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김장나누기 ②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 사랑 없어
보살행은 자신의 소중한 것 쓰는 것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우리절에서는 지난 5년간 해마다 ‘자비의 김장나누기’를 해왔다. 작년엔 기초생활수급자 270가구로, 한 가구당 평균 9Kg의 김치를 플라스틱 들통에 담아 주었다. 이렇게 김장나누기를 하는 이유는 중생제도라는 보살의 본원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하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김장 불사는 8월 하순쯤, 해남의 농부에게 배추를 주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배추 단가는 일반 업자보다 높은 액수로 정하되 출하 당시의 시세에 따라 연동하도록 했다. 계약단가와 시세의 중간 액수가 최종 가격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만약 시세가 폭락하더라도 농민으로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을 기대할 수 있고, 폭등할 경우 우리절에서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배추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길게 보면 농민은 안정된 수입을 확보할 수 있고 우리는 믿을 수 있는 배추를 안정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윈윈(win-win)이다.

김장의 시작은 배추를 다듬는 일이다. 초겨울 언 손으로 거친 겉잎을 뜯어내고 칼로 배추를 반으로 가른 후 배추꼬랑이를 잘라낸다. 이렇게 다듬은 1천 포기의 배추를 가로세로 1미터 가량의 커다란 투명비닐 100여 개에 차곡차곡 담으면서 사이사이에 소금을 뿌리고는 입구를 단단히 묶는다.

때때로 뒤집어주기를 반복하면 소금이 골고루 배여 숨이 잘 죽는다. 소금은 3년 이상 간수를 뺀 걸 쓴다. 간수가 잘 빠진 소금은 쓰거나 떫은맛이 없기 때문에 김치에서 감칠맛이 난다. 우리절 김치 맛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한쪽에서는 욕조만한 스텐 용기 몇 개 분량으로 양념을 만든다. 새우와 다시마, 버섯 같은 걸 푹 고아 만든 국물에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을 넣고 강경에서 직송한 젓갈로 간을 맞추어가며 계속 저어준다. 초겨울인데도 신도들은 땀을 뻘뻘 흘린다. 우리절은 김장을 담글 때 모든 재료를 국산만 쓴다. 이웃돕기를 한다고 해서 싼 재료를 쓰지 않는다. 신도들은 자신의 가족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김치를 버무릴 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탠다. 이날만큼은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도 앞치마를 두르고 거든다. 전날 깨끗이 헹궈서 물을 뺀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려 김치를 만든다.

김장 불사를 결산해 보았더니 현명 스님의 말씀대로 큰 적자가 나지 않았다. 2008년에 120만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래 적자액수는 해마다 100만원 미만이었다.

우리절 김장 불사는 3일간 연인원 150여 명이 동원돼 치른다. 사실 그건 표면적인 것일 뿐 연신 재채기를 해대며 고추를 일일이 행주로 닦고 다듬어 말리는 기간, 빨갛게 된 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늘을 까고 꼭지를 일일이 떼는 기간까지 더하면 훨씬 더 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이 말이 고해(苦海)라는 바다에 빠진 중생을 건져주거나, 지옥의 끓는 가마에 빠진 중생을 건져주는 모습으로 다가와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끝없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남녀가 사랑할 때 시간과 비용이 든다.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 사랑은 짝사랑밖에 없다.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가족 관계도 그렇다. 자식을 키울 때, 노부모를 봉양할 때를 생각해 보라.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 사랑은 없다.

보살이 중생을 사랑할 때도 그렇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돈과 시간을 쓰지 않으면서 외치는 자비는 거짓이요, 위선일 뿐이다. 배추를 내릴 때 흘리는 땀과 마늘을 깔 때 흘리는 눈물이 없다면 참된 이웃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김장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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