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불교에서 여성의 위치

“여자도 수행을 하면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

불교, 공성·연기론 통해
모든 존재 평등을 역설
불멸 후 부처님 뜻 외면


현대사회에서 ‘양성평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유사 이래 1천년 이상을 인류는 가부장제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다. 종교 역시 이 같은 가부장적 틀 안에서 변주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성학자들은 일부 종교에서 여성이 동등한 위치의 성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떻게 성립돼 왔을까? 고대 인도사회는 우주의 본질을 여성성으로 보는 토착민들의 세계관이나 문화적 성향, 그리고 아리안들의 현세적 가치관이 혼합돼 친여성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기 직전의 인도사회는 아리한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바라문의 사회적 부상으로 사회구조가 계급화되면서 반여성적 인식 태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바라문교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졌다. 당시 바라문 교권을 기반으로 쓰여진 〈마누법전〉을 보면 “여성의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 남편이 죽을 경우 남편의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따라 죽어야 하는 ‘사티’라는 풍습마저 있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을 연 불교는 이러한 시대 상황을 역행하는 종교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의 출가 허용이다.

이는 부처님과 아난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지 않는 부처님에게 아난은 “여성이 성불할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부처님은 “여자도 수행을 하면 남자와 마찬가지로 수다원과와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등 4과(果)와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교단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하고 여성들에게 출가를 허용한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의 여성 출가 허용에 대해 서영애 씨는 자신의 저서 〈불교의 여성관〉에서 “불교는 당시 바라문과 우파니샤드 철학을 넘어 인간주의적이고 만민 평등 사상에 입각한 종교 사상을 피력했다”며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여성관은 상당히 시대를 앞선 것이며, 현대의 페미니스트적 입장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불교의 인간관은 연기성과 공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며 “이를 통해 부처님은 남을 위해 배려하고 자비를 행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설했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간관, 여성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멸 이후 1세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인도의 여성 차별 풍토가 강화됐고, 이는 불교 교단 내에서도 나타난다. 여성차별적인 규칙과 계율경전에서도 생겨난 것도 이 시기라는 서영애 씨의 주장이다.

서 씨는 “당시 불교 교단이 세간의 통속적 흐름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의 흐름에 따라가고 있었다”고 평가하며, “그래도 평등적 인간관과 여성관은 변하지 않아 비구니 교단이 비구 교단에게 관리를 받으면서 출가가 계속 허용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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