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실 분위기 드러낸 작품
초의 다삼매·추사 예술적 감성 ‘짝’
‘명선’‘일로향실’ 추사의 정표 ‘명품’

▲ 《완당전집》 〈여초의〉
추사는 늘 제주도에서 초의가 보낸 차와 편지를 기다렸다. 소치 편에 보낸 그의 편지가 아직 도착되기도 전에 연이어 벗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제주와 대둔사는 바다를 사이에 둔 머나먼 땅, 뭍으로 떠나는 인편이 있으면 상황이 될 때마다 그리운 벗, 초의의 안부를 물었던 그였다. 이런 사연을 지닌 《완당전집》〈여초의〉 23신도 마찬가지이다. 진도로 돌아가는 소치 편에 편지를 보냈건만 다시 뭍으로 떠나는 인편이 있어 재차 안부를 물었는데, 이 편지에는 초의의 선실에 걸어 둘 ‘일로향실(一爐香室)’편액을 소치 편에 보냈다는 내용이 보인다. 차 향 가득한 벗의 선실(禪室)에 걸었을 ‘일로향실’이 어떤지를 은근히 물었다. ‘차향 가득한 그윽한 방’인 일로향실은 바로 초의가 머무는 선실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드러낸 추사의 예술적 감성이 한껏 드러낸 작품이다. 바로 초의가 궁구한 선과 차의 세계였던 다삼매(茶三昧)는 일로향실(一爐香室)과 짝을 이룬다. 다삼매의 경지가 무젖은 공간, 일로향실은 초의의 당호이자, 추사의 이상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소치에게 보낸 ‘일로향실’ 편액 이야기는 이 편지의 중요한 핵심 정보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치가 떠날 때 편지를 보냈는데 이미 보셨겠지요. 봄이 한창 무르익어 산중에 꽃들도 한창 피었을 것이니 참선 중에 기쁨도 자재하시며 혹 해상에서 놀던 옛날 일도 생각이 나는지요. 아프던 팔도 점점 나아 (팔을) 쓰는데 장애나 불편은 없으신지요. 저는 입과 코가 풍증과 화기로 오히려 고통스럽지만 그냥 둘 뿐입니다. 허군이 가지고 간 향실(일로향실) 편액은 과연 바로 받아서 걸으셨는지요. 마침 집의 하인이 돌아가는 편에 잠깐 스님을 잠깐 찾아뵙도록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염나 許痴去時 寄緘已印照夫 春事爛漫 山中百花盡 放禪喜自在 亦或念到於海上 舊遊歟 臂疼漸勝運用無?無怨否 賤狀口鼻風火尙苦 亦任之耳 許君所帶去香室扁 果卽取揭耶 適因家핲平之歸 使之暫爲歷申 餘姑不宣 髥那

소치가 뭍으로 떠날 때 보낸 추사의 성의는 편지 하나만은 아니었다. 차와 포장(泡醬)을 보내 삭막한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었던 벗의 배려를 늘 고마워했던 추사였다. 때론 일상의 여가를 담아 낸 추사의 묵적은 초의에게 보내는 작은 정표였다. 그의 절세 작 ‘명선(茗禪)’이나 ‘일로향실(一爐香室)’ 또한 이렇게 탄생된 걸작들이다. 그의 뛰어난 예술적 심미안이 고스란히 드러난 ‘일로향실(一爐香室)’, 담박한 여백미와 통기성(通氣性), 정제된 필선은 감상하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하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바로 이 절품(絶品)이 소치를 통해 전해진 것. “허군이 가지고 간 향실(一爐香室) 편액은 과연 바로 받아서 걸었는가”라는 추사의 변은 초의의 답을 기다린 것인가. “봄이 한창 무르익어 산중에 꽃들도 한창 피었을 것”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편지를 보낸 시기와 1844년 봄, 뭍으로 떠났던 소치의 행적과도 일치한다. 더구나 그가 1844년 3월 10일, 집으로 보낸 편지에 “나는 설창(舌瘡:혀에 난 종기)과 콧병으로 여전히 고생하면서 5~6개월을 끌고 있다”라 하였고, 이 편지에서도 “저는 입과 코가 풍증과 화기로 오히려 고통스럽지만”이라 한 것으로 보아 이 편지는 설창과 콧병을 앓았던 시기에 보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편지는 1844년 봄, 뭍으로 떠나는 소치 편에 편지와 편액을 보낸 후, 연이어 하인 편에 다시 보낸 것이니 “일로향실(一爐香室)”은 분명 1844년경에 쓴 작품이다. 한편 “해상에서 놀던 옛날 일도 생각이 나는지요”라고 한 말은 서로 잊지 말자던 벗, 초의를 그리워하는 추사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말을 타다 엉덩이와 팔을 다친 초의, 그를 염려하는 추사의 살가움은 이 편지에도 누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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