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화엄특강에 전국강사 1백여명…‘환희·감탄’
월정사 화엄특강에 전국강사 1백여명…‘환희·감탄’
  • 대담=김광식 교수(동국대)
  • 승인 2013.06.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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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굴의 無影樹 〈16〉탄허 스님 탄신 100년 증언- 성일 스님

성일 스님 / 신흥사 주지 동학사 강원 수학, 내원사 선원 수행 조계종 포교대상과 만해대상 포교상 수상
유불선 통괄 불교빛낸 ‘불후의 명강’
성일 스님, 녹음 테이프 제작 보급
“부처님 다녀오겠습니다” 꼭 인사
가까운곳도 두루마기 정장 외출

-스님은 탄허 스님의 화엄경 불사에 1970년부터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전 세 시에 일어나서 아침 예불을 올리고, 새벽 공양을 하고는 그때부터 교정을 시작해서 하루에 열두 시간씩 교정을 보았어요. 그때에 큰스님과 각성·무비 스님 등 서너 분의 스님은 탄허 스님이 번역한 경전의 원전을 보시고, 저는 계속 읽고 그랬죠. 그 원고지 분량이 용달차 한 대 분량이나 되었는데, 그 원고를 다 읽으면서 혹시 빠뜨린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어요. 참으로 대단한 것이 그 많은 분량에서 빠진 글자가 열 자도 안 돼요. 이런 점에서 저는 탄허 스님의 집중력은 대단하였다고 봤고, 아주 놀랐어요. 스님은 새벽 세 시면 꼭 일어나셔서 앉으시면 참선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침 공양을 하시고 교정을 시작하시면 하루 종일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꼬박 1년을 작업하셨습니다. 우리 대중은 아주 열심히 하였지요.

-그러나 1974년 경 대원암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동참하였지요?
그렇죠. 그 시절에는 제 은사도 절을 지키셨고, 대중도 있어 덜 바빠서 대원암에 가서 숙박을 하면서 몇 달씩 작업을 했죠. 여기도 왔다 갔다 하면서, 할 때마다 갔죠. 대원암에서는 출판을 전제로 인쇄작업을 한 것을 갖고 세심하게 7교까지 봤어요. 그때에 제가 느낀 것은 탄허 스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글자도 안 틀리고, 알기 쉽게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우리 같은 젊은 사람도 하루 종일 교정을 보면 힘이 드는데 큰스님께서는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안 주무시고, 새벽에는 참선을 하시면서 그렇게 훌륭한 작업을 하신 것은 대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것은 큰스님은 부산에서도 그랬지만, 대원암 시절에는 꼭 어디를 출타하실 때에는 부처님에게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인사를 지극정성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다녀오셔서도 그렇게 하였어요. 저는 그런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지요. 그런 점이 저희들이 배울 점입니다. 그리고 꼭 가까운 곳을 가시더라도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가십니다. 항상 정장차림으로 가십니다. 이런 점도 우리들이 본받을 점입니다.

-대원암 시절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요?
그럼요. 내방객이 다양했어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들이 교정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듣고 갑니다. 교정을 보려면, 경전을 읽고 그랬으니깐요. 큰스님은 시간 관념이 철저해요. 내방객들은 교정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큰스님이 한 마디씩을 툭 던져 주면, 그 말씀을 법문으로 듣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교수라든가 지식인들이 말을 하면 스님은 그것을 당신의 지식으로 삼기도 하지요.

-대원암에서의 작업을 마치고 이곳 신흥사로 여행을 왔다는 말이 있어요.
그랬어요. 이곳으로 왔지요. 그때 여기는 대추나무가 있었는데, 여기 대추가 아주 달았습니다. 탄허 스님이 대추를 좋아하셨어요. 스님이 왜 대추를 좋아하셨냐 하면, 화엄론을 지은 이통현 장자가 하루에 대추 세 알을 먹으면서 화엄론을 지었다고 해서 아주 좋아하셨어요. 지금은 불사를 하고, 절을 넓히는 바람에 대추나무가 다 없어졌지만, 대추가 맛이 있지 않습니까.

-탄허 스님의 역작인 〈신화엄경합론〉 서문을 보면 성일 스님의 이름도 수고하신 명단에 나옵니다. 스님은 탄허 스님에게 한 질을 받았나요?
그럼요. 스님이 그 책에 ‘성일 상인(上人)’이라고 직접 서명을 해서 주셨습니다. 스님이 저에게 상인이라고 해서 써주니까 옆에 있었던 무비 스님이 비구니에게 상인이라고 써주신다고 뭐라고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스님께서 “성일이는 상인이라는 글을 받을 자격이 있지” 그러셨어요.

-탄허 스님이 책을 출간한 후에 화엄경 특강을 하지 않았습니까? 스님도 거기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이 열리게 된 배경을 들은 것이 있나요?
그것은 대원암에서 교정 작업을 할 때에 저희 대중들이 건의를 하였어요. 교정을 본 스님들이 “이게 끝이 나면, 책을 출간한 후에 월정사에서 화엄산림을 크게 한번 열어야 합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하면 스님들이 많이 모일 것입니다 했지요. 교정볼 때부터 말이 나온 거예요. 월정사 대중들도 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화엄산림의 그 공개 특강은 탄허 스님의 진면목을 널리 알린 기념적인 모임이었지요.
그렇지요. 그때 전국의 강사급 스님들이 100여 명이 모였어요. 그때 불교신문에 공고를 하였지만, 저는 스님을 자주 찾아뵈니, 알고 있었지요. 스님의 강의는 학인 수준에는 안 맞고, 학인을 지도하는 스님들이 되어야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때에 모인 스님들의 반응은 대단했어요. 감명 깊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조계종단이나 비구 스님들 세계에서는 탄허 대선사는 유불선을 조금 알고, 한문을 잘 하는 스님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강의를 들어 보니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 온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랬죠. 수준이 다르다고 그랬어요. 강의 이전에는 탄허 스님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강의를 하고 난 후에는 스님의 훌륭한 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비구니들은 강의 때에 서별당에 딸려 있는 조그마한 방 한 방에 세 명 씩 있었어요. 그때 같은 방에 있었던 일법 스님은 강사 자격이 있는 스님이었는데, 저에게 강의를 듣고서는 환희심을 내고, 탄허 스님이 훌륭하다는 말을 했어요. 강사 자격이 있는 스님들이 한 곳에, 100여 명이 모여서 그런 강의를 듣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그때에 유생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탄허 스님이 아주 대단하다고 칭찬을 많이 한 사람도 기억이 납니다. 또 1월 1일에 눈이 오는데 모두 보궁에 가서 참배를 하고, 내려올 때에 미끄러워서 힘들게 내려온 것도 생각납니다.

-성일 스님께서는 월정사에서의 화엄경 강의를 녹음 테이프로 만들어 보급하신 일의 주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과정, 내용을 자세하게 들려주세요.
제가 큰스님의 화엄경 녹음을 한 것은 월정사 특강이 열리기 전에도 했어요. 그것이 대원암에서의 교정 작업과 책 출판이 끝나고 나서 스님께서 삼보법회가 주관한 법회에서 화엄경 강의를 하셨을 때에 녹음을 하였어요. 그때 저는 교정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여기(신흥사)로 돌아와서 있었어요. 그때에는 이곳이 21평짜리의 방 셋밖에 없는 초가집과 열 평짜리 법당 딱 두 채였어요. 그래도 스님의 강의가 있는 일요일마다 안 빠지고 녹음기를 들고, 삼보법회의 화엄경합론회석 강의를 듣기 위해서 풍전상가에 갔어요. 회석(會釋)이라는 것은 팔만대장경 교리와 화엄학을 회통(會通)해서 해석한 것인데 보통은 통현 장자의 논을 회석이라고 하지요. 그때에 제일 앞에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녹음을 한 것이지요.

-지금의 말씀은 저는 처음 듣습니다.
월정사에서 강의를 듣는데, 강의를 듣는 스님들이 강의를 쭉 듣다가 탄허 스님의 강의는 대단한데, 이 강의를 뭔가 간단히 요약해서 들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나왔어요. 원래 화엄경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같거든요. 그런 말들이 대중에게서 나오니깐 천상 그러면 내가 나서서 스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제가 말씀을 드렸지요. 제가 그래도 여러 해를 스님을 모시고 있었고, 스님을 모시고 교정도 보고 그랬으니까요. 저는 화엄경을 여섯 번이나 읽었어요. 제가 입이 빠르니깐, 입으로만 그렇게 읽었어요. 그래서 큰스님에게 한 철 강의가 거의 끝나가니까 강의를 듣는 스님들에게 경의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서 총론적인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총강을 해주세요” 하였지요. 그래서 스님께서 6시간으로 그것을 해주셨습니다. 이 내용에는 유불선 3교의 핵심과 〈신화엄경합론〉의 핵심이 다 들어 있어요. 그러니깐 화엄경 강의하신 것과 총론을 저는 다 녹음을 하였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탄허 대선사에 대해서 일반인이나 스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스님은 도교와 유교의 진리만 말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나 스님은 도교와 유교의 진리는 요만큼만 들이대지만, 불교를 다룰 적에는 유교와 도교를 다 다루면서도 불교를 더 크게, 중요하게 말씀했어요. 스님은 불교를 더 알기 쉽고, 더 중요하게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도교, 유교를 말씀하셨다는 그것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스님은 불교를 대단히 더욱 중요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어떤 스님들은 탄허 스님이 도교와 유교만 안다고 해서 찾아뵙지 않았다가, 그 테이프를 듣고서는 찾아뵙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스님의 강의에는 유불선을 통괄하고, 그 후에는 불교를 더 빛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스님의 강의를 불후의 명작이라고 그럽니다. 명강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녹음 테이프에는 그 내용이 다 실려 있나요?
월정사 특강이 끝나고 난 뒤에 제가 스님에게 건의를 하였지요. 스님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다 대단하다고 하고, 유불선의 종지와 화엄경의 핵심이 있는 강의였는데 그 강의를 못 들은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하니, 녹음한 테이프가 있으니 그것을 갖고 제작해서 보급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러냐고 하시면서 허락을 해주셨어요. 스님 강의는 너무 간결하고, 머리에 잘 들어가도록 참으로 정리가 잘 되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총 정리하신 총강(總講) 테이프 여섯 개를 먼저 만들어서 보급 했어요. 그 다음에는 총강, 삼보법회에서의 화엄론회석, 월정사에서의 특강 등을 모두 합해서 한 질로 만들었어요. 제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녹음기를 갖고서 청계천에 있는 가게에 갖고 다니면서, 빈 테이프에 녹음한 것을 갖고 똑같이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자기들이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의뢰해서 만들고 불교신문에 광고를 내고, 불교신문에서는 한국불교사에서 큰스님의 법문을 녹음 테이프로 만든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기사를 냈어요. 그 이전에는 큰스님의 법문 테이프가 나온 적이 없어요.

-탄허 스님은 종지를 강조하셨지요?
그래서 탄허 스님은 화엄경론을 좋아하셨어요. 승단에서는 청량국사 소초를 교과서로 보고, 그것을 연구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스님은 통현 장자의 화엄경론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통현의 논이 화엄경의 종지를, 마치 여의주를 딱 잡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신 것에서 나온 것이지요. 화엄경은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과 같은데 이통현 장자의 논은 종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총강에서도 그런 말씀을 했어요. 말이 그렇지 여섯 시간에 화엄경의 핵심을 알 수 있게, 요약해서 강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일 스님은 탄허 스님을 언급하시면서 탄허 대선사라는 표현을 하십니다. 그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글쎄요. 당신도 늘 대선사라는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셨고, 우리는 늘 대선사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탄허 스님은 한암 스님하고 편지 거래를 하시다가, 그대로 입산을 하셔서 출가 초기에는 참선만을 하셨지요. 그런데 한암 스님께서 화엄경을 갖고 수좌들의 안목을 열리게 하시려고,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 강의를 해보라고 하셔서 시작된 거예요. 그리고 탄허 스님은 경을 보는 것은 우리가 성불로 가는 길의 길잡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사이든, 누구라도 다 와서 경을 읽고 봐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계셨어요. 다시 말하면 스님은 경을 갖고 강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대선사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 번역을 선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선에 대해서 모르면 화엄경을 번역 못합니다. 스님이 늘 말씀하신 것이 일본에서는 화엄경을 번역 못한 것을 지적했어요, 일본은 근본불교나 불교학에서는 발달하였지만, 그런데도 화엄경을 번역 못하는 것은 선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셨어요. 이런 말씀은 교정하시면서 많이 하셨어요. 그분에게는 대선사가 제일 어울릴 것 같아요.

-성일 스님은 어린이 포교를 통해서 신흥사를 대가람으로 일구시는 큰 불사를 하셨습니다. 이런 불사에 탄허 스님에게 배운 가르침이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엄청 큰 힘이 됐죠. 스님은 화엄경에서도 입법계품의 선재동자를 많이 강조했어요. 선재동자는 우리 중생들과 같은 존재인데, 그 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구법을 하지 않았습니까? 53선지식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심지어는 창녀까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선지식에게 찾아갈 때마다 선재동자는 그런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부처님같이 보고 구도심을 발휘해서 끝내는 성불을 하였지요. 선재동자가 구도심을 갖고 하였던 구법의 내용을 저는 성불도놀이로 만들어서 이곳 신흥사에서 30여 년 전부터 어린이 법회에서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어요. 어린애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하면 분위기가 딱딱하고 그래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는 그런 모습, 장면을 만들어서 교화에 활용했어요. 이런 것은 화엄경을 갖고서 포교에 개발한 것인데, 이것이 다 제가 탄허 스님에게 배운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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