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마당 한 켠 풀꽃에도 佛性은 현현하네
절 마당 한 켠 풀꽃에도 佛性은 현현하네
  • 명법 스님
  • 승인 2013.07.13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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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찰 마당의 미학

東亞 사찰 마당엔 상징이 가득
사찰 정원 또 하나의 산수로 평가

바위, 모래 등 놓은 日사찰 정원
선 강조하지만 결국 인공 조형물

한국 사찰은 자연 그대로를 담아
차경한 절 마당은 ‘비움의 공간’
작은 뜰의 사물도 불성을 보여

▲ 한국 사찰의 마당은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여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한다. 절담 아래에 피어난 풀꽃에도 불성이 담겼다.
일반적으로 종교건축은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 욕망으로 넘치는 지상에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려면 종교적 상징물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종교건축의 신성함은 그곳에 안치된 성상의 힘에 의지하지만, 발리 섬의 힌두 사원처럼 지상에 강림한 신이 사용하게 될 빈 의자만으로 종교적인 신성함을 획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종교건축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를 위한 공간으로 고안된다.

하지만 불교건축은 초월적 존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공간, 수행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지만 불교건축 역시 불교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기 위하여 그 속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은 불상을 모신 전각이나 탑이지만 법당 안팎의 여러 가지 구조물과 장식물들, 심지어 진입공간과 일주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문, 종교적 승화를 표상하는 계단까지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보르부두르 대탑은 단일한 구조물로서 욕계, 색계, 무색계, 그리고 적멸의 세계로 상승하는 불교적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건축물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불교사찰의 상징적 의미는 유형의 구조물뿐 아니라 건물들의 배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빈 공간에도 깃들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바로 절 마당에도 종교적인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

절 마당에는 탑이나 괘불대 같은 석조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텅 빈 공간 한 쪽 구석에 자연석이 세워져 있거나 향나무, 보리수, 파초 같은 식물이나 국화, 나팔꽃 같은 다년생 풀이 자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텅 빈 마당에서 신남신녀들이 탑돌이를 하고 대중들이 야단법석을 펼치거나 선수행자들이 좌선하다가 일어나 행선을 하기도 한다.

사찰의 텅 빈 마당은 이처럼 신남신녀의 염원도 받아들이고 오고가는 뭇사람들의 발자국도 받아들이고 눈 푸른 납자의 그림자도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떠나버리면 그것은 낮에는 뙤약볕을, 밤에는 별빛과 달빛을 받아들이고 여름에는 장대비를, 겨울에는 하얀 눈을 받아들이고 봄가을에는 산천에 피어나는 꽃과 단풍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스쳐가는 바람과 하늘을 떠도는 구름까지도 받아들인다.

특히 한국의 절 마당은 유럽식 중정(中庭)처럼 사면의 담이나 벽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사면의 건축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술한 공간이다. 그곳은 꽉 막힌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열린 공간이다. 이 텅 빈 장방형의 공간은 그야말로 ‘공(空)’의 상징이면서 실제로 마음을 비우고 청정하게 하는 ‘비움’의 장소이다.

사찰 마당은 담이나 벽 같은 경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경계 너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누각과 종루, 창호을 통해 높이 자란 아름드리나무의 푸르른 잎도 받아들이고 저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과 강,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까지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절 마당은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담장 너머의 자연을 받아들인다.

누정이나 종루에서 바라본 아스라하게 사라져가는 먼 경치는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사물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해진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안양루 아래로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거나 선운사 만세루에서 비학산의 비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월명암 마루에 앉아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고 간월암에서 서해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잊고 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마당도 비고 마음까지도 텅 비어질 때, 산을 보면 산이 그대로 산이고 물을 보면 물이 그대로 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외부의 자연을 끌어들여 자신의 풍경으로 만드는 것을 ‘차경(借境)’이라고 한다. 차경을 위하여 대부분의 선종 사찰은 탁월한 조망을 갖는 지점에 조성되었다. 또한 한국의 사찰정원은 선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차경의 또 다른 훌륭한 본보기이다.

▲ 일본 교토 용안지의 사찰 정원. 바위와 모래, 나무로 정원을 선의 정신을 미학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의 풍경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한국사찰은 바위와 나무, 심지어 마당의 모래까지 인공적으로 조성한 일본 사찰의 고도로 정제된 정원을 거부하고 토종의 꽃과 풀이 자라는 소박하고 정감 있는 뜰에 만족한다. 의식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일본 젠 스타일의 정원이 아니라, 오히려 꾸미지 않고 무심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 듯한 한국 절마당의 작은 뜰에서 사물은 종교적 상징성을 버리고 제각각의 모습으로 불성을 현현한다.

푸른 대나무는 모두 法身이요
향기로운 국화는 반야 아님이 없다.
(靑靑翠竹 盡是法身, 郁郁黃花 無非般若)
〈景德傳燈錄 卷6〉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 ‘원래 그러한 것’이다. 우주 만물은 인연에 따라 생멸하고 변화하여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산수자연은 법성의 구체적인 현현이며, 모든 자연이 연기로 생멸하는 불성의 체현이기 때문에 자연은 적막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활발한 선취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과 산하대지뿐 아니라 대나무 하나, 꽃 한 송이, 구름 한 조각, 골짜기와 개울, 화초와 나무를 관조하는 가운데 청정한 마음을 얻게 된다.

시불(詩佛)로 일컬어지는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왕유는 <여름날 청룡사를 지나며 조선사를 뵙고서(夏日過靑龍寺謁操禪師)>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선적 자연관을 읊고 있다.

산하는 천안 속에 있고 山河天眼裏
세계는 법신 가운데 있다. 世界法身中 
   
불교를 독실하게 믿은 왕유는 아름다운 산수자연에서 진여불성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다. 산수자연에서 공적청정한 선취(禪趣)를 추구하여 허정한 심경을 이루고 있다. 왕유는 험준하고 기괴한 경치가 아니라 한적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산수자연에서 자연의 청정함과 마음의 고요를 맛보며 번잡한 세상을 벗어나 이상적인 삶을 이룰 수 있었다.

홀로 깊은 대숲 속에 앉아
거문고를 뜯고 또 길게 읊조리네
무성한 숲이라 사람들은 모르지만
밝은 달이 찾아와 비쳐주네
〈죽리관〉

걸어서 물이 다한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이 이는 것을 보고,
우연히 숲 속의 늙은이 만나
얘기하고 웃으며 돌아가기를 잊는다네.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 談笑無還期)
〈종남별업〉

동아시아에서 선종사상은 자연을 감상하고 관조하는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산수는 세상의 속된 가치에 몸을 더럽히지 않고 청정하게 살면서 마음의 깊은 근원을 깨닫는 매개물이었다. 따라서 사찰의 정원은 또하나의 산수로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선의 정신을 구현하였다.

이처럼 선종사찰은 종교적 상징물들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텅 빈 공간이 갖는 종교적 변형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수행의 매개로 삼아 다른 종교적 공간과 다른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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