스님은 달을 비유로 하시면서 그것을 설명하였습니다. 달의 본체인 법신(法身)이 있고, 달의 빛인 광명이 있으며,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치면 천 개의 달이 되듯이 달이 수천 곳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있지만 본체(本體)인 달은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신, 보신, 화신은 하나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원죄가 생기고,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어요. 선악은 분별심의 대표적인 명사라고 말씀했어요. 그러시면서 도라는 것은 분별심이 끊어진 자리를 말하고, 그 자리를 깨우치면 원죄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는 분별심이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분별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분별심을 가지고 있는 한 도와 근본 마음자리는 멀다고 했습니다. 즉 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영원히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분별심이 끊어진 자리를 터득하면 원죄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근본자리를 알지 않고는 견성성불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도라는 것은 마음, 하늘 천, 가운데 중과 같은 개념으로 보시면서 선악, 옳고 그른 것 등등의 분별심이 끊어져야 그 본체, 본마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탄허 스님은 평생을 역경불사라는 대작불사를 하셨는데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대원암에 계실 적인데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스님 생활을 하시면서 그렇게 평생을 번역, 출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어 봤어요.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출가해서 도를 공부하는 것에는 묘미가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는 훨씬 특별한 묘미, 깨달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생활을 하신다고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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