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법희 스님, 렉세 쏘모 스님, 증엄 스님
선덕여왕, 황룡사 9층탑 건립
대행 스님, 국내외 마음공부 지도
대만불교는 비구니계가 교단 주도

 초기불교에서 최초의 여성 출가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다. 부처님이 성도한 후 5년째 되던 해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했다. 이후 교단에서는 여성들의 출가가 이어졌다. 인도 여성 사회의 변화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문헌이 바로 〈장노니게(長老尼偈)〉다. 〈장노니게〉는 비구니 스님의 게송을 모은 것으로 부처님 재세 시부터 아소카 왕 시대까지 2~300년간에 걸쳐 이뤄졌다. 〈장노니게〉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비구니를 포함해 73명 비구니 스님의 게송 522수가 수록돼 있다. 게송의 작자는 한 남자를 남편으로 했던 모녀도 있었고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빚으로 인해 첩이 된 여성, 그리고 기생도 있었다.

부처님의 평등 정신은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신라 법흥왕이 흥륜사(興輪寺)를 일으킬 때 그 왕비도 왕과 같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영흥사(永興寺)를 개창했다.

다음 대인 진흥왕의 왕비도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서 살았다. 이들 두 왕비의 행적은 신라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비구니가 되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진흥왕 37년 안홍 법사(安弘法師)가 중국에서 가져온 〈승만경〉은 신라 여왕의 이름에 쓰일 정도였다. 승만 부인의 도덕성과 천부적인 변재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로 꼽혔다.

신라의 여왕 세명 중 선덕여왕은 그 인품이 승만부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황룡사 9층탑을 세우는 등 불교적 치세 이외에도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위문, 구제하고 죄수를 사면하는 등 대승보살의 행을 펼쳤다.

전국비구니회에서 엮은 〈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에 따르면 근현대 비구니 선맥은 묘리당 법희(1887~1975)스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법희 스님은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개설된 견성암에서 수선 안거 중 깨달음을 얻었고, 만공 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 받았다. 법희 스님은 1966년 이후 10여년 간 견성암 비구니총림 원장으로 주석하며 선풍을 날렸다.

근현대 비구니계에서 국내외적으로 대중교화에 매진한 비구니 스님으로는 대행 스님이 있다. 대행 스님은 1971년 안양 석수동에 한마음선원을 세운데 이어 16개 국내지원을 개원했다.

또 해외포교에 원력을 세우고 1987년 미국 모건힐지원 개원을 시작으로 캐나다, 아르헨티나, 독일, 태국, 브라질 등지에 10개의 해외지원을 설립, 마음공부를 통한 행복의 길안내를 했다.

前 세계여성불자연합회 회장 쏘모 스님은 1982년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지만 대만으로 수계하러 가던 중 한국에서 구산 스님을 만나 계를 받았다. 前전국비구니회장 혜춘 스님을 은사로 ‘혜공’이란 법명과 비구니계를 받은 쏘모 스님은 현재 샌디에고 주립대학에서 불교학을 가르치며 세계여성불자연합회인 ‘사키야디타(Sakyadhita)’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대만불교에는 1만 5000명의 봉사회원과 400만명의 후원자를 보유한 자제공덕회 설립자 증엄 스님이 있다. 태국에는 담마난다 스님이 비구니 승가 재건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담마난다 스님은 2003년 스리랑카에서 비구니계를 받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마르틴 베첼러, 미리암 레버링 등 여성 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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