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ㆍ청소년 법회(1)

청년회 법회는 청소년 법회,
청소년 법회는 어린이 법회 관건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어린이법회 교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2011년 6월 어느 날 젊은 불자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가워서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어느 불교유치원의 원장이 이야기하더라고 했다.

2008년 초, 내가 처음으로 주지 소임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사실은 어린이법회였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지만, 어린이법회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하나는 유능한 교사, 다른 하나는 재정적 뒷받침이다. 재정 문제는 내가 주지로서 사찰을 운영하는 위치에 있으니 어떻게든 해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교사였다. 유능과 무능은 일단 두고, 교사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신도들 중에 어린이법회 교사 경력자를 찾아보았으나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절에서는 어린이법회를 한 적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른 절에서 법회를 한 적이 있는 사람도 없었고 신도 가운데 젊은 현직 교사조차 없었다. 대학생이라도 구하려 했지만 이마저 구할 수 없었다. 교사를 구하지 못한 채 1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불교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2009년 여름이 다가왔다. 이(齒) 아니면 잇몸이라고, 나는 젊은 여성 불자 네 명을 뽑아 거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제주도로 연수교육을 보냈다.

제주도에는 이십 수년 동안 어린이법회를 해온 비구니 인성 스님이 방학 때마다 캠프를 하고 있었으므로 거기에 참여하여 배워오도록 했다. 연수를 다녀온 그들은 38명이 참석한 1박 2일의 어린이 캠프를 무난히 잘 치러냈다.

나는 캠프를 계기로 매주 정기법회를 하길 원했으나 캠프를 치르느라 녹초가 된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손사래를 쳤다. 교육경력이라고는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다였던 이 평범한 가정주부들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법회를 하라고 하면 절에 나오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나는 어쩔 수없이 다음 인연을 기다려야만 했다.

젊은 불자 두 명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였다. 당시 서른 살쯤 돼 보이는 여성 불자는 대한불교청년회 대구지구 권미아 회장이었고, 그보다 열 살쯤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남자는 대불청 고문, 정송기 불자였다. 내가 그들에게 왜 어린이법회를 하려는지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구 사찰에 불교청년회가 다 사라졌습니다. 여러 가지의 행사를 해봤으나 이삼십대 젊은 불자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어린이법회를 활성화시킨다면 청소년법회를 거쳐 불과 10년 후에는 청년회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린이법회를 의욕적으로 할 사찰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스님께서 오래전부터 교사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좋았다. 불교청년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린이법회부터 하겠다는 그들의 긴 안목이 좋았다. 문제는 그들이 결코 짧지 않는 그 세월을 한결같이 할 수 있느냐였지만, 일단 그들은 의욕이 넘쳤다. 여름 캠프를 마친 그들은 매주 일요일 어린이들을 절로 불러들였다.

내가 보성선원에 오고 나서 3년 반만에 드디어 어린이법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리절이 위치한 송현1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은 모두 1,2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100명 모으는 것을 1차 목표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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