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문→영기문 하

 

고려청자 암막새의 무늬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초문(일본, 한국), 만초문(중국), 넝쿨무늬(한국) 등 여러 가지 용어로 부르고 있어서 각각 다르지만 모두 넝쿨식물을 가리키는데, 그 모든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려청자 암막새의 무늬에서 시작점을 찾아보기로 하자. 그 시작점은 <∽> 이런 모양이다. 이것은 제1영기싹이 두 개 이어져서 생긴 조형이다. 여기에서 ‘제1영기싹’이 방향을 서로 바꾸어 전개한 것이 암막새 영기문의 골자(骨子;본질)이다.(그림 ①). 즉 이런 조형의 전개를 ‘영기문의 전개’라 한다. 그러면 영기문(靈氣文)이란 무엇인가 알아보고, 계속하여 암막새의 무늬를 분석해 나가기로 한다.

도상으로 표현된 영묘한 기운
동양에는 ‘기(氣)’라는 개념이 문명의 발상 때부터 있어왔다. 그러므로 ‘기를 표현한 조형’이 ‘기라는 문자’를 만들었을 때 보다 훨씬 전에 이루어져 왔음을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노자」에 있는 말처럼 ‘최초에 혼돈이 있었는데 그 혼돈에서 가장 으뜸가는 일원(一元)의 기가 생기고, 그 일원의 기가 양기(陽氣)와 음기(陰氣)로 나뉘고,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 만물을 탄생시킨다.’ 등 우주생성론의 역동적 이야기들이 나온다.

구태여 말한다면 ‘제1영기싹’이 양기에 해당하고, ‘제1영기싹에서 생긴 제2영기싹’이 음기에 해당하고, ‘제3영기싹’은 그 음양의 조화에서 일어나는 만물의 생성을 가리킨다.(그림 ②) 나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조형의 원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 원리를 찾아내기까지 수많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조형을 선묘하고 채색분석(彩色分析)하였다. 그 원리로 그 이후 수많은 영기문들을 조금도 오차 없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단순한 기라는 말보다는 그것을 더욱 강조하여 ‘영묘(靈妙)한 기’라는 의미로 ‘영기(靈氣)’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든 것이다.

즉 영이란 말은 중요한 것으로 기와 합쳐져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리키게 되었다. 영기는 간단히 말하면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을 가리킨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우주에 가득 찬 여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기 혹은 영기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인류는 문명의 발상 때부터 우주에 충만한 기를 감지하여 조형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특정한 모양이 아니어서 표현원리만 지키면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다. 옛 사람들은 영적(靈的)인 인간이어서 눈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타락한 현대인에게는 기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일체의 조형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현실에서 보는 비슷한 자연의 모습을 이끌어 이름을 붙여서 오류를 범해왔다. 이에 새로이 ‘영기문(靈氣文)’이라 용어를 만들었으나 영기문은 통칭이요,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하여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 하나하나씩 용어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영기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눈에 보여서 명칭을 만든 용어들이 가리키는 조형 보다 훨씬 더 많고 그 의미하는 바가 커서 그것을 밝히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당초문이란 말 역시 수많은 당초문들을 통칭으로 가리키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영기를 조형화한 일체의 것을 영기문이라 통칭하여 대응시킨 것이 ‘당초문→영기문’이라는 이 연재의 제목이다. 그러므로 다음부터는 구체적으로 제목을 정하여 서술하여 나가기로 한다.

암막새에 담긴 영기싹의 비밀
고려청자 암막새의 영기문은 추상적인 것이며,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차차 구상적으로 변하지지만 자세히 보면 구상적인 영기문 가운데 추상적 영기문이 눈에 잘 띠지 않게 숨겨져 있다. 암막새 영기문의 시작점은 ‘제1영기싹 둘이 연결된 ∽ 모양’인데 여기에서 출발하여 제1영기싹이 방향을 바꾸어 가며 전개하여 가다가 주어진 한정된 공간이어서 어느 시점에서 중지한다.

그다음 그 기본 틀에서 갖가지 형태의 작은 곁가지 영기문, 즉 생명의 싹을 나타내는 영기문들, 즉 제1, 제2, 제3영기싹들이 싹터서 주어진 암막새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그림 ③) 그러므로 암막새의 공간이, 영기가 충만한 우주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암막새의 영기문은 만물을 탄생시키는 근원이 되며, 그런 우주생성론의 엄청난 의미를 암막새가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재에서는 생명이 생성하는 긴 과정을 단계적으로 채색분석한 것을 모두 실을 수 없다. 다만 첫 단계와 마지막 단계만 싣는다.

그러면 수막새의 모란꽃 같은 조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꽃인가? 누구나 모란꽃이라 부르는 것을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5년이나 걸렸는데 그 문제는 간단히 설명할 수 없으므로 ‘영화된 꽃’ 즉 ‘영기꽃’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놓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한다.(그림 ④) 즉 통일신라의 기와에서 보듯이, 수막새의 용이나 연꽃(영기꽃)의 양쪽으로 영기문이 뻗쳐나가듯(그림 ⑥), 고려 청자기와에서도 영화된 모란모양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을 보여준다.(그림 ⑤) ‘용’이나 ‘연꽃모양 영기꽃’이나 ‘모란꽃모양 영기꽃’은 모두 만물의 근원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