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미학 영화감상회와 영화제

영화상영으로 젊은이 포교 발원
참여자 줄어 중단, 아쉬움만 남겨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나는 5년 전 보성선원에 온 이래 도심사찰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방편을 써야 할 것인지 고민해왔다. 그래서 세 가지로 방향을 잡았다. 첫째는 신행공간, 둘째는 복지공간, 셋째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신행(信行)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어느 절이나 다 하는 거니까 특별할 건 없다. 문제는 복지(福祉)와 문화(文化)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불교를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면 불자는 대부분 여성인데다 노령층이 많다. 나는 젊은이들을 절에 오게 하기 위해 어떤 방편을 써야 할지 깊이 생각했다. 문화의 여러 분야 가운데 영화와 음악에 눈길이 갔다.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틈을 좁혀준다. 뛰어난 상상력과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선사시대의 이야기나 수천 년 후 인류의 미래를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아프리카 오지부터 뉴욕 중심가는 물론 우주공간까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과거ㆍ미래와 만나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 표현 가능한 매체이다. 우리나라는 관객이 연간 1억 명을 돌파할 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세계 6위의 영화대국이다. 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음악, 그 자체가 신심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걸 즐기기 위해 한두 번 절에 오다보면 절 문턱이 점차 낮아질 것이고, 인연을 만나면 신심이 생길 수도 있다. 교회에 투표소를 유치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나는 절에 영화감상 설비를 갖추었다. 빔 프로젝터와 150인치 스크린, 5.1 채널의 서라운드 앰프, DVD 플레이어와 블루 레이 플레이어까지 장만했고, 형편이 나아지면 바꿀 요량으로 중고 스피커도 구했다. 음질이 썩 뛰어난 건 아니지만 전쟁영화에서는 전투기가 머리위로 날아다니고 음악영화에서는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창문에는 두꺼운 암막(暗幕) 커튼을 쳐서 낮이나 밤이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했고, 좋은 영화로 꼽히는 DVD나 블루레이도 준비했다. 신도들에게 매주 토요일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고 공지하고, 영화에 해박한 시인 한 분을 초청하여 상영 전후로 영화해설을 해주는 시간도 넣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신데렐라 맨’‘마더’‘내 어머니의 모든 것’ ‘밀양’‘자전거 도둑’ 등의 영화를 틀어주었다. 처음부터 참여인원이 많지 않더니 시간이 갈수록 더 줄어들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생각하고 평일에 해봐도, 시간을 밤에서 낮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영화감상회는 중단됐다.

기왕 내친 김에 봄ㆍ가을로 ‘영화제’라는 걸 시작했다. 처음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를 7일간 보여주었다. 다음엔 미술가, 음악가, 치매를 주제로 한 영화도 일주일씩 상영했다. 물론 전문가가 영화를 해설해 주는 자리도 마련했다. 지역 언론에 보도하게 하였더니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셨고, 참석자들은 “참 좋다!”를 연발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참가 인원이 적어지더니 이 또한 문을 닫았다.

영화를 상영한 곳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인데 조립식 건물이어서 냉난방을 하더라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게다가 날마다 공양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안락한 의자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영화설비가 어린이법회 때 가끔 활용된다. 영화를 통한 전법의 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몇몇 사람들은 음악감상회와 더불어 좋은 프로그램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서울만 됐어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우리 신도들의 감성이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지,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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