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불교 정신으로 민족주의 불 당기다
참여불교 정신으로 민족주의 불 당기다
  • 조준호 교수
  • 승인 2013.06.2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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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민지배기간의 불교운동

미얀마는 1826년부터 1852년까지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영국은 주변부의 친(Chin)족, 까친(Kachin)족, 꺼인(Kayin 또는 Karen)족 등 소수 부족을 통치에 이용했다. 미얀마 소수부족 복장을 입은 미얀마 젊은 여성들의 모습
영국 식민 통치 전략은 민족분열
선교사 동원 소수부족 기독교 개종
공공교육서 불교 교육 금지 시켜

불교지도자 나서 반영투쟁운동 전개
스님들 옥고에 미얀마 국민 한마음
현대 상좌불교 사회 영향력 여기서 기인

세 번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미얀마는 1886년 1월 1일 영국령으로 정식 편입된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미얀마는 다시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의 한 주(州)에 속하게 됐다.

영국의 전형적인 식민지배 전략은 ‘분할통치(divide &rule)’다. 미얀마에서는 이런 통치 전략이 지배민족이었던 ‘버마’족과 산간 및 주변부 부족들을 나누어 통치하는 방법으로 전개됐다. 영국은 다수인 ‘버마’족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주변부의 친(Chin)족, 까친(Kachin)족, 꺼인(Kayin 또는 Karen)족 등 소수 부족을 이용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을 이용해 제국주의에 종교ㆍ문화적으로 편입시키려 하였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미얀마에서 오래전부터 선교를 시도했으나 불교신앙이 독실해 개종하는 이들은 미미했다. 이에 선교사들은 주변부 소수민족을 공략했다. 이들은 불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으며 부족의 토속신앙이 강한 산악 지역 사람들을 개종시켜 나갔다.

선교사들은 친족, 까친족, 꺼인족 등을 ‘버마’족과 완전히 떼놓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선교사들은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친족 여성들의 얼굴 문신이 버마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됐다’, ‘꺼인족의 홍수신화는 꺼인족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한 종족임을 증명한다’ 등의 날조된 사실을 동원해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인도에서 영국 선교사들이 진행한 방식과 비슷했다. 그들도 주류인 힌두교도 외에 주변 부족과 하층계급을 이 같은 방식으로 개종시켰다.

이는 계층, 민족갈등에 종교갈등을 더해 심각한 사회갈등을 낳았다. 인도와 미얀마의 소수부족들은 현재에도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중앙정부와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다.

영국정부는 공공 교육체계에서 기독교를 선교하려는 목적으로 1852년 불교사찰에서 행해오던 교육체계를 폐지하고 대신 기독교 미션학교와 공립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미션스쿨에서는 성서의 교육이 의무적으로 진행됐으며 공립학교에서는 불교적 내용이 철저히 배제됐다. 이 때문에 당시까지 15~16세에 행해지던 출가의식인 ‘신쀼(shinpyu-bwe)’의 시작나이가 공립학교 교육과정에 저촉받지 않는 6세 가량으로 앞당겨 졌다.

미얀마 전통사원과 영국풍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자들 중심으로 민족운동 일어나

이러한 상황에서 미얀마에서는 불자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1906년 기독교 YMCA에 대항하기 위해 청년불교도연맹(YMBA: The Young Men's Buddhist Association)이 결성됐다. 미얀마의 젊은 변호사들이 스리랑카 청년불교도연맹(YMBA)을 알게 되면서 만들어진 YMBA는 불교 부흥과 불교학교 운영 그리고 미얀마 전통문화 보존을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1916년 YMBA는 영국인들이 불교사원에 신발을 신고 들어온 행위에 대해 사원 내 탈화(脫靴)를 법으로 보장해달라고 영국 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무시당했으며 미안마 국민들은 차츰 영국의 지배에 불만을 품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유명한 레디 샤야도(Ledi Sayado)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장문의 성명서를 통해 영국의 정책이 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19년 미얀마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다시금 야기된다. 유럽관광객들이 또 다시 신발을 신고 사찰에 들어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를 지적하고 비판한 스님들을 영국정부가 체포해 종신형에 처한 것이었다.

이에 미얀마 스님들과 국민들은 식민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이 같은 국민열기에 영국은 정식으로 사과한데 이어 사찰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도록 법을 제정해 공표했다.

이 사건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불교를 매개체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후 1919년 YMBA가 미얀마 자치를 요구하기 위해 대표단을 꾸려 영국에 갔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YMBA는 계속적으로 자치권을 얻기 위한 운동을 펼쳤는데 점차 정치적인 성격을 띄며 ‘전국불교도평의회(GCBA)’로 이름을 바꿨다.

전국불교도평의회는 이후 다른 조직과 연대해 ‘전버마평의회(General Council of Burmese Associations)’로 확대됐다. 전버마평의회는 영국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전국평의회에는 미얀마 스님들도 대거 참여해 시장 등을 돌며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계획도시로 지어진 미얀마 양곤의 영국식 가옥
미얀마 참여불교 운동에는 스님들이 앞장서

미얀마에는 영국의 식민정책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불교단체들이 결성돼 불교를 보호하고 진작시키려는 활동이 전개됐다.

대표적인 단체들이 중북부 만달레이의 불교협회(Buddhasasananugaha), 남부 몰라민의 불교수지회(Sasanadhara), 서부 뻬테인의 아쇼카 협회(Asoka Society)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스님들이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 미얀마 근대사에는 이처럼 스님들이 역사와 민족, 그리고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참여불교’ 정신이 있었다.

반식민지 반영투쟁운동 지도자인 옥뜨마(U Ottama)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불교교단은 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정신적 이익을 위해 집중해 있을지라도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불법의 위상은 신앙심이 좋은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교단의 보살은 반드시 고난 속에 있는 중생들을 이끌어야만 한다.”

옥뜨마 스님은 불교의 보살정신 발현이 사회와 역사를 바꾸는데 참여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옥뜨마 스님은 청년불교도연맹(YMBA)을 중심으로 영국에 대항해 미얀마 대중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운동에도 나섰다. 이 운동은 양곤대학 학생들이 중심이 된 이후 미얀마 각 대학과 학교로 퍼졌다.

옥뜨마 스님은 인도의 간디에 영향을 받아 영국식민정부에 협력하지 않는 저항을 배워 미얀마 각지에서 세금을 내지 말 것과 외국상품을 구입하지 말 것 등을 선전했다. 옥뜨마 스님은 여러 차례 영국정부로부터 체포돼 구금을 반복하다 1939년에 생을 마감했다.

옥뜨마 스님과 함께 청년불교도연맹에서 활동한 우 위자라 스님은 반영 설법을 하다 거듭 투옥당했다. 우 위자라 스님은 세 번째 투옥 당시 단식으로 대항하다 166일 만에 옥사했다. 우 위자라 스님이 옥사한 다음해 미얀마에서는 영국통치에 저항하는 최대 규모의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이 당시 농민 봉기를 이끈 이는 사야 산(Saya San) 스님이었다. 1932년 진압되기까지 1만 명이 사살됐으며 8000명이 체포돼 28명이 사형, 270명이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사야 산 스님 또한 체포돼 1937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재 대법원으로 사용중인 영국 식민지배기간 지어진 건물
미얀마 독립에는 학생들 또한 큰 역할을 했다. 1930년 학생들을 주축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됐는데 당시 미얀마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에 ‘떠킹(Thakin)’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Thakin’은 미얀마 말로 주인이란 뜻으로 꺼인(Kayin), 까친(Kachin) 그리고 샨(Shan)족 출신의 병사들이 영국군 장교를 ‘떠킹’이라 부르며 마치 주인처럼 여기는 것에 반대해 ‘미얀마는 미얀마인이 주인’이라는 의식개혁 차원에서 붙여졌다.
이들은 전국에서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는데 1940년 경에는 청년 스님들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 1935년에는 정치정당으로 정식 창단됐으며 영국 교육 상 문제를 계기로 학생파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이가 바로 마웅 아웅산(Maung Aung San)과 마웅 누(Maung Nu)였다. 아웅산은 후일 미얀마 독립을 이끌었으며 마웅 누는 미얀마 독립 후 초대 수상이 됐다.

미얀마 불교도들이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해 민족성과 불법을 지키겠다는 운동은 해외로도 퍼져나갔다. 인도 대각회(大覺會 : Mahabodhi Society)와 미얀마 불교도들은 함께 연계해 인도 불교유적지 복원 운동을 펼쳤다.

대각회는 인도불교부흥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스리랑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에 의해 설립된 불교부흥 운동단체다.

미얀마 짠드라마니 스님은 인도 성지에 40년 동안 머물며 대각회와 함께 인도불교재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후일 인도불교 부흥운동을 주도한 신불교(Neo Budhism)운동 기수 암베드까르가 불교에 귀의한다.

이렇듯 식민지 시대 미얀마에서 스님들이 보여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적극적이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초기불교전통을 잇고 있는 동남아에서 불교는 사회참여에 소극적인 소승일 뿐이며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사회적 역할 의미를 강하게 지닌 대승이라는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가 얼마가 도식적인 사고인지 그리고 합당한 견해가 아닐 수 있는지를 미얀마의 경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좌불교 국가에서 불교도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단순히 전통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앞장서 이행했기에 얻어지는 것이란 점에서 현재 한국불교계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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