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포수(鋪首) → 용 상

용을 표현할 때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첫 번째는 용의 옆모습을 길게 표현하는 방법인데, 이 경우는 누구나 용인지 알아본다. 2. 두 번째 방법은 몸은 없이 용의 얼굴만을 정면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 좋은 예가 종래 귀면와(鬼面瓦)이다. 일본 학자와 이를 받아들인 한국학자들은 귀면(鬼面)이라 불러왔으며, 중국학자는 수면(獸面)이라 불러왔다. 3. 세 번째 방법은 용을 정면으로 보아 표현하되 앞다리와 꼬리를 함께 표현하여 용의 긴 모습을 앞에서 얼굴부터 몸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방법을 단축법(短縮法)이라 하는데, 단축법(foreshortening)이란 단일한 사물, 인물에 적용된 원근법으로서, 단축하여 표현하므로 대상의 크기는 보는 이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줄어들어서 가장 가까운 부분은 과장될 정도로 크고 나머지는 매우 작게 보인다. 단축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도법의 발견과 더불어 발달하였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과감히 시도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용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
이러한 세 가지 표현방법에서, 1은 크게 벌린 입에서 보주를 하나 내는데 보주가 비록 한 개뿐이지만 무량한 보주를 내는 것을 상징한다. 2는 역시 용 입 안에 한 개 내지 네 개의 보주를 물고 있어서 무량한 보주를 내는 것을 상징하거나, 입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영기문(靈氣文)을 좌우로 뻗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 개념도 없고 명칭[용어]도 없어서 필자가 개념도 정립하고 용어들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3은 역시 2와 같이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 벽화에서 단축법으로 표현한 용을 볼 수가 있는데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한 단축법으로 표현한 예가 바로 ‘백제 금동 대향로’의 용이다. 그러면 바로 ‘백제의 대향로의 뚜껑에 표현한 용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 학계에서 그 뚜껑의 도상을 무엇이라 부르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이 향로가 부여에서 출토되었을 때 여러 학자들이 발표했던 논문들을 모아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10주년 기념 연구논문자료집, 백제 금동 대향로〉를 펴냈다.(2003년, 국립부여박물관) 모든 논문들에서 포수 혹은 수환(獸環)이라 부르고 있는데, 주로 포수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쓰고 있음을 알고는 그 연유를 알아보았다.
우선 해방 후 우리나라 제 1세대의 학자는 이 모습을 보고 포수(鋪首)라 불렀다. 포(鋪)는 고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수면(獸面) 즉 짐승머리에 문고리가 붙어 있어서 포수(鋪首)라는 이상한 용어가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코 밑에 고리를 달았다고 했으니 입에서 고리가 나온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1세대는, 그 장식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하였는데 한 대(漢代)의 문헌기록에 있는 포수(鋪首)라는 용어를 믿고 연구한 일본학자의 연구논문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백제 대향로에는 고리가 없다. 고리가 있어야 포수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짐승모양이 같아서 고리가 생략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고리의 엄청난 상징을 알면 생략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실제로 생략할 수도 없다. 논지가 논리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제 3세대는 제1세대의 논문을 그대로 따라 ‘포수라고 불리는 도철문(??文)’이라고 인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는 역시 포수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백제 대향로의 그 도상은 포수로 확정되어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았다. 모든 용어가 이렇게 일본의 그릇된 연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제1세대에 이어 그대로 오늘 날까지 전수되어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 오류의 연원은 이미 중국 한(漢)대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 원전(原典)조차 우리나라 학자들은 확인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오류가 대대로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진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향로의 것은 고리가 없으므로 포수도 아니다.

단축법으로 드러낸 ‘용’ 짐승으로 오도
그러면 백제 대향로의 그 신비스러운 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 향로의 수많은 신령스러운 도상들 가운데 유독 가장 크고 강렬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귀면이나 포수라고 부르는 괴수 같은 도상은 바로 용의 온 모습을 단축법(短縮法)으로 나타낸 것이다! 눈은 전형적인 용의 눈이며 눈이 보주로 변했으므로 눈썹은 보주에서 영기가 발산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두 뿔이 제1영기싹을 이루고 있으며, 코는 다양한 형태의 세 개의 보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뿔 사이의 삼각형 모양은 원래 보주를 상징하는 육면체에서 비롯한 것이다. 얼굴 양쪽에는 두 앞다리가 있으며, 그 뒤로 몸이 둥글게 돌아서 맨 뒤와 동시에 머리 위 중앙에 있는 마름모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의 꼬리’이다.
고구려벽화에는 용이나 봉황, 기린 등에 꼬리가 모두 여러 가지 영기문으로 이루어져서 바로 그 영기문에서 갖가지 영수가 탄생하는 도상이 많다. 백제 대향로의 이 용의 전체 모습을 단축법으로 표현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조형이다. 그리고 과장하여 가능한 한 길고 큰 입을 향로와 뚜껑의 가운데 두 줄기 영기문 띠에 가까이 대고 있어서 마치 그 띠를 물고 있는 듯하다. 그 두 줄기 영기문 띠는 바로 이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이에 이르러 우리는 백제 대향로에서 용이 얼마나 훌륭한 조형을 이루고 있는지 그 진면목을 극적으로 만난다.
원 작품은 단색이므로 무엇인지 잡히지 않았지만, 채색분석을 하여보니 용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왜 용이 가능한 한 아래를 향하여 입이 영기문 띠에 대고 있는 까닭을 이제 분명히 알 수 있다. 곡선만이 영기문이 아니고 직선도 영기문이다.
백제 금동 대향로에서 이 용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은데 그것을 포수나 귀면이나 도철문으로 보고 또 입에서 발산하는 역동적 영기문을 당초문(唐草文)이라 인식하고 있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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