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불 보물 지정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얼마 전 우리절에 아주 기쁜 일이 생겼다. 대웅전의 불상과 복장에서 나온 경전이 보물 제1801호와 제1802호로 각각 지정된 것이다.

보물 제1801호의 정식 명칭은 ‘대구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인데, 삼존불과 각각의 후령통, 발원문, 다라니 등 10건 129점의 유물이 해당되고, 보물 제1802호인 ‘…삼존좌상 복장전적’은 1395년에 조성된 목판에서 인출한 〈인천안목〉 등 네 권이 해당된다.

문화재 지정 과정을 소개하려면 5년여 전의 일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처음 이 절에 와서 인수인계를 할 때 전임 주지 스님이 말하기를 부처님 얼굴이 갈라져 있으므로 개금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봐도 개금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불사를 시작하지 않고 천수다라니 기도를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만 1년이 지나자 신도들이 먼저 개금불사를 하지 않을 거냐고 채근했다. 시절인연이 도래했다고 생각한 나는 그제서야 모연문을 만들고 신도님들의 마음과 정재(淨財)를 모았다.

몇 사람의 개금장이를 만나보았더니 전통 방식으로 개금을 하기 위해서는 온도와 습도가 높아야 하는데 절에 작업실을 만들어 조건을 맞추는 방법도 있고, 이미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공방으로 불상을 이운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공방으로 옮길 생각으로 복장유물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절은 창건한 지 4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어딘가에서 모셔온 불상일 것이고, 불상을 옮겨 오는 과정에서 복장유물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보았다. 그래서 복장유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불상의 형태로 조성연대를 추정한 후 문화재 지정절차를 밟을 요량으로 최고의 불상 전문가를 찾았다.

2010년 4월,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를 초빙하여 불상을 보였더니 “1650년 이쪽저쪽 10년 사이에 조성된 것 같다”며 “발원문이 나오면 보물급이고, 발원문이 나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방문화재는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해 6월, 문 교수를 다시 초빙하여 복장을 열었는데 조성된 이후 단 한 번도 복장을 열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놀랍게도 복장에서는 1647년에 조성했다는 발원문과 함께 60여 권의 경전이 쏟아졌다.

그해 10월에는 문 교수가 운영하는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자들이 실측조사를 벌였으며, 세 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 교수는 2010년 12월에 발행한 〈강좌 미술사〉 제35호에 논문을 실었다. 나는 이 논문과 문명대 교수가 써 준 ‘문화재 조사 보고서’를 첨부하여 대구 달서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본격적인 지정절차에 들어갔다. 이 신청에 의거하여 2011년 3월에는 대구시 문화재위원들이 공식적으로 조사를 나왔다.

2012년 11월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7명이 방문하여 한꺼번에 불상과 복장유물, 경전을 조사하였고, 이 조사를 근거로 2013년 2월 중순에는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 2점의 보물로 지정하기로 결정하였다. 2월 말일에 열린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2차 회의 결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를 하였고, 4월 29일 관보에 보물 제1801호와 제1802호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만 3년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지정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지금도 내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다. 보물을 두 점이나 가진 문화재사찰이 되었다는 그 사실보다 한껏 높아진 위상으로 더 다양한 포교불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지었다가 부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도 벌리고 저 일도 벌린다.
‘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이 조성된 지 366년이 지난 오늘,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꽃을 피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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