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난방기용 실외기는 전통사찰에 어울리지도 않고 에너지절약과도 맞지 않는다. 경기도 ㅂ사찰
기후변화 때문인지 이제는 한국에서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기온으로 허덕거리기도 하고, 계속 비가 내린 탓에 대기가 습해지면서 주변이 온통 짜증부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린시절에는 아무리 날씨가 덥다 해도 요즘 같지는 않았으며, 덥다고 해도 계류에서 탁족을 즐기면서 수박 한 덩이를 나누어 먹으면 더위가 저만치 달아나곤 했다. 이것을 보면 최근 들어 기후가 달라진 것도 문제지만 더위를 맞이하는 방법이 옛날과 다르기 때문에 더 덥게 느껴지고 더 힘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 여름은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려있다. 국내 원전 23기 중 10기가 가동을 멈추면서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되고 있다. 심지어는 전력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관공서나 대부분의 기업체, 심지어는 학교나 학원까지도 정부의 전력사용제한조치에 따라 실내온도를 27도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어 근무환경이나 수업환경이 최악의 상태이다.

거기에 비하면 산사는 속세와는 동떨어진 별천지이다. 산사에 가면 공기가 맑고 바람이 시원해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땀이 식으면서 청량하고 소쇄한 기분이 든다. 그러하니 산사에서 여름을 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의 세계에서 지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그런데 최근 몇몇 사찰에 가보면 건물후면이나 측면에 에어컨 실외기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산사에도 에어컨이 필요한 시절이 온 모양이다. 산사에 사는 스님들도 산문을 나서면 에어컨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산사에 다니러 온 불자들도 에어컨 바람에 익숙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산사에서 보는 에어컨은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이번 여름 들어서면서 조계사에서 에너지절약에 동참한다는 선언을 하고 사부대중이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에너지절약을 하는 사찰이 조계사만은 아닐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역시 우리 스님들이야!” 하며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실로 보살행과 자비행을 스님들이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일이어서 불자로서는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여름 모든 이들이 에너지 절약정신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전력대란이라는 부끄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불교계가 에너지절약운동에 앞장선다면 불가에서 전통적으로 실천해온 절약하는 모습을 세간의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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