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비구니 마하파자파티가 아라한과를 증득한 모습. 마하파자파티는 여성에 대한 불교의 닫힌 문을 연 첫 선지식이었다.
1600년 전통 비구니 승가
세계 종교계에서 유일해
교단 내 비구니 지위 불평등
양성평등의식 사회에 뒤쳐져
책임과 희생서 나온 ‘기복’
사회 향해 어머니 역할 다해야

2월 25일 한국 국민들은 사상 최초로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에 여성을 선출했다. ‘여성 리더’란 말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비즈니스, 교육, 문화, 스포츠, 정치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이 활발하기 전개되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강하면서 부드러운 리더십’ 등 현대사회에 요구되는 리더십 스타일에도 여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시류는 남ㆍ녀 구분을 넘어서 모두에게 내재된 ‘여성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를 이끌 메인 키워드는 ‘여성’인 것이다.

한국불교에서의 여성 위상은?

하지만 한국불교에서 여성의 위상은 어떠한가. 1970년대 송광사 구산 스님 밑에서 비구니로 출가한 명상지도자 마르틴 베첼러는 세계 비구니 스님들 중 대만에 이어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지위가 높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비구니 교단과 그 수행 전통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현재 자체적으로 비구니 구족계를 받는 승단이 존재하는 곳은 대만, 한국 정도다. 1960년대부터 역사가 시작된 대만불교에 비교해 1600년이 넘도록 전통을 지속해 온 한국비구니 승가는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계불교에서 한국불교가 선구적이지만 불교 자체에서 여성불자들의 영향력이나 대사회적인 활동이 미비하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불교에서는 오랜 전통에도 비구니의 ‘사회적 위상’, 특히 교단 내에서 비구니의 지위에 아직도 많은 불평등의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2012년 승적현황을 보면 비구 5458명(51.3%), 비구니 5190명(48.7%)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가 절반에 달한다. 하지만 중앙종무기관과 교구본사 국장 이상 교역직의 절대 다수(비구 361명: 비구니 17명)가 비구 스님들로 이뤄져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일운 스님은 “교구본사 산중총회에서도 비구니 스님들은 비구 재적승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 종회의원 80명 중 비구니 종회의원은 10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현대에는 불교를 포함한 종교가 일반 사회 문제의 기대에 못 미치는데 특히 종교 전반에서 여성의 위치는 너무나 낮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사회에서 여성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종교에서 여성의 위치도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특히 비구니 스님 등 종교 내부에서의 평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가 현대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에 비해 불교 내 양성 평등 의식이 사회변화에 비해 답보 상태라는 것이다.

불교여성개발원의 여성리더쉽교육 장면. 다양한 활동에도 아직까지 불교 내 양성평등의식은 사회변화에 비해 뒤쳐진다는 지적이 많다.
여성불자 ‘기복’에는 ‘책임과 희생’이

전문가들은 여성불자들의 신행활동도 점차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 한국불교에서 여성불자들은 기복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신라 진흥왕 37년 안홍 법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승만경>은 당시 신라 여성사회에 일대혁명을 일으켰다.

민성효 여성학 박사는 “승만경은 특히 신라 상류층 여성들의 신앙 모범이 됐는데 여왕 이름에 승만이 쓰일 정도였다”며 “대승보살의 지혜와 자비심을 강조해 당시 여성불자들의 신행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신라시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했다.

민 박사는 이어 “고려시대 여성불자들은 주로 독경과 시주 등 보시행으로 신행활동을 진행했는데 경전에서 가르치는 행동원칙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는 등 불경을 생활지침서로 삼아 살아갔다. 또 불교는 고려여성에게 종교이면서 사회를 접하는 창구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성불자들은 특유의 ‘기복’ 성향으로 인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여성불자들의 신행이 수동적이고 타력지향적이란 선입견은 여성불자들의 활동에 제약을 가했다.

조계종 교수아사리 명법 스님은 이런 선입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스님은 여성들의 기복행위를 ‘책임’과 ‘희생’이라고 분석했다.

스님은 “여성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통해 더 큰 자아로 성숙한다. 여성은 초월적 구원만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가족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다하는 주체적이고 이타적인 존재로 ‘기복’은 그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명법 스님은 “책임과 희생은 모성에서 나오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과도 통한다”고 말했다.

이인자 경기대 예술대학 명예교수는 “모성은 곧 자비이다. 여성 불교 역시 자비의 사회화”라며 “여성들이 불교와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어 “특히 현대사회 여러 문제와 갈등 사안에 여성불자들이 ‘책임과 희생’을 승화시켜 중재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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