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회암사 2013 삼대화상문화제’ 개최

범불교 지역 문화행사 자리 매김
학술대회 등 역사 재조명 계획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 자락.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회암사 옛터에 지공, 나옹, 무학 삼대화상의 진영이 나란히 걸렸다. 그리고 그들이 증명했던 법맥의 후손들이 맑은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있다.

양주 회암사(주지 혜성)와 회암사 삼대화상문화제 조직위원회(회암사 불교문화원)는 4월 27일 회암사지박물관 특설무대와 회암사 일원에서 ‘2013년 양주 회암사 삼대화상문화제’를 개최했다. 고려말과 조선초에 걸쳐 불교중흥을 위해 앞장섰던 지공, 나옹, 무학 삼대화상과 그들의 수행 도량인 회암사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제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밀운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조계종 호계원장 일면 스님, 봉선사 주지 정수 스님을 비롯해 양주사암연합회 소속 스님과 불자 등 2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삼대화상께 차를 올리는 다례재로 시작됐다.

회암사 중창의 시원인 지공(指空ㆍ?~1363) 스님은 인도 스님으로 법명은 제납박타(提納薄陀)이다. 인도의 동북 지방인 갠지즈강 유역에 위치한 마가다국 만왕의 왕자로 태어나 8세 때 나란다사 율현에서 출가했다. 19세 때 남인도 능가국 길상산의 보명에게 의발을 전해 받고 인도를 떠나 중국(원)으로 건너왔고, 1326년부터 1328년까지 고려에 머물렀다. 고려의 여러 곳을 유력하다 제자인 나옹 스님에게 회암사 중창의 뜻을 전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귀에 익은 선시의 주인공, 지공 스님의 상수제자인 나옹(懶翁ㆍ1320~1376) 스님은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1372년, 회암사 중건을 시작하여 1376년 4월 15일 대작불사를 마치고 낙성법회를 열었다.
나옹 스님의 적통이며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無學ㆍ1327~1405)스님은 조선조의 마지막 왕사다. 1371년 겨울에 송광사에서 나옹 스님으로부터 의발을 전해 받았다. 1376년 여름에 나옹 스님이 회암사에서 낙성법회를 열 때 수좌를 맡기려 했으나 사양했고, 나옹 스님이 입적하자 자취를 감추었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위령대제를 겸해 마련된 다례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그동안 회암사는 세 분의 다례를 본사 차원에서 봉행에 왔지만 앞으로는 종단은 물론 범불교 차원의 다례재가 되어야 하며, 한국불교 역사의 현장인 이곳(회암사)을 수행성지로 보존하고 알려야 하는 것은 후대의 당연한 도리라 할 것이다.”고 문화제의 의미를 확인했다. 다례재에 이어 참가자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대가람의 흔적 회암사지를 한 발 한 발 둘러본 후 삼대화상의 묘탑이 실존하고 있는 회암사로 이동해 삼대화상의 부도를 참배했다. 삼대화상의 부도를 차례로 친견한 참가자들은 삼대화상의 업적과 대가람이었던 회암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불교행사를 넘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해 마련된 문화제는 양주시의 적극적인 동참과 후원이 있었다.
다도 시연과 시음, 사찰음식 체험, 회암사의 문화재를 둘러보는 걷기대회, 연등과 단청소품 만들기 등의 대중이 참여하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불교용품과 먹거리 장터 펼쳐졌으며,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장기기증 신청서 접수, 중앙신도회 부설 ‘반갑다연우야’의 협조로 이뤄진 무료 한방진료와 치과진료 등 특별행사가 진행됐다. 오후 6시부터는 불교음악 명상가 범능 스님, 가수 안치환, 웅산, 송대관, 회암사합창단, 양주시립합창단이 공연한 음악예술제가 문화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대가람이었던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명종 4년(1174)에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어 12세기 후반 이전부터 가람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회암사는 3천여 명의 대중이 살았으며, 조선 초기만 해도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사찰로 위상과 규모면에서 모두 최고의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부터 유신(儒臣)들에 의해 억불정책이 일면서 위기를 맞는다. 위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가람은 방화에 의해 사라졌다.
회암사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부터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한 발굴조사를 통해 그 규모와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10차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회암사는 일반적인 사찰 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와 방식이 나타났다. 또한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용무늬기와, 봉황무늬기와, 청기와, 잡상 등의 기와류와 왕실전용자기를 생산하던 관요에서 제작된 도자류 등 당시 왕실과 불교문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다. 인근에 마련된 회암사지박물관에는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이번 문화제를 기획하고 준비한 회암사불교문화원 김훈래 원장은 “땅 속에서 유물을 발굴해 내는 것처럼 유물 속에, 역사 속에 남아 있는 삼대화상의 업적과 정신을 발굴해 그들의 존재를 사라진 회암사와 함께 널리 알리고 계승해야 한다.”고 이번 문화제의 궁극적인 취지를 밝혔으며, “본사 차원에서 이뤄졌던 삼대화상다례재가 종단과 범불교 차원의 다례재로 거듭나게 된 것과 지역의 대표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을 성과로 생각한다.”고 문화제를 평가했다. 또한 김 원장은 “삼대화상의 업적과 정신을 주제로 한 논문 공모, 학술대회 개최와 찬란했던 회암사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도서의 출간 등이 남은 원력이며 계획이다.”고 밝혔다. 회암사는 이번 문화제를 계기로 삼대화상이 수행한 불교성지로서 회암사의 위상을 높여나가는 동시에 ‘회암사 삼대화상문화제’를 양주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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