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25주년 한국교수불자하기대회 특강-지안스님(조계종 고시위원장·통도사반야암 주지)

▲ 지안스님은...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통도사 강원 강주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고시위원 및 역경위원장을 역임. 저서로는 <기신론 강의>, <신심명 강의>, <기초경전해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처음처럼(초발심자경문)>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대반니원경>이 있다.
인과·연기·일심법 실천…불교적 삶
불교 바르게 알아야 자비심 일어나
불교역사 깊으나 한국사회 ‘비불교적’

아인슈타인은 우주종교란 인격화된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에 내재해 있는 근원적 원리에 감화 받는 종교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인과와 연기로 설명되는 불교는 아마 아인슈타인의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범우주적인’ 불교사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간 이를 현대적으로 활용하거나 재생산하는 작업에 게을렀다.
7월 2일 통도사에서 열린 한국교수불자대회에서 지안 스님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불교가 현대 사회에 생생히 내재할 수 있도록 불교 요체를 제대로 알 것을 주문했다.

유구한 불교역사 그러나 얕은 불교지식
우리나라 불교 역사가 꽤 깊습니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유교하고 비교해도 말이죠. 그러나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진 종교임에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각 종교에 대한 지식수준으로 따지면 불교가 꼴찌일 것입니다. 초중고 학생, 기성지식인 층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대한 지식 습득은 기독교, 유교 중에서도 제일 떨어질 것 같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한국 지식인들의 지식공간에 불교가 입력되어 있는 정도가 미약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불교가 시급히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이 공간에, 교리, 경전내용. 수행내용 등을 넣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가르침이 고차원적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탁월하죠. 제가 스님이기 때문에 아전인수격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도 읽어보고 다른 종교 책도 읽어봤지만, 불교야말로 차원 높은 교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좀 높아질 수 있도록 교수님들께서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시는 교수님 중 한분이 말씀하시길, 일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초중고 교사들 혹은 대학교수들 10명 가운데 6-7명이 불교 강의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평소의 교양지식으로 어떤 주제든 불교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나라 경우에는 20명 중에 1명 정도만 그게 가능할 거라 했습니다. 강의는 차치하고 불교를 설명해주는 것도 그 정도 비율을 벗어나지 못 할거라더군요. 아시다시피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들이 배출되지 않았습니까. 또 인상적인 말 중에 하나를 소개해 드리자면, 미국으로 유학갔을 때, 미국 학생들이 동양 학생에게 동양 사상에 대해 많이 묻는다고 합니다. 물론 불교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런데 한국 출신 유학생들은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더랍니다. 일본, 대만 유학생들은 어느 정도 설명을 하는데 말이죠. 동양출신인데 동양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 문제입니다.

43년 동안 스님 노릇 하면서 답답했던 건, 스님들을 만나도 불교적으로 지식이 많지 않은 분들이 종종 있어 대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 스님들을 만나면 불교적으로 상통하는 얘기를 많이 나누는 건 사실입니다.

작년 겨울에 방한한 프랑스 출신 마티유 리카르 스님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스님은 20대 중반에 노벨상 수상 교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은 장래가 촉망받는 과학도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도 여행길에서 티벳 출신의 스님을 만나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 “과학이 자신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한다”며 “행복할 길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만류하셨죠. 아버지와 아들간의 골은 채워지지 않았고 20년 후, 마티유 스님이 있는 히말라야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부자가 열흘 간 대화를 나눠 기록한 책이 <승려와 철학자>라는 유명한 책입니다. 철학자 장 프랑수아가 아버지였던 거죠.
이 스님께서 한국을 둘러보며 “한국의 불교역사가 깊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인들의 행동에는 불교적으로 보이는 게 없다” 고 하셨습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죠. 젊은 층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의 3배라 합니다. 이혼율, 교통사고율도 금메달 감입니다. 이렇게 잘사는 나라에서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가 뭐지요? 스님은 이를 지적하며 불교적인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자기 마음을 너무 돌보지 않고 사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죠. 몸만 돌볼 줄 알지 마음은 돌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스님의 인상은 ‘비불교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유구한 불교 역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불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불교의 요체는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불교적이란 것이 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첫째로 불교는 인과를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부처님 법의 기초는 인과법입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어떤 원인에서 나타나는지 그 과정을 살펴봐야 하는데, 우리는 훈습이 안 되어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통행하려고만 하잖아요. 이론은 너무 포화상태에요. 이론을 실천에 적용하고, 체질화, 사회화 시킬 때는 아직 많은 문제에 노출돼있거든요. 인과를 통해서 개인문제, 사회문제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이 넓어져야합니다.

두 번째로 불교는 연기입니다. 이 세상을 상대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너만 있는 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또 다른 상대가 있다, 내 주장뿐 아니라 남의 주장에도 옳은 면이 있다, 이런 말이거든요. 이것이 연기적인 성찰입니다. 사회는 다양한 현상이고 종교 안에도 다양한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교 안에도 불교적 경험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다양한 것을 융섭하고 학문도 통섭으로 가야 합니다. 종교도 지금은 과학하고도 랑데부해야 되고 타 종교하고도 소통해야 합니다. 내 종교만 내세우고 남의 종교를 무시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으로는 현대인들에게 감명을 줄 수 없습니다. 연기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는 일심법의 해법입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해결하는 겁니다. 부처님, 하느님, 신이 해결하는 것 아닙니다. 불교는 인본주의 자성을 직시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모든 개인의 신상, 사회문제를 마음이 해결하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양한 문화현상이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대승경전을 봐도 산, 바다, 우주천체는 마음에서 생긴 거라고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법은 마음입니다.

인과법, 연기법, 일심법 세 가지만 기억하고 있으면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사고방식인 순환적 사고방식을 가지면 인생관이 바뀝니다. 오늘날 직선적 서구 사고방식이 동양 교육에 영향을 많이 줬죠. 현대인들의 지식중독증세 또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직선적으로 가니까 항상 대립될 수 있고 기차선로처럼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불교적 사고방식이죠. 불교의 육도윤회설을 보면 사람이나 소나 언제까지 같은 종류로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생이 바꿔질 때, 사람이 소가 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사람 몸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경책이 자주 나오거든요. 인간 구실을 잘못하면 악업의 과오를 받게 돼 짐승 몸으로 태어난다는 겁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다음 생에 짐승 몸을 받으면 금생에 가치가 어디 있겠느냐는 겁니다. 이것이 순환사고방식입니다.

불교적 삶의 실현
부처님은 싫다고 가는 사람을 막지 않았어요. 부처 생존 당시 제자들이 따르다 보니 정치세력화 된다고 부처님을 모함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엇을 강요하며 세력을 형성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말에 참고할 만한 유익한 점이 있다면 참고하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만을 추종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저에게 다가와 회개하라고 하시는 분들 많이 만납니다. 그러나 스님에게 전도하는 그런 종교는 없는 게 낫습니다. 종교를 안 믿어도 괜찮은 사람이 종교를 믿어 손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믿었다면 인간성도 소박하니 잘 살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죠. 어떤 종교에 빠져서 이상해지는 건 인간성이 유린당하는 것과 같고,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중요한 건 인간이 인간의 마음, 진심을 어떻게 지켜나가는가 하는가입니다. 불교는 사람의 마음을 진여(眞如), 생여(生如) 두 가지로 나눕니다. 진여는 진(眞)으로 보고 생여는 망(妄)으로 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선악관념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마음에는 선한의지도 있고 악한 의지도 있다 하잖습니까. 착한행위도 악한 행위도 나오죠. 마음자체에 진망이 있다는 거에요. 진심과 망심말입니다. 조사어록을 보면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번뇌속에 살기 때문에 자기 진심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백열등이 있는데 전선에 연결돼 불이 들어올 인연이 없다면, 다시 말해 전선에 연결되지 않았다면 백열등은 무용지물입니다. 등은 어두운 방을 밝혀야 하는 거니까요. 가령 사람이 ‘인간은 진실 되게 살아야 한다.’며 진을 목적으로 둘 때, 망심만 쓰고 진심을 안 쓰면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는 앞서 말한 진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종교 믿는다는 사람이 종교를 빙자해 허망된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문제입니다.

잠시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죠. 어느 선방에서 정진한 스님이 도반 스님을 찾았습니다. 가보니 도반스님은 없고 법당에서 관음기도를 하는 신도 한 분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신도에게 도반스님에 대해 물었고 방해받은 신도는 스님께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나는 보살님을 몇 번밖에 안 불렀는데, 계속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보살님께 관음보살님은 얼마나 화를 냈겠습니까.” 우스운 얘기지만 뜻이 있습니다. 종교 믿는답시고 허망된 마음을 함부로 움직이면서 허튼 짓을 많이 하거든요. 본래의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으뜸가는 정진입니다. 인격과, 교양은 이 바탕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처님 교법은 청정성입니다. 생각의 청정, 이게 중요합니다. 채식, 금욕, 자연환경 등 불교를 바로 알면 내 마음이 정화되고 생각이 맑아집니다. 대자대비와 동체대비도 여기서 나옵니다. 염주의 염(念)은 생각 염자입니다. 원래는 찰나를 뜻하는 시간을 번역한 거에요. 한 생각이 퍼뜩하는 순간, 1/75초, 이는 1초에 75 찰나가 있다는 소리거든요. ‘일념 안에 9백 생멸이 있다.’ 라고 합니다. 부처님 생각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말하는 거에요. 그 순간이 가장 맑다는 거죠. 염주는 생각의 구슬을 뜻하므로 생각이 영롱하다는 겁니다. 염력이 맑으면 진실이 드러나고 자비심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염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청소하는 거니까요. 생각을 맑게 함으로써 시간을 청소하는 거죠.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