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하나의 존재가 전체의 시작
세상만물 모두 존재 이유 있어

 

모래의 무정법문
외손녀, 규연이가 큰이모를 따라 부산에 왔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규연이는 오래 전부터 외할머니네 와보고 싶어 했는데, 이번에 연휴를 이용해 오게 됐다. 나도 그랬지만 어렸을 적에는 친척집에 놀러가는 것이 설레고 재미나는 일이다. 커서는 오라고 해도 잘 오지 않겠지만 어릴 적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처음 오는 길이고 나는 규연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기차에서 내린 규연이가 달려와 와락 안겼다. 기차 타고 왔다고 자랑부터 했다.
첫 날은 송정 바다와 해운대 바다를 구경시키고 점심도 바닷가에서 하기로 했다. 주말이이서 해운대 가는 길이 유난히도 막혔다. 평소 30분이면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인데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도착 했다.
마침 해운대에서는 세계모래 조각전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모래로 만든 갖가지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해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부산에 살면서도 처음 보게 됐는데, 모래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교한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영화 서편재의 한 장면, 세계적인 배우 마릴린 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슈렉, 가수 싸이의 모습까지 해운대 해변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규연이는 신기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나는 규현이와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신기했다. 그 작은 모래알들이 무너지지 않고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모래 한 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많은 모래알이 뭉치면 그때부턴 한 알의 모래알이 아닌 것이다. ‘한 알’은 할 수 없는 일을 ‘한 알’들이 뭉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래사장의 모래 조각을 보며 ‘가족’을 떠올렸다. 또 한 나라의 ‘국민’도 떠올랐다. 가족이 모여 한 나라를 만들고 나라와 나라가 모여 지구촌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와 가족은 각기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더 많은 의미와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하나의 모래알이 하나의 모래알이 아닌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코 한 사람이 아닌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부산 나들이를 한 손주 덕분에 무정법문을 들었다. 그러니 어린 손주도 가족의 시작이고, 더 큰 의미를 부르는 존재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의 소중함
요즘 TV 의 ‘천기누설’이란 프로가 있다. 그날 이야기는 약이 되는 풀과 나무 등 식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니 세상에 약이 아닌 풀이 없고 약이 아닌 나무가 없었다. 자연은 너무도 고마운 존재였다. 어떤 나무는 잎이며 뿌리가 무서운 암을 고치기도 했다. 심지어는 병원의 처방으로도 불가능 하다는 병을 고치기까지 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약초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가 평소 쉽게 볼 수 있는 풀과 나무도 있었다.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것들이 그토록 위대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발아래 밟히는 풀이라고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존재들로부터의 도움이 있기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한 없이 겸손하게 살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게 생각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자연은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너’, ‘나’가 없이 ‘경’, ‘중’이 따로 없이 고민하고 챙길 일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을 우리 몸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우리 인간들의 무지한 행동들로 인해 숲이 사라지고 강물이 더러워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꽃과 풀을 키우는 벌레들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물을 깨끗하게 하는 물고기를 소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것이 우리를 위하는 일인 것이다. 세상 만물은 모두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어찌 사람만이 정일까?
그날은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날이었다. 10여 년 동안 우리가족의 발이 되어준 차를 새 차로 바꾸게 되었다. 그 차가 가장 많이 다닌 곳은 다름 아닌 절이었고, 우리 가족 외에도 많은 도반들이 함께 타고 다녔다. 그날 마지막으로 통도사를 다녀왔다. 그 동안 한 번도 사진에 담아보지 않았던 차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차안을 치우면서 마음 한편 미안하고 참 고마웠다고 쓰다듬기도 했다.
그리고 새 차가 도착했고, 10년 넘게 함께 했던 차와는 이별을 했다. 멀어지는 옛 차를 바라보며 가족들이 모두 손을 흔들었다. 대상이 무엇이건 이별은 슬픈 것이었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을 때 잘 해주어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으면 정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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