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부처님 오신날

미얀마 부처님오신날에는 모두가 긴 행렬을 지어 파고다로 향한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물단지를 머리에 이고 보리수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행렬에는 미얀마 전통음식과 현대음악이 더해져 흥을 돋군다.
인도력 두번째 달로 음력 4월 굳어져
연등불 수기일 의미로 봉축 연등 달아
탄생보다 성도 의미 기려 ‘보리수 의식’
보리수 물주며 불법 번창 기원

불교가 전해진 모든 나라에서는 우리와 같이 ‘부처님 오신날’을 축제로 지낸다. 특히 불교인구가 많은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등은 부처님오신날을 연중 가장 큰 축제일로 맞이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처님오신날을 ‘사월초파일’이라 했다. 음력의 달과 날로 부처님오신날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인도에서도 그리고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얀마의 경우 미얀마력(歷)으로 두 번째 달의 보름이 부처님오신날이다. 양력으로 5월 24일에 해당한다. 미얀마력으로 두 번째 달은 ‘거손’(Kason)이라 불린다. 그래서 두 번째 달의 이름인 ‘거손’은 우리의 ‘사월초파일’처럼 부처님오신날을 의미한다.

여기서 먼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사월초파일’과 미얀마 ‘거손’처럼 특정한 달로 말한 것은 불교 발상지인 인도의 전통이란 것이다.

인도에서는 원래 부처님오신날을 ‘웨삭’(Vesak/ Vaishaka)이라 불렀다. 이 또한 인도력(歷)의 두 번째 달 이름이다. ‘웨삭’은 미얀마의 ‘거손’처럼 현재도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다른 동남아 불교국에서 많이 쓰는 부처님오신날을 의미하는 말이다. 웨삭은 양력에 의하면 4월과 5월에 걸쳐있다.

흥미롭게도 부처님의 탄생일은 지역을 막론하고 모두 계절을 구분하는 말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각 불교국 부처님 탄생, 달은 같지만 날은 달라

그런데 부처님 탄생일이 모든 불교국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즉 달은 일치하지만 날이 다르다.
오래 전부터 인도불교 전통에서도 부처님 탄생일이 요즘과 같이 약 일주일 차이가 나는 8일과 15일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빠알리어를 경전어로 삼는 상좌불교에서는 탄생일을 15일 보름으로 보는 반면 산스크리트어를 경전어로 삼았던 설일체유부 등은 8일 보름으로 탄생일을 보았다고 한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해진 후 이로 인해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인도 역법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어 4월 8일이 아닌 2월 8일로도 부처님오신날을 지냈다.

즉, 인도의 두 번째 달을 그대로 중국력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후에 현재와 같이 4월로 계산은 되었지만 여전히 8일은 그대로이다.

이는 동아시아 불교가 설일체유부의 부처님 탄생일 기산법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 인도에서 대승불교는 빠알리어의 상좌부보다는 설일체유부와 더 가깝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왜 인도불교에서 부처님의 탄생일이 7일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까? 짐작하건데 불교 수행공동체의 성격 상 교조의 탄생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오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략 전해 오는 바에 따라 달은 일치할 수 있었지만 날을 정확히 알 수 는 없지 않았나 싶다.

이는 부처님 보다 약 625년이 늦은 예수의 경우 〈성경〉에 없는 탄생일이 신앙 상 필요에 따라 후대에 다른 종교의 태양신 탄생일을 채용한 것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의 경우, 초기경전 가운데 부처님 탄생의 달과 날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경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역 〈장아함경〉은 구체적으로 ‘사월초파일’로 명시되어 있다.

미얀마 부처님오신날은 가장 성스러운 날

미얀마에서 부처님오신날은 가장 성스러운 날이요 달이다. 가장 성스러운 날인 이유는 이 날은 3중으로 성스러움이 겹친 날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부처님이 될 보살이 태어난 날이요, 두 번째는 보살이 출가 구도하여 부처님이 된 성도의 날이요, 세 번째는 45년 중생교화한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드신 날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날은 그 어느 날보다도 가장 의미 있고 특별한 날로 맞이한다. 이는 상좌불교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다른 불교권에서는 탄생과 성도 그리고 반열반의 달과 날이 다르다.

미얀마의 독특한 계산법은 부처님오신날의 주간 중 화요일은 부처님 반열반의 날로, 금요일은 탄생일로, 일요일은 반열반의 날로 셈하기도 한다.

부처님오신날 미얀마 사람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기념하고 축하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처님의 공덕을 기억하며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계율을 지킬 것을 서원하고 법문을 청해 듣고 보시를 행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에 물을 뿌린다. 또한 이 날에는 사찰 내의 보리수나무 주위에는 일주일 7일에 해당하는 과거 7불을 안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리수에 물을 뿌린 후 자신이 태어난 요일에 해당하는 부처님께 자신의 나이만큼 물을 뿌린다. 이로써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재앙을 제거되고 부처님의 가호력이 있게 된다고 믿는다.

미얀마에서 두 번째 달의 보름이 부처님오신날이란 전통은 과거불인 연등불(燃燈佛, Dipamkara Buddha)과 관련한 이야기에 바탕한다. 이 날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랜 과거 ‘수메다(Sumedha)’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을 할 때 연등불이 미래에 그가 성불할 것을 수기(授記)하신 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연등불이 수기한 달과 날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그리고 반열반에 드신 날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등불이 수기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3대 위대한 행적을 기념하는 의미로 연등(燃燈)을 켜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왜 초파일에 연등을 켜는지 이유를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이 날은 바로 연등불로부터 수기받은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미얀마의 부처님오신날인 ‘거손’(Kason)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긴 행렬을 지어 파고다로 향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보리수에 물을 뿌리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물단지를 머리 위에 이고 줄을 맞춰 보리수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여자들의 긴 머리는 꽃으로 장식하고 단지는 은으로 된 것이나 흙으로 빚은 붉은 빛의 단지로, 여기에 푸른 바나나 잎으로 감싸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다. 이러한 행렬의 선두에는 항상 연주자들이 동반한다. 앞뒤 중간에는 불교기를 들고 함께하는 사람과 금시조나 용왕의 모양으로 그리고 제석천이나 범신 등의 복식으로 꾸민 사람들이 행렬에 참가한다.

여기에 몇 가지 악기가 등장한다. 북과 놋쇠로 만든 두 개의 원반을 한 쌍을 이룬 타악기, 각종의 피리, 대나무로 만든 딱다기 등 전통악기들이다. 이러한 여러 악기들의 연주로 흥겨운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다. 젊은 남자들은 사람들이 흥이 돋도록 생동감 있는 춤을 추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율동에 맞춰 축제의 한마당이 되어 보는 사람도 절로 흥겹게 한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의 봉축행렬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미얀마 부처님오신날에는 전통 음악으로 흥을 돋구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팝송이 동원되기도 한다.

미얀마 부처님오신날은 성도 중심

미얀마 봉축행사의 중심은 보리수에 물을 뿌리는 것이다. 보리수는 불교의 3대 성수(聖樹) 중 하나다. 나머지 두 개는 탄생과 관련한 무우수(無憂樹), 반열반과 관련한 사라수다. 이 가운데에서도 보리수는 더욱 특별한 존경을 받는다. 보리수는 불교역사에 있어 불상이 신앙의 중심 상징물로 되기 이전에 오랫동안 부처님을 상징했다. 특히 깨달음을 상징하기에 상좌불교권에서는 파고다나 사찰 건립 시 반드시 보리수를 심고 조석으로 우리의 탑돌이처럼 돌면서 참배한다.

미얀마에서는 보리수를 마치 부처님처럼 여기며 공양을 올린다. 특히 미얀마에서 5월은 가장 무더운 달로 땅이 매우 건조하기에 사람들은 단지에 물을 담아 보리수에 뿌리며 수분을 공급한다. 보리수의 번창은 바로 불법의 번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봉축행사의 마지막은 보리수에 물 뿌리며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성스러운 날에 함께 봉축하자’는 의미로 ‘사두(Sadhu:善哉)’ 삼창으로 마감한다. 우리 모두는 좋은 일을 잘 마쳤다는 의미이다.

보리수가 가뭄에 말라 죽지 않고 번창하도록 하는 염원은 바로 미얀마 불교인들의 불법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신심의 표현이다. 이 전통은 12세기 버강(Bagan)왕조 때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미얀마의 부처님오신날은 탄생이 중심이 아니라 성도에 맞춰져 있다. 때문에 무우수(無憂樹)가 아닌 보리수가 숭배되고 아기 부처님에 대한 관욕(灌浴)도 주요 행사로 행해지지 않는다. 이는 이 날이 앞서 말한 대로 탄생일과 성도일 그리고 반열반과 같은 3중으로 겹친 성스러운 날이기에 탄생보다는 성도에 비중을 두며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서 관욕식은 파고다를 찾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신앙행위이며 또한 우리와 같이 연등을 켜는 ‘불 축제’ 또한 안거가 끝나는 달에 계속해서 대대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생략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고대 인도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그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동아시아 구법승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모시고 요란한 음악과 춤으로 거리행진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전통은 동아시아로도 전해져 중국의 경우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불상을 모시고 풍악과 독경소리로 땅을 진동하는 거리 행진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사월초파일은 집집마다 연등을 달고 모든 백성들이 부처님에 공양하고 사찰 안에서는 여러 악기가 동원되어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봉축의식을 마치고 신하를 거느리고 절로 가서 독경한 후 다시 괘불을 걸고 일반 백성들과 흥겨운 한마당을 펼쳤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있다. 이렇게 부처님 오신 날은 과거나 현재나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 한국 그리고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즐기는 큰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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