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사찰이 가지는 美

서양의 템플은 신 위한 공간
동양의 사찰, 예배·수행 장소
사찰은 폐쇄 아닌 소통 추구

선종 사찰들 자연 환경 중시
삼라만상을 ‘공함’으로 직관
자연은 선적 깨달음의 표현


▲ 한국불교 대표 관광문화자원인 템플스테이〈사진 왼쪽〉와 대표 선종 사찰 중 하나인 봉암사 전경〈사진 오른쪽〉. 한국의 선종 사찰은 깨달음의 표현 매체로 자연 환경을 중시했다. 템플스테이 역시 사찰을 폐쇄적 성소가 아닌 개방과 소통의 장소로 여겼던 동양적 전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요즘 템플스테이가 인기이다. 풍광이 좋은 절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스님들처럼 먹고 자고 수행하는 것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그 어떤 치유보다 더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회복시키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템플스테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서양에서 ‘템플’은 신전을 말한다. 서양의 신전은 그야말로 신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신전을 지키는 사람조차 그 공간에서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직자를 위한 주거공간도 성소 외부의 별채에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템플스테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서양에서 불가능한 템플스테이가 한국불교에서 가능한 것은 사찰 공간의 의미와 기능이 서양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은 그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관계까지도 영향을 준다. 성과 속이 완벽하게 분리된 서양 건축과 달리, 동아시아 불교의 사찰 건축에서 성과 속의 공간은 기능적으로 중첩되고 통일되어 있다. 불교사찰은 불교의 상징인 불상이나 탑을 봉안하여 수행자들이 머물면서 수행하고 전법하며 동시에 신자가 예배하고 수행하는 장소이다. 다시 말해 사찰은 불보살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동아시아 사찰 건축은 서양의 폐쇄적이고 분리된 성소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소통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가람의 어원인 ‘상가라마(Sam.gh쮄r쮄ma)’는 수행자들의 모임인 ‘상가(Sam.gha)’와 거주처를 뜻하는 ‘아라마(ar쮄ma 원림)’가 합쳐 이루어진 용어로서, 교단을 구성하는 사부대중이 모여 사는 곳을 가리킨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 중인도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원림에 급고독 장자가 오두막 60동을 건축한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 역시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조촐한 건물에 불과했다. 원래 사찰은 대도시 주변의 숲이 있는 동산에 위치했으며 인도는 열대우림 기후 때문에 수행자들이 탁발과 유행을 할 수 없을 때 수행을 위한 안거제도가 정착하면서 정진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1년 내내 상주하는 주거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그 원래의 성격인 수행 공간의 성격을 잃지 않았다.

특히 선종 사찰은 예불이나 기도 같은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기능보다 수행을 위한 기능이 강조되었다. 원효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수행자에게 세속의 인연을 끊고 심산유곡에서 수행할 것을 권유한 것처럼, 불교 수행자에게 적정처(寂靜處,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필요불가결한 요건이었다.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대부분 개인적인 수행이었기 때문에 굳이 사원을 건립할 필요가 없었으나, 선종 수행은 조사(祖師)를 중심으로 모인 사원공동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중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장소, 즉 사찰이 필요해졌다.

지금도 그렇듯이 선종 사찰 조영의 주된 관심은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사원, 즉 불국토 건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위한 최적의 환경조성을 조성하는 데 있었다. 선종사찰은 대부분 인적이 드문 심산유곡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사찰 부지 선정할 때 풍수지리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도량은 땅의 기운이 넘치고 맑고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가능하면 자연의 힘을 응집시켜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심성을 맑게 하여 선수행에 도움이 주어야 했다.

풍수지리설은 특히 신라 말 구산선문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이 구산선문 중 여덟 개의 산문이 중국의 풍수지리설이 유포된 강서지방에 유학한 선승에 의해 개창되었다는 사실은 선종이 풍수지리설의 유행에 일조하였다는 학설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중국에서는 육조 혜능의 시대에 강서지방을 중심으로 풍수지리설이 유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혜능이 보림사를 정한 기록과 백장회해와 사마두타, 영우에 얽힌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중국사찰이 풍수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당나라를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의 선승들은 각자 산문을 개창할 때 풍수적 원리에 따라 터를 선정하였다. 장소는 때로 풍수 유행 이전의 민간 신앙의 성지인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그 곳이 풍수지리적으로도 훌륭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결함이 있는 터에 대해서는 도선은 비보와 같은 적극적 논리를 펼쳐 개산의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선종과 더불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것을 수용할 만한 사회분위기와 지지기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각 산문은 지방 교화의 중심지이자 지방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풍수지리설은 그 수용계층인 지방호족세력들에게 진골 귀족들의 지역적 폐쇄성에 반발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지방 호족은 풍수지리설을 이용하여 자신의 본거지를 명당이라고 내세움으로써 그들의 독립적 세력형성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아란야에서 수행하는 선종 수행의 전통과 풍수지리설의 영향, 그리고 선종의 지지 세력인 호족의 지방분권적 성격 때문에 선종 사찰은 대부분 산지에 위치하게 되었다.

선종사찰은 종교적 상징의 완전성이나 성스러움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종교적 진리가 그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종은 자연에 대하여 순수하게 현상적인 태도를 열어주었다. 다시 말해 선종에 이르러 자연은 종교적 상징성이나 도덕적 비유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순수하게 현상적인 것이 되었다.

자연은 원시신앙에서는 보이지 않는 마법적 힘의 상징이었으며, 유가에서는 〈논어〉의 “지혜로운 삶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처럼 덕의 유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선종에서 자연은 주술적 괴력의 존재도, 덕의 유비로서 도덕에 대한 예시도 아닌 순수현상이 된다. 이러한 자연관으로 말미암아 이제 자연은 순수하게 미적인 것이 되었다.

선종 수행에 있어서 자연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선종이 비록 일체 색을 떠날 것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자연환경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선종사찰은 대부분 산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수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러나 그것은 세속과의 인연을 끊는다거나 산수에 흐르는 기운을 응집시켜 정신적 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종교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깨달음에 대한 선적인 표현의 매체가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교가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특징적인 것은 ‘안·이·비·설·신·의(眼, 耳, 鼻, 舌, 身, 意)’라는 감수작용을 통해 받아들여진 세계의 모습, 즉 ‘색·성·향·미·촉·법(色, 聲, 香, 味, 觸, 法)’을 순수 현상으로서 이해하는데, 그것은 객관적 실재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 인식 능력에 현현된 세계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정적 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그것은 공(空)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종에서 자연은 순수하게 현상적인 것이지만, 그 현상은 현상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空)의 직관으로 변한다. 바로 현상 속에서 공을 직관할 수 있을 때 깨달음이 얻어진다. 그러므로 자연은 선적 깨달음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 되며, 미적 대상으로도 전환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서양 미학에서처럼 그 자체의 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적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에 내재된 객관적 미에 의해 우리가 미를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순수한 현상으로 바라보는 그리고 그것을 공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미적 감수가 형성되며, 동시에 선적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시선일치(詩禪一致)’가 주장된 근거이다. 선 수행에서 수행은 자연과 소통하고 대중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깊어가는 것, 그러므로 속의 공간을 그대로 성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 나옹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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