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통치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력 키워
식민통치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력 키워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3.07.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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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민지배기간의 교단과 교육
▲ 왕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얀마 사람은 절에서 불교와 함께 교육을 받았다. 지역사회에서 사찰 주도로 진행되는 교육체제는 마얀마가 지금까지도 문맹률이 낮은 요인 중 하나다.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 미얀마 불교계는 승가교육과 저변확대의 내실을 닦았다.

영국 지배로 불교 교단 분열
1895년 종정 입적후 9년간 공백
승가연합총회 발족해 자체 교육
사찰에서 대중교육 토대 만들어

2012년 12월 중순 미얀마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미얀마 원로인 Myo Myint 박사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영국식민기간의 불교’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의 발표논문을 부분적으로 번역하고 발췌해 소개한다.
Myo Myint 박사는 미얀마에서 저명한 원로학자다. 미얀마 정부 종교성의 중요 직책을 역임했으며 세계불교학술대회를 조직하고 이끌기도 한 이다. 필자는 2012년 9월 말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에서 열린 인도 국제불교학술대회에서 미얀마 대표로 참가한 그를 만났다. 사르나트의 호텔에서 한 노인이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도와 주었는데 그가 바로 Myo Myint 박사였다.

영국 지배기간 교단의 분열
전통적으로 미얀마 불교교단에서 ‘탄탄뱅’(Thathanbaing)은 한국불교의 종정이나 총무원장과 같은 교단의 수장을 나타내는 말이다. 탄탄뱅은 불교를 잘 이해하고 덕망이 뛰어난 스님으로 이전에는 왕이 존경하는 스님을 칭하는 말이었다. 영국식민정부는 처음 이러한 탄탄뱅의 존재를 인정하였지만 새로운 탄탄뱅의 존재를 임명하고 지원하는 데는 거부하였다.
1852년 제2차 미얀마와 영국 간 전쟁으로 남부 지역을 잃은 미얀마는 남부지역에서 불교세가 갈 수록 약해져만 갔다. 여기에 불교 수장의 부재는 영향력 상실을 부채질 햇다.
미얀마 남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가운데 Dwaya 종파가 Oakpo 사야도(Sayado)에 의해 창종됐다. 미얀마 불교에서 사야도(Sayado)는 법랍과 학덕이 높은 스님을 이름하는 말이다.
다시 Dwaya 종파에서 Kan이라는 종파가 분파되었다. 이 시기에 미얀마 북부 지역서는 민돈(Midon) 왕에 의해 Shwegyin종이 창종되었다.
이렇듯 나라가 영국지배로 갈라지면서 불교 교단 또한 내부 분열이 있었다. 현재 미얀마 9개 종단 중 주류는 Sudhamma (Thudhamma) 종파이고 다음으로 Shwegyin 종파이다. 이후 영국이 미얀마 북부 지역까지 지배권을 넓히자 불교 교단은 이전 왕에 의해 임명됐던 불교수장의 선출권을 영국식민정부에 뺏기게 된다.
1895년 탄탄뱅이 입적하자 영국은 약 9년 간 새 수장을 선출하는데 주저했다. 이로 인해 탄탄뱅을 구심점으로 화합하였던 불교 교단은 내부적 긴장과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수년이 지난 1901년 10월 22일, 만달레이에서 새 불교의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열렸다. 33명의 지원자 가운데 Moda 샤야도가 큰 득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Moda 샤야도는 선출된 지 6개월에 입적했다. 때문에 두 번째로 득표한 Taunggwin 샤야도가 새로운 불교수장으로 임명됐다. 영국식민정부도 이를 인정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선거가 북부 미얀마인 만달레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남부 지역을 포괄한 전 미얀마를 대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Taunggwin 샤야도는 전 미얀마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북부 미얀마 일부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탄탄뱅이 식민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어용의 모습으로 비춰지자 미얀마 전 불교교단은 이에 반대하는 ‘승가연합총회’(General Council of Sangha Samaggi(GCSS)를 자체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교단 중심 승가교육 토대 닦아
전통적으로 미얀마를 포함한 상좌 불교권에서는 불교교육은 빠리얏띠(Pariyatti)와 빠띠빳띠(Patipatti)로 대별된다. 빠리얏띠는 삼장을 중심으로 교리 공부하는 것을 이르며 빠띠빳띠는 선정수행의 영역을 말한다. 이 두 가지를 학습하는 것은 어느 불교 승단이든 예외없이 인정하는 승단의 주요 의무였다.
상좌불교는 전통적으로 경전을 중심으로 교리공부를 하여야 선정수행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선정과 함께 교리공부를 강조하기에 미얀마에서 초기경전인 빠알리(Pali) 불교 연구가 오랜 전통으로 남아있다. 많은 학승들이 유명한 빠알리 문법책을 편찬하였고 빠알리 경전에 대한 연구서를 남겼다.
미얀마 국왕은 출가스님들의 경전 학습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일환으로 ‘빠알리 경전 시험’을 개최하곤 했다. ‘빠알리 경전 시험’은 성대한 의식과 함께 경전을 구두로 암송하는 시험이었고 지원자가 통과하면 여러 혜택이 주어졌다.
그러나 영국식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전통은 무너졌다. 1885년부터 1894년까지 약 9년 동안 빠알리 시험이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식민정부는 불교교단에 반정부 분위기가 흐르자 이를 달래기 위해 빠알리 시험을 개최했다. 영국식민정부는 이전의 미얀마 국왕들처럼 빠알리 시험을 개최하면 미얀마 사람들이 크게 감동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또 영국식민정부는 이러한 시험을 통해 계율조항이 더 숙지되면 식민정치와 같은 세속적인 일에 출가교단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했다. 당시 영국식민정부 교육청은 시험 감독을 제외한 시험 공지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행을 도맡아 했다. 그러는 한편 자신들이 주최하는 빠알리 시험 외 다른 어떠한 현지 불교기관의 시험을 공인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빠알리 시험에 영어와 지리학 그리고 수학 등을 포함시키려했다. 이에 당시 불교교단은 크게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학승들이 경전공부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고 환속하기 쉽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영국식민정부 기간 승려교육은 정부 주최와 일반 불교 기구가 대척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미얀마 전역에서는 ‘승가연합총회’(GCSS) 등 재가자와 출가자가 자체적으로 설립한 불교기구에서 행해지는 빠알리 시험으로 확산됐다.
각각의 불교 기구는 빠알리와 율장 시험을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서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통과된 응시자는 증명서가 수여되고 상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스님들이 점차 정부 주도의 시험에 응시하지 않자 식민정부의 빠알리 시험은 단절됐다.
다시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교단은 교리공부(Pariyatti)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각 종파마다 또는 사야도 중심으로 다양한 시험을 개최한다. 이 중 특히 유명한 시험은 남부 몰라민의 구두 암송시험과 Shwegyin종파, Weluwun종파 그리고 Dwaya종파 등의 시험이다. 이외에도 청년불교도연합(YMBA)이 주최한 시험 등이 각광을 받았다.
미얀마 승려 교육은 식민지배 기간 동안에 큰 변화를 겪는다. 긍정적인 면은 이전까지 왕들의 지원과 후원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 불교교단이 독자적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불교교육운동이다.
이 때 시작된 시험제도가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894년에 양곤에 Cetiyingana Pariyatti Dhamannggaha Association 기구가 설립됐으며 1898년 만달레이에서 빠알리 시험 기구가 창설된다. 이 두 기관의 시험은 높은 학문적 수준을 요구하기에 이를 통과하는 수가 매우 적다. 두 기관 시험을 통과하면 승단의 존경과 함께 각종 강원 및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
영국 통치 기간에 미얀마 불교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력을 더 확보하였다. 특히 아비달마 불교교학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이와 함께 선정 수행으로도 이름을 날린 스님들이 많이 배출됐다. Ledi 샤야도(1878~1952)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남긴 불교와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많은 가르침은 현재 미얀마 불교에 큰 힘이 되고 있다. U Khanti 또한 미얀마 불교에 큰 역할을 했다. 승려 출신인 그는 환속해 만달레이 산간 지역에서 포교를 진행했으며 전국에 불교건물을 건립했다.
이렇듯 영국 식민지배 기간 동안 미얀마 인들은 출재가자 모두 불교 진흥에 노력하였다. 기독교 선교와 서구교육의 도전에 대항하여 불교적 삶의 방식을 잃지 않고 계승하려 최선을 다했다.
특히 미얀마 전통교육의 중추로 불교 사원이 자리했다. 왕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얀마 사람은 절에서 불교와 함께 교육을 받았다. 지역사회에서 사찰 주도로 진행되는 교육체제는 마얀마가 지금까지도 문맹률이 낮은 요인 중 하나다. 미얀마 어느 곳이든 사원학교(Monastic School)가 있으며 스님들이 교사 역할을 하기에 열악한 교육환경이지만 기본적인 교육을 받게 한다. 영국식민통치 기간에 미얀마는 독자적인 교육체계로 불교 전통과 정신을 잃지 않고 끝내 독립할 수 있는 힘이 배양됐다. 불교 교단 내의 정체성 유지, 승가교육 활성화와 사원 중심의 대중 교육은 영국 식민지배 기간 동안 불교 민족주의를 싹트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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