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포수(鋪首) → 용 상
용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
이러한 세 가지 표현방법에서, 1은 크게 벌린 입에서 보주를 하나 내는데 보주가 비록 한 개뿐이지만 무량한 보주를 내는 것을 상징한다. 2는 역시 용 입 안에 한 개 내지 네 개의 보주를 물고 있어서 무량한 보주를 내는 것을 상징하거나, 입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영기문(靈氣文)을 좌우로 뻗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 개념도 없고 명칭[용어]도 없어서 필자가 개념도 정립하고 용어들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3은 역시 2와 같이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 벽화에서 단축법으로 표현한 용을 볼 수가 있는데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한 단축법으로 표현한 예가 바로 ‘백제 금동 대향로’의 용이다. 그러면 바로 ‘백제의 대향로의 뚜껑에 표현한 용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 학계에서 그 뚜껑의 도상을 무엇이라 부르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이 향로가 부여에서 출토되었을 때 여러 학자들이 발표했던 논문들을 모아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10주년 기념 연구논문자료집, 백제 금동 대향로〉를 펴냈다.(2003년, 국립부여박물관) 모든 논문들에서 포수 혹은 수환(獸環)이라 부르고 있는데, 주로 포수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쓰고 있음을 알고는 그 연유를 알아보았다.
우선 해방 후 우리나라 제 1세대의 학자는 이 모습을 보고 포수(鋪首)라 불렀다. 포(鋪)는 고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수면(獸面) 즉 짐승머리에 문고리가 붙어 있어서 포수(鋪首)라는 이상한 용어가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코 밑에 고리를 달았다고 했으니 입에서 고리가 나온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1세대는, 그 장식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하였는데 한 대(漢代)의 문헌기록에 있는 포수(鋪首)라는 용어를 믿고 연구한 일본학자의 연구논문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백제 대향로에는 고리가 없다. 고리가 있어야 포수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짐승모양이 같아서 고리가 생략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고리의 엄청난 상징을 알면 생략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실제로 생략할 수도 없다. 논지가 논리적이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제 3세대는 제1세대의 논문을 그대로 따라 ‘포수라고 불리는 도철문(??文)’이라고 인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학자는 역시 포수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백제 대향로의 그 도상은 포수로 확정되어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았다. 모든 용어가 이렇게 일본의 그릇된 연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제1세대에 이어 그대로 오늘 날까지 전수되어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 오류의 연원은 이미 중국 한(漢)대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 원전(原典)조차 우리나라 학자들은 확인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오류가 대대로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진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향로의 것은 고리가 없으므로 포수도 아니다.
단축법으로 드러낸 ‘용’ 짐승으로 오도
그러면 백제 대향로의 그 신비스러운 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 향로의 수많은 신령스러운 도상들 가운데 유독 가장 크고 강렬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귀면이나 포수라고 부르는 괴수 같은 도상은 바로 용의 온 모습을 단축법(短縮法)으로 나타낸 것이다! 눈은 전형적인 용의 눈이며 눈이 보주로 변했으므로 눈썹은 보주에서 영기가 발산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두 뿔이 제1영기싹을 이루고 있으며, 코는 다양한 형태의 세 개의 보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뿔 사이의 삼각형 모양은 원래 보주를 상징하는 육면체에서 비롯한 것이다. 얼굴 양쪽에는 두 앞다리가 있으며, 그 뒤로 몸이 둥글게 돌아서 맨 뒤와 동시에 머리 위 중앙에 있는 마름모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용의 꼬리’이다.
고구려벽화에는 용이나 봉황, 기린 등에 꼬리가 모두 여러 가지 영기문으로 이루어져서 바로 그 영기문에서 갖가지 영수가 탄생하는 도상이 많다. 백제 대향로의 이 용의 전체 모습을 단축법으로 표현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조형이다. 그리고 과장하여 가능한 한 길고 큰 입을 향로와 뚜껑의 가운데 두 줄기 영기문 띠에 가까이 대고 있어서 마치 그 띠를 물고 있는 듯하다. 그 두 줄기 영기문 띠는 바로 이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이에 이르러 우리는 백제 대향로에서 용이 얼마나 훌륭한 조형을 이루고 있는지 그 진면목을 극적으로 만난다.
원 작품은 단색이므로 무엇인지 잡히지 않았지만, 채색분석을 하여보니 용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왜 용이 가능한 한 아래를 향하여 입이 영기문 띠에 대고 있는 까닭을 이제 분명히 알 수 있다. 곡선만이 영기문이 아니고 직선도 영기문이다.
백제 금동 대향로에서 이 용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은데 그것을 포수나 귀면이나 도철문으로 보고 또 입에서 발산하는 역동적 영기문을 당초문(唐草文)이라 인식하고 있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