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청년회의 위기

매주 7~80명 모이던 청년 법회
출가자도 나오고 회원끼리 결혼도
명맥 유지하는 대불청에 관심절실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큰일이다. 이러다간 완전히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대한불교청년회 말이다. 2주 전에 말한 것처럼 대불청 대구지구 관계자들이 우리절 어린이ㆍ청소년법회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대구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대구지구 차원의 연합법회는 꿈도 못 꾸고 있고, 지회가 몇 개 있긴 하지만 회원의 수가 몇 명 되지도 않는다. 이건 전국적인 현상으로 젊은이들의 또래문화에서 불교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일부 청년회는 누가 봐도 ‘청년’이라고 할 수 없는 연령층이 이름을 장악하고 있다.

나는 청년회 출신이다. 출가 전에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와 울산지구에서 신행생활을 했었다. 부산에서 활동했을 때는 매주 정기법회 때 7,80명, 울산에 살았을 때는 매주 3,40명 모이는 법회에 함께 했었다.

법회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단연 곡차 모임이었다. 법회가 끝난 후 대부분의 회원들은 단골집에 모여 파전이나 부추전을 앞에 두고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곡차 모임이라고 해서 불교 이야기만 했겠는가. 여느 술자리와 마찬가지로 으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직장 생활의 애환 같은 게 화제에 오르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빠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모이면 여자 얘기, 여자들이 모이면 남자 얘기, 남자 여자 모이면 사랑 얘기’라는 말이 있다. 청춘남녀가 모였는데도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청년회일수록 회원들끼리 결혼하는 커플이 많았다. 부부 몇 쌍이 탄생했다는 것이 그 청년회의 자랑인 시절이었다. 물론 사랑이 깨지는 날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자취를 감추거나 아예 둘 다 안 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청년회는 때때로 호법신중의 역할도 했다. 타종교에서 ‘심령대부흥회’를 하면서 불교비방 전문 목회자를 초청한다는 현수막을 내걸면 회원들이 교회로 몰려가 행사를 저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초파일에는 밤을 꼬박 새며 등불을 지켰고, 제등행렬 때 대열의 중심에서 커다란 목탁을 치면서 행렬을 이끌기도 했었다. 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회원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동참하여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냈다.

청년회 출신 중에는 나처럼 출가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나왔는데, 어느 청년회에서 몇 명의 스님이 나왔는가 하는 것은 청년회 회원들의 원력과 신심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처럼 길게 청년회 경험을 늘어놓는 이유는 우리 절집에 청년회를 다시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청년이 서야 불교가 산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당시 청년들이 불교의 미래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컸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전국적으로 어린이ㆍ청소년법회가 활성화 되면 청년회는 저절로 잘될 것이다. 긴 세월동안 투자하기 어려운 절에서는 일단 청년회를 만들어 미혼 남녀가 모여 함께 신행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절에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는 대불청 각 지구와 지회를 위해 사부대중이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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