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제3영기싹 넝쿨모양 영기문 하

 

고구려 벽화의 비밀풀기

마침내 한국미술사학계에서 부르는 이른 바 ‘인동당초문’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드러낼 때가 되었다. 내가 인동당초문의 용어가 틀리다는 것을 안 것은, 바로 고구려 사신총의 영기문의 구조를 풀어서 그 조형언어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만일 고구려 벽화의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영기문을 해독하지 못했다면, 인류가 수없이 만들어 놓은 ‘제3영기싹 넝쿨모양 영기문’은 영원히 밝혀낼 수 없었으리라. 인동문이라 알고 있던 바로 사신총의 영기문 표현원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성립한 것이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출토 왕과 왕비의 금제 관(冠) 장식의 영기문이다. 물론 일본 학자들이 인동당초문이라 부르고 한국의 학자들이 그대로 따라 부르므로 그 관의 장식의 본질은 오래 동안 잘못된 용어에 가려져 왔다. 이제 마침내 그 신비한 베일을 벗긴다.

앞서 25회에서 제3영기싹 넝쿨모양 영기문의 전개원리를 파악한 분은 고구려 사신총 영기문을 금방 풀어낼 수 있으리라. 다시 한 번 25회를 읽어보고 26회를 읽어보기 바란다.

중국 북제와 당의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의 영기문인데, 이 6세기 후반의 고구려의 영기문이 훨씬 뛰어난 점은, 그 근간을 이루는 줄기라는 영기문의 곳곳에서 갖가지 영기싹들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영기싹, 즉 생명의 싹들로 하여금 우리는 영기문의 본질, 즉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조형’이 ‘영기문’임을 깨달았던 것이다.(그림①-1, 그림① -2, 그림①-3)

그런 구체적인 영기문의 표현방법을 보여주었으므로 사신총의 영기문을 통하여 중국이나 더 나아가 서양의 영기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실로 동양과 서양의 미술사학 연구에 전환기를 맞이하는 카타스르로피 즉 ‘비장한 역전(逆轉)’이다.

조형언어 읽는 지름길 ‘채색 분석’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에서는 서양의 미술사도 그 기원부터 즉 아시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의 미술부터 강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고구려의 영기문을 풀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구려 사신총의 영기문은 중요하다. 채색분석한 것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으니 이 글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 다음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한 왕비의 관의 장식(526년 경 제작)을 살펴보자. 순 금판이므로 금색 한 색이어서 무늬의 구성을 알 수 없다.(그림②-1) 채색분석법으로 파악하면 매우 명료하게 그 전개과정을 알 수 있다.(그림②-1, 그림②-3) 중앙의 연꽃모양 영기꽃에서 사방으로 제3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하며, 거기에서 영기화생한 만병(滿甁)에서도 사방으로 제3영기싹 영기문이 유려한 다양한 형태를 띠며 역시 사방으로 발산한다. 고구려 사신총 벽화보다 더 이른 시기의 제3영기싹 영기문의 전개과정이 매우 역동적이다. 왕비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영기를 이렇게 조형화한 것은 놀랍지 아니한가.

그 다음 무령왕의 관의 장식(523년경 만듦)을 보면 왕비 것 보다 더 역동적이다.(그림③-1) 역시 그 영기문의 구성원리는 채색분석을 해 보아야 파악할 수 있다.(그림③-2, 그림③-3) 크게 보면 제3영기싹의 조형을 복잡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러분! 채색분석한 것을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글(문자언어)이란 한계가 있어서 조형의 모든 것을 문자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왕의 것이 더욱 역동적인 조형을 띤 것은 왕이 남자이기 때문이고, 왕의 것에 비하면 왕비의 것은 정적(靜的)인 것은 주인공이 여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로소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관의 장식에 나타난 조형적 구성과 상징구조를 자세히 밝힐 수 있으니 그 자손으로서 영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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