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치게 높고 가파른 계단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경상북도 o사찰.
사찰이 산지에 자리를 잡은 까닭에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계단이 많이 조성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찰에서 계단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에서 계단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찰은 부석사, 화엄사, 범어사, 해인사 등과 같은 화엄십찰에 속하는 사찰들이다. 이들 사찰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지형이 험하고 경사가 심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한 지형적 특성에 순응하여 터를 만들고 건물을 앉히다보니 계단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시각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험한 지형에 자리를 잡은 사찰들은 규범적 원칙을 가지고 계단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으며, 보기에 싫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사찰이 여러 단으로 공간을 잘게 구분한 것은 바로 지형과 지형사이를 연결하는 계단이 이러한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사찰에 설치하는 계단을 보면 디자인이나 재료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능성이나 안전성 그리고 시각적으로 불안정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난날에 비해서 가용지가 많지 않고, 좋은 땅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리한 지형처리가 가능해진 까닭도 있고 과도한 토지이용을 하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지형차이가 많이 나서 계단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계단 돌의 디딤면과 챌면(높이)의 비례가 맞지 않거나, 계단참이 적당한 간격으로 마련되지 않거나 난간이 없으면 오르내리는데 불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이가 많은 불자들이나 장애를 가진 불자들은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어떤 사찰의 경우에는 경사로와 계단을 동시에 설치해놓아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불자들에게 경사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경우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오래된 산사에서 엘리베이터는 정서상 어울리지가 않는 물건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적용하였던 계단설계의 규범적 원칙은 간단하다. 사부대중이 모두 만족할만한 계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찰에서 새로 계단을 설치할 때 문화재청에서 마련한 설계기준을 적용하면 사부대중이 모두 만족하는 계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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