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도 선도 공에다 넣으면 그냥 없어져 버려요

 

▲ 그림 최주현



누가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는 사람 없어요.
누가 대신 먹어주고 살아주는 사람도 없고, 잠을 자주는 것도 없고
또는 대신 아파주는 것도 없고, 대신 죽어주는 것도 없어요.
단, 내 힘으로써 내가 생각하고 밀고 나가는 게 법이에요, 그냥.
그게 공법이에요



기자1(외국인 남): 만남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기자1(외국인 남): 제 이름은 폴머스고요, 이 사람 이름은 헬렌 돌코프라고 합니다. 큰스님께서 여기 오늘 미국에 오신 목적하고요, 한국의 선을, 선 사상을 미국에 가져오는 데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거기에 관심이 있어서 왔습니다.

큰스님: 지금 물질계나 정신계를 따지고 볼 때 이 꽃나무만 생각들 하지 뿌리는 생각들을 안 해. 그래서 사람은 동시에 물질계와 정신계가 같이 초월해서 돌아가는데 그렇질 못하고 이 물질계만 가지고 전 세계가 문제를 삼으니까 어른도 애도, 지금 자라나는 애들도 전부 물질계로만 찾지 정신계는 생각도 안 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세계적으로 큰일이 일어나고 그러는 거지.

기자1(외국인 남): 요 근래에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 10일 동안 숭산 스님 쪽에 있다가 왔거든요. 그래서 거기 있는 외국에서 오신 스님들하고 거기 한국인 스님들한테 선이 지금 한국에서 더 활성화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쭤 보니까 어떤 분들은 당연히 선이 지금 활성화가 많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고, 어떤 스님들은 선이나 불교나 이 마음공부에 대한 거는 사람들이 공업화가 되면서 점점 더 관심이 없다고 대답을 하시고 그랬는데 스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스님: 선이라는 것은, 지구가 쉬지 않고 돌아가듯이 우리 생활도, 이게 불(佛)이라는 거는 일체 만물만생의 생명이 불이거든. 그런데다가 삶, 우리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까지 사는 것이 똑같이 교(敎)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활이, 앉으나 서나 누워서 자거나 일을 하거나 이것이 전부 네 가지가 동시에 공해서 참선이 돼요. 쉬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구가 돌아가는 거나 인간이 살면서 이 진리가 돌아가는 거나 똑같이 맞먹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 안된다, 된다 그런 게 없어요.

기자1(외국인 남): 스님의 생(生)은 알려진 대로 굉장히 고행도 많이 하시고 그 삶을 항복을 받으셨고 그런 걸 저도 느끼고 봤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자라실 때 전통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걸 접하시기 전에 얼마큼 진리를 탐구하시고 아셨다고 하는데요, 그 자라시는 과정에서 체험했던 경험담이나 거기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큰스님: 경험담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금 생활하는 그 자체가 전부 이 불가에서는 행선 일하는 거, 또 누워서 자는 거 와선, 서서 다니는 거 입선, 또는 앉아 있는 거 좌선, 이렇게 네 가지 종류를 하고 있는데요, 못났든 잘났든 자기, 자기 자체가 이 세상에 났으니까, 태어났으니까 상대가 있고 모두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부터 알아라.’ 이런 말이죠. 얼른 쉽게 말해서 저 나무들이 살고 있는데 제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된다. 제 뿌리를 믿지 않고 남의 이름이나 형상을 믿어서는 절대로, 그건 도깨비장난과 같다. 그러니까 우리 생활하는 자체가 진리요, 그것이 바로 참선이요, 우리가 생각을 잘하면 이 정수의 컴퓨터에, 자동적인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모두 현실에 나오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모두 업이다, 고다 이러고선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입력이 그렇게 되니까 현실로 나오는 게 그렇게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자라 온 거를 얘기하기 이전에, 그건 벌써 과거로 돌아갔어요.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도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있죠. 우리가 여기 한 발짝 한 발짝 떼어 나올 때에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고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듯, 우리가 보는 것도 고정된 게 없고 듣는 것도 고정된 게 없어요. 말하는 것도, 만남도, 움죽거리는 것도 전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거 했을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없듯이 그게 진짜 결정적인 점이고 아주 참선의 근본이죠.

기자2(외국인 여): 스님, 서양에서요, 요새 다 ‘자기 뿌리를 믿어라.’ 그러니까요, 스승도 없이 그냥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합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그건 잘못 활용된 부분도 있고 그런데요, 자기가 자기 참나를 찾는 데 자기 스승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큰스님: 물질적인 자기, 또 정신적인 보이지 않는 자기, 그게 둘이 아니어서 항상 과거에도 미생물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진화시켰고 형성시켰고 그렇게 해서 내려오고, 자기를 또 형성시켜서 이끌어 가기 위해서 형성시킨 거거든. 그랬으니까 자기 보배이자 자기 근본이자 생명의 근본 자체지. 그러니까 그것이 스승이자 자기 몸은, 즉 말하자면 심부름꾼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마는 동시에 몸도 소중하고 그 근본도 소중한 거지. 그렇기 때문에 스승은 제각기 모두가 자기가 가지고 있죠.

기자2(외국인 여): 그러면 바깥에요, 큰스님이 스승으로 계시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계셔서 이렇게 법을 설해 주셔야지만 우리가 알잖습니까? 그러니까….

큰스님: 그런데 나는 일생의 몸도 똑같고 마음도 같고 생명도 같아요, 모두가. 그런데 그것은 영적인, 즉 쉽게 간략하게 말한다면 마음은 체가 없어서 물질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의 근본과 이 마음의 근본이 항상 둘이 아니게끔, 체가 없으니까, 물질이 아니니까 우리가 만나면 그냥 이쪽 전깃줄과 이쪽 전깃줄이 마주쳐서 불이 들어오듯 하는 것이 바로 근본의 영령의 세계지. 그래서 나는 길잡이로서 얘기해 줄 뿐이에요.

기자2(외국인 여): 스님, 서양 사람들은 불교나 이런 데는 초보자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을 접해 보신 후에 서양 사람들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잘못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큰스님: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때에 따라서는 삼분의 이가 아주 정신이 제대로 됐다고 난 인정해요. 그런데 사람이 본마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물이 들어서, 이쪽이 이렇다 하고 저쪽이 저렇다 하고 자꾸 방황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거죠. 자기 주처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데, 못났든 잘났든 자기 주처는 자기한테 있는 거지 딴 이름이나 형상한테 있는 게 아니거든. 나무들이 자기 뿌리를 의지하고 자기 뿌리로 인해서 싹이 푸르게 살 수 있듯이.

그러니까 누구든지 나쁘다 좋다 할 수가 없죠. 왜냐? 원자가 하얀 공이라면, 공심이라면, 공생이라면 나쁜 것도 거기 들어가면 전부 백이 돼 버려. 하나가 돼 버려. 좋은 것도 거기 들어가면 백이 돼 버리고. 모두가 이렇게 되니까 공생 공심 또는 공용 공체 공식 하고 모두가 사는 거지. 그러니까 특별히 나쁘다 좋다, 이 선(禪)에는 그런 것을 허용치 않아요. 악도 선도 다 공에다 넣으면, 이 허공과 같이 공에다 넣으면 그냥 없어지니까. 즉 말하자면 영이 수만 개라도 이 가슴에 넣으면 두드러지지도 않고 여기서 많이 꺼내서 생산처에 이른다 하더라도 줄지도 않고 이러니까 너무나 광대무변한 거죠. 인간의 마음은 광대무변해서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고….
또 자유로이 마음을 써라 그러는데도 마음이라는 게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마음을 쓰지 못해요. 살아오던 관습과 습이 있고 욕심이 있고 그래서요. 그러니 길잡이한테 배워서 모든 것을 자기가 스스로 가야 될 테니까 길잡이를 잘 만나야지, 잘못 만나면 또 삐뚤게 나가죠. 그러면 자기 아닌 어떤 타의에서 자기를, 영혼을 구하자고 들이덤비게 되죠. 그럼 안 되죠.

통역: 삼분의 이만 지금 번역을 했습니다.

큰스님: 하여튼, 한국말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너무도 아주 그냥 감동이 될 텐데….

기자2(외국인 여):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게 하도 새로워서 그러는데요, 그 두 번째 부분은 알아들었고요. 선에는 동서가 없고 마음이라는 건 알아들었습니다.

큰스님: 여기 처음에 오니까요, 노인들이 일을 했든지 일을 안 했든지 연세가 많으면 그, 먹고사는 거 뭐지?

통역: 월페어리어라고 합니다. 복지기금.

큰스님: 복지기금을 주거든요. 그런 걸 보면 또 때로는 정확해. 왈가왈부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이러지 않고 정확해요. 삼분의 일이 물질계라면 삼분의 이가 정신계로 많이 들어가더라 이런 소리에요. 그래서 이 사람네들은 스스로서 그 법을 지키는구나, 진리를. 스스로서 정신계의 진리를 지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 말이죠.
인제 앞으로 법문을 영어로다 번역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인제 그 책을 또 드리고, 여기 스님이 조금조금씩 이렇게 번역을 해요. 번역을 하는데 조금조금 하는 대로 아마 드릴 거예요.
불교라는 거는 이렇게 국한돼 있는 게 아니고요, 일체 만물만생 생명의 근본이 불이거든요. 그리고 미생물에서부터 인간까지 살아나가는 그 삶이 바로 교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란 한 단어가 이렇게 진리를 말하는 거지 어느 한군데 불교가 국한돼 있는 걸 말하는 게 아니죠.

기자2(외국인 여): 그러면 인제 수행 쪽으로 여쭤 보겠습니다, 스님. 그러면 자기 자신을 알라 그러면요, 자기 뿌리를 알라 그러면 어떤 공부를 해야 됩니까?

큰스님: 저 나무들이 뿌리와 싹이 같이 붙어 있죠. 같이 붙어 있으니까 싹이 살고 있죠. 만약에 뿌리가 잘라져서 없어진다면 싹은 그냥 죽어요. 그렇듯이 그 말하고 움죽거리게 하고 그러는, 바로 자기 이끌어 가는 자기 영혼의 근본, 그 자체가 있죠. 그게 없다면 자기가 형성되지도 못했고 자기가 지금 움죽거리고 살고 있지도 못하죠.

그리고 또 묘한 게 지구에 일체 만물이 살고 있듯이 이 몸 한 개체에 일체 생명들 천차만별의 모습, 의식들이 살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몸 한 개체가 지구와 같아요. 그러니까 지구에서도 한 생명이 그 대기권을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나면 죽고, 이 몸 안에서도 생명이 바깥으로 벗어나도 죽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절대적으로 진리가 그대로 돼 있는 것을 말하지 누가 딴 신이 나를 도와주고 신이 있어서 뭐 어쩌고, 이런 거 다 난 필요 없다고 봐요. 우리가 마음을 잘 쓰면 그대로 영원하게 세세생생을 자유권을 얻고 이거를 모르면 자유권을 상실한다 이런 말이죠.

기자2(외국인 여): 절에 가면 스님들이 주로 백팔 배를 하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스님께서는 근본이 있으니까 근본에다가 모든 걸 몰락 놓고 믿고, 거기 다 연결됐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보통 사람들이 그걸 들어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절하는 거하고요, 앉아서 참선하는 거하고요, 그런 거를 여기 선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요.

큰스님: 일부러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사람이 살다 보면 앉아 있고 싶고 그럴 땐 앉아 있고, 서서 어디 가야겠다 그러면 서서 가고, 잠자고 싶다 그러면 잠자고, 그렇게 그냥 똥 누고 싶다 그러면 똥 누고, 배고프다 그러면 먹고 이러는 것이 그대로 참선이며 그대로 삶의 근본이에요. 그러니까 누가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 주는 사람 없어요. 누가 먹어 주고 살아 주는 사람도 없고, 잠을 자 주는 것도 없고, 또는 대신 아파 주는 것도 없고, 대신 죽어 주는 것도 없어요. 단, 내 힘으로써 내가 생각하고 밀고 나가는 게 법이에요, 그냥. 그게 공법이에요.

이 사람 몸 하나에 모든 모습과 생명 의식들이 하나 잔뜩 들어 있어요. 잔뜩 들어 있는데,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주인공!’ 하면 자기 뿌리를 말할 수도 있고 자기를 이끌어 가는 선장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선장! 너만이 이 배를 다 끌고 다닐 수 있어. 너만이 지켜 줄 수 있어. 너만이 보디가드가 돼 줄 수 있어. 너만이 해결사가 돼 줄 수 있어. 너만이 아프면 의사가 돼 줄 수 있어.’ 이렇게 자꾸 거기다가 관하면 뭐든 거기서 다 나와요. 이거는 실천이면서도 진리고 진리면서도 삶에 우리가 지금 당면해 있는 자체예요.

지금 어느 스님이 참선은 이렇게 한다, 화두를 가지고 이렇게 해야 한다, 뭘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배우게 하기 위해서 그거를 방편으로 쓰는 것뿐이지 그렇게 배운다면 자기를 깨치기는 몇백 년 가도 깨칠 수가 없어요. 우리가 깨치고 안 깨치는 건 마음 한번 먹기에 달렸어요. 이것이 진리라는 것만 알면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진리 속에서 지금 살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관하면 어디를 통하느냐? 대뇌를 통하고 사대로 통하고, 이건 심성의학도 되고 심성과학도 되고 심성천체물리학도 돼요. 그래서 이것이 여기에서 들어가면 벌써 사대로 통신이 되고 정수에 자동적인 컴퓨터에 입력이 되게 돼 있어요. 입력이 되면 입력된 대로 나오게 돼 있고, 전자에 입력된 건 없어지게 마련이죠.

그렇기 때문에 ‘죄가 있다. 악한 게 있다. 나는 전자에 악하게 사람을 죽였으니까 이 업이, 죄가 많겠지.’ 하는 것도 이 요량에 달려 있어요. 내가 거기서 그렇게 나올 때에 ‘바로 그것은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입력을 할 때, 입력된 것이 없어지면서 바로 그냥 새로 내가 입력한 것이 들어가거든요. 그러니까 새로이 입력한 것이 그대로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내 불성 자체 근본만 있는 줄 안다면, 정신계의 자기가 있는 줄 안다면 여여하게 살 수 있고, 모든 걸 갖추어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데 손색이 없고 걸림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또는 자유자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이것은 참, 껄껄 웃고 정말 즐길 수 있고 영원한 그 자유권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뜻이죠.

기자1(외국인 남): 큰스님의 가르침이 한국에서 어떻게 퍼졌는지 알고 싶고요, 여기 오셔서 만날 법문도 해 주시고 그러시는데 거기 외국 분들의 역할은 어떻게 되는지요?

큰스님: 그 사람네들은 자기 몸을 벌써 자재할 수 있어요. 그 왜, 내가 질문하면 대답해 준 게 있지?

통역: 예.

큰스님: 자기가 그냥 자기 얘기 한 책도 있고.

통역: 예, 예.

큰스님: 그거를 영어로다가 해서 주도록 해요.

통역: 예. 알겠습니다.

큰스님: 그런데 자기네들 가정을, 자기 가정과 자기 몸, 자기 사회 이런 걸 다 자재하고 가요. 그렇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고, 또 배우는 사람이 중간에 있고, 아주 생무지로 또 와서 배우는 사람이 있고 그래요. 그거는 수효로 따진다면 뭐 몇만 명, 몇십만 명이 되겠지. 지금 지원이 한 25개 되나, 전부?

기자1(외국인 남): 그리고 한국이든 여기든 왜 서양 사람들이 한국 불교에 점점 더 많이 다가오고 배우려고 하는지 거기에 대해서….

큰스님: 옛날부터 ‘한국 불교가 이렇다.’ 이러거든요. 근데 나는요, 그게 아니에요. 불교는 종교를 말하는 게 아니고요, 전체 이 삼라만상 우주, 전체 삼라만상 대천세계,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한데 합쳐서 생명들을 ‘불'이라고 하고 또는 사는 거를, 움죽거리고 사는 걸 ‘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불교라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거지 종교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만약에 지구가 버스라면 그 버스 안에서 걸상 하나 가지고 내 거다, 네 거다 하고 싸우는 거나 같다. 어디로 버스가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건 공기주머니와 같은 거니까.

그러니까 진짜로 배우려면 종교를 배우지 말고 진리를 배우세요. 우리는 종교라는 이름을 배우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인간의 삶 그대로, 우리가 어디서 왔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어디로 또 가는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진화되나 이런 거를 연구하고 우리가 사는 거죠. 그래야 삶의 보람을 느끼죠. 괜히 불교를 믿는다 하고 그냥 한국 불교는 어떻고, 외국 불교는 어떻고…. 불교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 한 지구 안에, 그 한 공기주머니 안에서 살고 있는데 무슨 종교가 네 종교 내 종교가 따로따로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기자님께서도 이게 한국 불교다 무슨 외국 불교다, 이 불교다, 선불교다 이렇게 따지지 마시고 여기서 자꾸 보조를 해 드려. 이걸 써서 자꾸 보조를 해 드리고, 이 한국말로 된 거를 외국어로다가 다 해서 자꾸 드려. 그래서 진짜로 자기네들이 스스로 해 봐서, 남이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이런 것은 말이 안돼. 자기가 실천을 할 때에 이게 ‘아하! 이런 거구나.’ 하고 맛을 알아야지. 안 그래요?

통역: 그렇지 않아도 스님이 길게 말씀하셔서요, 말씀한 부분을 오늘 다 한글로 풀어서요, 번역을 그대로 해서 다 보내 주기로 했어요. 허허허. 그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큰스님: 그저 될 수 있으면 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전 세계가 이 정신계를 완벽하게 자기가 숭상하고 간다면, 즉 말하자면 자기 나무가 자기 뿌리를 믿고 간다면, 진짜로 세계는 평화가 오고 불 세례도 안 나고 물 세례도 안 나고, 허허허, 마음으로서 우리가 마음을 그렇게 가지고 간다면 진짜 천국이 되죠. 아이, 생각을 해 봐요. 모두 각자 내가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상대도 있고 세상도 있는 거지 아니, 내가 없는데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 그러니까 주처는 자기부터, 자기한테서부터 있는 거를 알아야 된다는 얘기죠.

기자1(외국인 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이 불가에서 절하는 건요, 자기 이 물질적인 육체가 자기 정신적인 자기한테 감사하다고 절하는 거예요. 그건 왜냐하면 자기 마음이 겸손하고 항상 둥글게 하고 남을 섭섭하게 안 하고 남의 생명을 우습게 생각 안 하고 그렇게 하게 하기 위해서 그걸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이에요.

통역: 스님, 저는 내려가 보겠습니다. 자료를 더 계속해서 주겠습니다.

큰스님: 그래, 계속해서 자꾸 뒷받침을 해 드려. 그래야 이분도 ‘전 세계가, 아하, 전 우주가 이렇구나.’ 이런 걸 알게 돼요.

통역: 하하하. 예.
기자1(외국인 남): 감사합니다.
큰스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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