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코의 풍기와 화기로 고생
“고해는 업에서”… 인과 초월한 듯
두 벗의 자유로운 거량 ‘감동’

▲ 〈벽해타운첩〉에 수록된 추사의 편지.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에 온 인편을 통해 추사는 초의가 보낸 묵은 편지를 받았다. 초의가 어떤 낭보를 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벗에게 온 편지는 철이 지난 묵은 편지일지라도 추사의 답답한 마음을 “오히려 위로하고 시원하게”만들었던 듯하다. 〈완당전집〉 ‘여초의’ 21신에 수록된 이 편지는 실제 어느 시기에 쓴 것인지 알려지지 않다가 〈벽해타운첩〉이 발굴된 후, 그 시기가 소상하게 밝혀진 셈이다. 따라서 추사는 1843년 12월 쯤 초의의 편지를 받고, 다음 해인 1844년 1월 24일 초의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쓴 것.
마침 뭍으로 가는 인편에게 이 편지를 보냈는데, 그의 정감어린 답신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산중의 세월도 세속처럼 새해로 바뀌는가. 자신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하여도 세월이 변하는 것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 섣달에 보낸 묵은 편지를 받고, 오히려 위로되고 시원해졌습니다. 봄철 이후 스님의 수행도 길하고 이로우며 묵은 병도 쾌차해져서 가는 곳마다 가볍고 편안하신지 궁금합니다. 조급한 원숭이일지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번뇌가 없는 것이지만 특별히 생각이 납니다.

저는 입과 코의 풍기와 화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이처럼 성하게 일어나니 고해(苦海)의 광경은 본래 자신의 업연 속에서 나오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고통을 돌려 즐거움으로 삼으니 그대처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근래에 조금씩 수련하여 얻은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이 병이 있다면 그대들이(善悅輩) 어떻게 짧은 시간에 안정시키겠는가. 하하, 마침 인편이 있어 대략 말씀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1844년 1월 24일 늑편(山中日月亦與世間回新歟 自有不變者存 又無論於時遷月化也 前臘獲見過時之書 尙以慰瀉 卽問春後禪履吉利 夙恙?和 隨處輕安 躁猿不動無他煩惱 殊可念念 此狀口鼻風火不能降伏 如是熾作 苦海光景 本自是業緣中 頭出頭沒 但不爲其纏繞 轉苦爲樂 不如師之小不忍 是近日稍得工煉處 師若有此病 善悅輩何以一刻耐定也 呵呵 適因略申 姑不? 甲申 元月 二四日便)

당시 정월 24일이면 막 경칩이 지났을 터. 봄기운이 완연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가 “묵은 병도 쾌차해져서”라고 한 것은 초의가 지난 해(1843)제주에서 말을 타다가 다친 것을 염려한 것이다. 따라서 “가는 곳마다 가볍고 편안한지”를 물은 것이다. 이런 저런 공연한 걱정이야 “조급한 원숭이일지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번뇌가 없는 것”이지만 특별히 벗의 안부가 마음 쓰인 듯하다. 추사 또한 입과 코가 헤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었던 처지였지만 세심한 마음씀씀이가 돋보인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조금씩 수련으로 단련된 추사의 심신은 “고해(苦海)의 광경은 본래 자신의 업연 속에서 나오고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하니 그는 해탈에 든 것인가. 더구나 업의 인연을 끊어 “고통을 돌려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한 추사의 경지는 분명 인과를 초월한 것이 분명하다. 당시 초의 주변사가 난마처럼 얽힌 실제의 사연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사 자신은 “그대처럼 작은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 분명 이 말은 희언(戱言)이었겠지만 서로의 격려가 이처럼 빛난다.

실로 초의의 수행력으로 작은 것을 참지 못할 경계가 무엇이겠는가. 호학(好學)을 유영(遊泳)한 세속의 유자(儒者)도 이미 지천명(知天命: 50세)을 지나 이순(耳順:60세)의 초입에 다가섰다면 와유(臥遊)의 자유로움이나 유어예(遊於藝)를 넘나들 터. 두 벗의 거량(居量)이야, 우리가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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