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걸·이치노헤 스님, 사이토 총독 발원문 원본 최초 공개

사이토 총독 직접 쓴 발원문
한국·일본 정신적 합일 획책
관음상 조성해  약초사 봉안

약초사 1940년 남산에 중건
3만 2천평 부지 대규모 불사
관음신앙 통해 신민화 노려

▲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과 일본 조동종 운쇼지 주지 이치노헤 쇼고 스님이 4월 21일 남산에 있던 약초 관음사의 유구들을 둘러보고 있다.
일본 조동종 이치노헤 쇼고 스님이 저술한 <조선 침략 참회기- 일본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에 따르면 당시 일본 불교는 한국에서 심전개발운동을 펼치는 등 전쟁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려는 시도에 일본불교가 앞장섰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불교가 서울 남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관음성지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한국을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는 자료가 최초로 공개됐다.

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 제3, 5대 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1858~1936)가 직접 쓴 발원문(발원장) 원문으로 최근 방한한 이치노헤 스님이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 스님을 통해 본지에 제공한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문화 침략’을 표방한 사이토 마코토가 어떻게 조선을 속국화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사이토 마코토의 발원장에 따르면 “조선 불교와 일본 전통과 같지만 아직 서로 융합하지 못하고 있다”며 “양자는 신불 가호를 설법해 정신적 결합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서히 융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과 일본의 관음신앙이 같다고 밝힌 사이토 마코토는 “지금 관음상을 조동종 조계사(현 동국대)에 기증하고 약초사에 관음성지를 개설해 일본과 조선이 공통된 신앙 아래 정신적 융화가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기술했다.

또한 자신이 관음 신앙을 가지고 있고, 조선 총독으로 노력한 점을 들며 영원히 자신의 법회를 한국에서 영위해줄 것도 요구했다.

1931년 10월 작성된 발원문은 조동종 조계사 주지 다카시나 로센에게 전달됐고, 사이토 마코토는 1935년 4월 약초정 약초사(현재 중구 초동)에 관세음보살입상을 조성했다.

▲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쓴 발원문의 첫 페이지. 사이토 총독은 한국불교 관음신앙을 이용해 황민화 정책을 꾀할 약초 관음사 건립을 발원했다.
세계 최대규모의 관음성지를 세우겠다는 사이토 마코토의 발원은 1933년 약초관음봉찬회(이하 봉찬회)의 발족으로 구체화됐다. 봉찬회는 취지서와 규정을 마련하고 대대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규정을 보면 명예회원은 1000원 이상, 특별회원은 100원 이상, 운영회원은 30원 이상, 찬회원은 1원 이상을 기부금 명목으로 거뒀다. 사업계획서에는 부지 매입금 6만원, 봉안전 공사비 5만원, 부속건물 신축자금 3만원 등 총 15만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혀놨다.

이 봉찬회에는 친일인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고문에는 중추원 자작 박영효가 이름을 올렸으며, 회원으로 고원훈 전라북도지사, 정교원 황해도지사, 김서규 경상북도지사, 윤갑병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사이토 마코토는 세계 최대 관음사찰 건립을 마지막까지 보지 못한다. 일본 내부 정치 갈등에서 밀린 그는 1936년 청년 장교들에게 저격당해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마코토가 사망했지만 약초사에 관음성지를 조성하겠다는 일제의 의지는 식지 않는다. 봉찬회는 신축 관음당을 설립한다는 이유로 경성부 남한정 산 10번지(현 남산예술원 웨딩홀)의 국유림 3만 2000평을 부지로 1940년 8월 ‘자운산 약초관음사’ 창립허가원을 총독부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이후 몇몇 불당의 불사를 진행하면서 사이토 총독의 머리칼을 봉안하고 그의 공덕비를 건립했으나,  오각의 관음전은 도면만 남아 건립 여부는 알 수 없게 됐다.

일본의 패전 후 약초관음사는 원불교가 인수해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으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예식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쓴 발원문의 마지막 페이지. 사이토 총독은 한국불교 관음신앙을 이용해 황민화 정책을 꾀할 약초 관음사 건립을 발원했다.
4월 21일 남산 약초관음사 터를 답사한 이치노헤 스님은 “답사를 통해 기단 석재 등 사찰이 있었던 터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주위 경관도 매우 수려하다. 문화 정치를 표방했던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도쿄의 최대 관음사찰인 아사쿠사 센쇼지와 견줄 정도의 격식있는 사찰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이치노헤 스님은 약초관음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의미들을 조명한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함께 답사한 종걸 스님도 “약초관음사와 사이토 총독의 발원문을 통해 일제가 종교를 통해 조선을 어떻게 장악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사이토 총독은 자신이 조성한 관세음보살이 조선의 수호불이 되게 하겠다는 당치도 않는 발원을 했다”며 “현재 관음상과 함께 봉안된 창덕궁에서 하사한 대반야경 600권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명확한 연구를 통해 당시 시대를 조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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