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귀부(龜趺)→용부(龍趺)

거북의 입에는 보주 없어

귀부라는 것은 비석을 받치는 거북이란 뜻이다. 지난 회에서 용의 아들 아홉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은 비희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세간에 도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비는 ‘큰 거북’이고, 희는 ‘힘쓰는 모양’이라는 뜻이니 ‘힘을 쓰는 큰 거북’이 된다.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좋아하고, 몸통과 등은 거북을 닮고, 머리는 용을 닮았으며 석비 아래에 둔다. 거북은 수명이 기니 영원과 길상(吉祥)을 상징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귀부에 대한 지식 전부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의미만 있을까.


모양은 거북을 닮았어도 실은 용이란 암시가 용구자설(龍九子說)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귀부라 부르고 얼굴을 귀두(龜頭)라 부르고 있으며 거북 등의 무늬를 귀갑문(龜甲文)이라 부르고 있으니 모두 틀린 용어들이다. 이제부터 왜 용부(龍趺)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으로 풀어내려한다.


호승지는 비석받침의 동물을 용의 아들로 보았지만 거북이라는 이름[??]를 붙였다. 그러나 거북의 형상이되 거북이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귀부는 모두 비록 거북등처럼 보이는 것을 지고 있으나 얼굴은 용이다. 뿔이 있으며 수염이 길며, 무엇보다 입에서 영기문이 나오거나 보주를 물고 있는데 실은 입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광경을 상징한다. 거북이는 보주를 지닐 수 없다. 통일신라 890년 충북 월광사 원랑선사탑비(圓郞禪師塔碑)(그림①-1,2)나, 고려 946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先覺大師塔碑)(그림②-1,2)나, 고려 1067년 법천사 지광국사(智光國師) 현묘탑비(그림③-1,2)의 얼굴을 보면 모두 용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오자마자 왕이나 이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물의 대좌로 용부를 삼았다. 그 첫 용부가 태종무열왕의 비석이며 그 이후 몇몇 왕의 용부가 남아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얼굴이 언뜻 보면 거북의 얼굴 같지만, 입에서 영기문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므로 용의 얼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곧 뚜렷한 용의 얼굴로 변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왕이나 왕에 준하는 인물, 예컨대 김인문(태종무열왕의 동생)의 비석에는 용부가 있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원효보살로 일컫는 위대한 스님의 비석이 9세기에 세워지는데 그 때 비석을 용부에 세웠다.

왕이나 고승 비 받침에 사용
그러므로 용부를 받침으로 두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왕 및 왕족이나 고승들의 비석을 세울 때 용부가 갖추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위대한 인물에게만 갖추어지는 비석의 구성에 왜 용부가 등장하는가. 실제로 용의 등에 비석을 올려 세우려 하면, 용의 몸이 길어서 세울 수 없다. 그래서 거북이의 등을 빌려와서 넓은 비석 받침을 마련하고 그 위에 안정감 있게 비석을 세운다. 그런데 등은 거북의 등 모양이 틀림없지만, 실은 육각수문(六角水文)으로 이루어져서 ‘물’을 상징하고 용의 본질이 ‘물’이므로 서로 상응하여 비석의 받침으로 삼아, 그 영화된 물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그 연꽃모양 영기꽃에서 비석이 영기화생하는 광경을 나타내려 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용-육각수문-(영기문이 있을 때와 없을 경우가 있다)-연꽃의 과정’을 거쳐 비석이 화생한다.


이 때 우리는 비석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비석이란 무덤에 묻힌 사람의 훌륭한 행적과 업적을 널리 기리기 위하여 돌에 그 내용을 정성껏 새겨서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석에 는 위대한 인물의 행적이 아로 새겨져 있으므로 비석은 바로 위대한 인물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용부를 거쳐 위대한 행적이 화생하는 것이다. 즉 위대한 인간이 영기화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인간에게는 나라에서 비석을 세워준다. 그것은 서양에서 위대한 인간에게 동상을 세워주는 것과 같다. 귀부가 아니고 용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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