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사 일요 정기법회-조은수(서울대 철학과 교수)

▲ 조은수 교수는... 서울대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과정 수료 후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받음. 미국 미시간대학 조교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세계기록문화유산위원회 출판소위원회 위원장 역임. '원효에 있어서 진리의 존재론적 지위' '통불교 담론을 통해 본 한국불교사 인식' 등의 논문을 발표.

선생경, 가족․사회 다중적 의무 설해
부처님은 먼저 듣고 설법 '소통․자비'
불자들도 부처님 태도 본받아야

불교는 고통의 바다에서 행복의 수평선, 열반을 향해 가는 종교다.  7월 28일 서울 불광사에서 열린 일요정기법회에서 서울대학교 철학과 조은수 교수는 <시갈로바다 수타경>을 예로 들며 부처님이 언급한 인간관계에서의 다중적 의무에 대해 강의했다. 어느 한 쪽에게 주어진 일방적 의무가 아닌 상호호혜적 원리가 깃든 '부처님의 관계론'에서 불교와 현재 삶과의 관련성을 되새겨본다.

재가자들을 위한 불교
불교를 처음 접한 많은 사람들은 불교를 출가자의 종교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재가자들을 위해 어떠한 말씀도 않으셨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이런 선입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경전이 <시갈로바다 수타>(Sigalovada Sutta)입니다. <잡아함경>안에 실려 있고 <선생자경>(善生子經)이라고도 합니다. 이 경은 재가자들을 위한 율장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의무가 잘 설명돼 있습니다.
그 경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머물 당시 거리로 탁발을 나갑니다. 거기서 시갈로를 만나게 되는데요. 시갈로 아버지는 인도에서 제사장이 속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이었습니다. 시갈로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아들에게 유언으로 아침마다 목욕재계하고 동서남북과 하늘, 땅 육방을 향해 절을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시갈로는 절을 하던 중이었죠. 부처님이 시갈로를 보고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시갈로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며 여섯 방위의 신이 자신에게 복을 내려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죠.
“젋은이여. 아버님의 유언을 지키려는 그대의 효성은 갸륵하다. 그러나 유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맹목적으로 절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대의 아버지도 그대가 길거리에서 아무 의미없이 절하길 바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동쪽에 대한 절은 그대의 부모님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어야 하고, 남쪽은 스승을 생각하며, 서쪽은 아내에 대한 헌신과 성실한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북쪽은 그대의 친구와 친척, 이웃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어야 하고 하늘에 대한 절은 스님과 수행자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여야 하며, 땅에 대한 절은 하인에게 정당한 대접을 해주는 공정성에 대한 표현이어야 한다.”

여섯 가지 인간관계에서의 의무
이 여섯 가지는 단순히 방위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겪는 여섯 가지 관계를 의미합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구사이, 스님과 신도, 고용자와 고용인을 의미하죠. 모든 사람은 크게 가족과 사회로 나뉘는 이 관계 안에 다중적으로 소속되기 마련입니다. 그 관계 속에서 각각의 의무와 책무가 있죠. 그러나 한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호혜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하면 그 사람도 나에게 하는 그런 관계라는 걸 부처님은 얘기하죠. 각각의 관계에 대해 부처님은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 자세히 얘기했습니다.
우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살펴보죠. 부모는 자식에게 다섯 가지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말씀했습니다. 자식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가르치고 선행하도록 격려하고 직업에 성실하도록 훈련시키고 적당한 혼처를 마련해 때가 되면 재산을 물려준다는 거죠. 부모가 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로 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에서 행해야할 임무를 대신하고, 가족의 전통을 이으면서 가족유산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외에도 가족 간 관계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가족 간 평화로움을 위해서 사랑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고 했죠. 만일 서로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기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얘기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고 부모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한다고도 했죠.
낳아준 분이 부모라면 길러준 분은 스승입니다. 역시 제자가 해야 할 일을 다섯 가지로 나눴죠. 첫 번째로 스승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이는 스승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죠. 두 번째로 시봉을 잘 해야 하며, 개인적 용무를 도와드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스승이 첫째로 할 일은 제자들에게 최상의 학문을 가르치는 겁니다. 또한 제자가 배우고 있는 내용을 파악했는지 잘 챙겨봐야 하고, 인문학과 자연학을 다 가르치며 다른 학자에게 학생들을 소개해줘 앎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줘야한다고도 했습니다.
다음은 부부관계를 살펴봅시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를 갖추고 멸시하지 않고 정직해야하고, 아내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는 본분을 다하고 집안사람들에게 친절해야하고 정조를 지키고 재산 간수를 잘하며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관계를 보면 결혼이란 건 일종의 파트너십입니다. 서로의 장점, 특성을 같이 공유하고 같이 나눈다는 뜻이죠. 똑같은 특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겁니다. 가족관계에서 가장 핵이 되는 것이 내외관계인데, 조화롭고 성공한 결혼이야말로 가족 전체의 안정, 평화를 가져온다고 부처님은 얘기했습니다. 내외가 잘 되면 자식이 잘 되는 법입니다. 한국의 가족관계는 내외관계가 튼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식과 부모가 충돌할 때는 자식이 우선이 되니까요. 부부의 사랑이 흘러넘쳐서 자식을 키우는 거고, 부부간 연대가 강해야 자식도 잘 클 수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친구 사이에 서로 진실해야 하며, 관대하고 예의를 갖춰 대해줘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서로를 보호해주고 재산을 허술하게 다루면 그런 행동을 막아줘야 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의지처를 제공해야한다고도 했습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는 버리지 말아야 하고, 친구의 가족까지 존중해야한다고도 했죠.
오늘날 노사관계로 치환해 살펴볼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고용주는 피고용인에게 능력에 맞는 일을 맡겨야 하고 정당한 보수를 제공함은 물론 보너스 같은 특별 혜택도 적절히 제공해야 한다 했습니다. 의료 복지와 휴가까지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용인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하며 고용주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서로가 관대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대한다면 세상이 움직이는 마차와 같이 부드럽게 잘 굴러갈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불교의 현대성
불교는 현대적인 종교입니다. 아직도 다른 종교에서는 여성 성직자는 부수적인 역할을 할 뿐이지만 불교는 부처님 생존 당시에 이미 비구니 스님 교단이 생겼습니다. 또한 불교 경전에는 여성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잠시 파타자라얘기를 할까 합니다. 사위성의 부잣집 딸인 파타자라는 미모가 출중해 아버지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탑에 숨겨두고 길렀습니다. 그러나 파타자라는 문지기와 사랑에 빠져 부모의 눈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삶이 쉽지만은 않아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남편, 첫째 아이와 함께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길에서 폭우를 만나게 되는데, 남편은 하룻밤 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하러 나섰다가 뱀에 물려 죽고 맙니다. 파타자라는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혼자서 아기를 낳죠. 남편이 죽은 걸 알게 된 파타자라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밤새 불어난 강물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강을 건널 수 없어서 먼저 갓난아기를 강 저편에 데려다 놓고 나머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강을 건넙니다. 그때 독수리가 날아와 갓난아기를 낚아채고 기겁한 파타자라는 소리를 지르다 강을 건너던 첫째 아이도 잃게 됩니다. 지친 채 고향에 돌아온 파타자라는 폭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정신을 놓게 됩니다. 옷을 벗고 길 을 헤매는 미친 여자가 된 거죠. 이를 본 부처님이 파타자라에게 정신을 찾으라고 얘기했습니다. 파타자라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이윽고 부처님은 그녀에게 ‘모든 것은 언젠가 멸하게 돼 있다’며 무상에 대해 이야기 해 주죠. 파타사라는 이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미친 여자였으나 부처님의 자비 덕분에 소생한 겁니다. 여기에는 인생에 불행이 왔지만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어있습니다.
<시갈로바다수타경>에는 일반인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탐진치와 두려움 때문이라고 부처님은 보셨습니다. 이에 휩싸여 법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면 명예가 사라지는게 마치 달이 기울어서 스러지는 것과 같다는 거죠.
이렇게 살펴본 바, 2600년 전 말이지만 지금 봐도 굉장히 현대적인 말이지요. 현재 삶과 관련성을 가지는 게 참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부처는 숙련된 스승
부처님의 설법방식은 질문과 대화 형식을 많이 취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상대에게 질문하며 질문 속 모순점을 짚는다면 부처님은 부드럽게 질문을 되받습니다. 부처님은 시갈로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의 문제가 뭔지 듣죠.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게 아니라 듣는 이의 문제에서 이야기의 단초를 마련합니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부처님은 경청하고 그리고 설법을 하죠. 그렇게 해서 시갈로 스스로가 결정을 내리도록 합니다. 합리적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이렇듯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전합니다.
이야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소통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아무리 진리를 말했다 하더라도 소통하지 못했다면 빠른 시일 내에 불교가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부처님은 45년간 많은 곳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설법을 위한 여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자비심이 아니었을까요. 부처님 스스로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느 스승이라도 제자한테 품어야 할 자비심이 있지 않겠는가라고요. 부처님 자신도 그런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했노라고 얘기했습니다. 심지어는 임종 순간에도 제자가 아닌 자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했지요. 이런 자비심이 부처님을 지칠 줄 모르는 숙련된 스승으로 만들어줬다 생각합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현대에도 살아있는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불교를 전할 때 부처님의 이런 태도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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