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사 108선원 순례단, 해제 기간 사찰 순례

의왕 청계사(주지 성행)는 4월 22일 서울 조계사와 길상사, 경국사, 흥천사, 청량사, 화계사를 참배하는 제3회 ‘마음따라향기법문 108선원순례’를 개최했다.
이날 순례에는 순례단 단장 성행 스님을 대신해 성연 스님이 지도법사로 참석했으며 자연 유경희 순례단 회장 등 단원 28명이 함께 했다. 제2회 108사찰과 선원 순례는 4월 15일 방생법회를 겸해 백천사에서 진행됐다. 

조계사서 봉축 등보며 환희심
법정 스님 무소유 정신 마음에 새겨
흥천사 문제 십시일반 돕기도
화계사서 유쾌한 해설들으며 회향

산에 들에 들꽃들이 만개한 4월 봄날, 108사찰과 선원 순례단이 북한산 자락의 도심사찰로 순례길을 나섰다. 지난 1월 불국사 등 신라고도 경주로 첫 순례를 떠난지 다시 100일만의 순례였다. 하얀 벚꽃과 비슷한 새하얀 순례복을 맞춰 입은 28명의 순례단원들은 화창한 날씨 속에 발걸음도 가볍게 사찰 순례를 진행했다.

‘마음따라향기법문 108선원순례’는 안거기간에는 선원을 중심으로 순례가 진행되며 안거 해제 이후에는 사찰 위주로 순례가 진행된다. 이번 순례는 의왕에서 가까우면서도 쉽게 찾지 못했던 서울 서북부의 고찰들을 둘러보는 여정이 이어졌다.

조계사 봉축연등은 순례단의 환희심을 자아냈다.
고령의 순례단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평소 찾지 못한 사찰들이었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찾은 사찰은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였다. 조계사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한창 연등을 만들고 다느라 분주했다. 바쁜 와중에도 조계사 호법국장 서송 스님은 조계사를 대표해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조계사는 1910년 조선시대 이후 사대문 안에 최초로 창건된 사찰입니다. 각황사를 지금의 위치에 옮겨짓고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태고사라고 하다가 1955년 조계사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순례단 단원들은 귀를 쫑긋세우고 스님의 설명에 열중했다. 조계사 대웅전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사각등과 대형등 등 특이한 등들이 달려있었다.

순례단원들은 조계사 연등을 보며 감탄을 토했다. 조계사 대웅전과 극락전을 참배하며 순례일정을 부처님께 고한 순례단원들은 버스를 타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도심길을 달린지 몇분이 지나자 봄꽃들이 피어난 북악산이 순례단을 반겼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따라 꽃구경도 잠시 길상사가 살포시 보였다.

길상사에서는 홍정근 맑고향기롭게 사무국장이 길상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안내했다. 자신이 있음으로 인해 주지나 여러 대중이 번잡해질 것을 우려해 법정 스님이 단 한번도 묶어간 일이 없었던 길상사 진영각(전 행지실). 법정 스님이 입적 전 마지막으로 묶었던 이 곳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진영각은 올해 3얼에야 공개된 곳이다.

법정 스님의 유품을 유심히 보는 순례단원들
순례단원들은 법정 스님의 진영과 유골이 뿌려진 곳과 스님이 강원도 수류산방에서 쓰던 유품과 스님의 저서 등을 보며 평소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 정신을 다시금 되새겼다.

백내장 수술 이후 관리 기간임에도 순례에 나선 정각심 보살은 “눈이 아파도 조금이나마 건강할 때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동참했다”며 “예전에 젊었을 때 다녔던 기억이 떠오르니 더 좋다”고 말했다.

홍정근 사무국장은 길상사를 보시한 김영환 보살(길상화)과 시인 백석과의 사랑이야기를 풀어내 순례단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길상화 보살 추모비 앞에서 설명을 듣는 순례단원들
“김영환 보살은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16살 때부터 기생이 되었지만, 문학에 큰 재능을 보여 수필도 발표하며 유명했었습니다. 젊은 시인 백석을 본 순간 둘은 한눈에 사랑에 빠집니다. 당시 백석의 나이는 25세, 김영환 보살의 나이는 21세였습니다. 백석은 ‘자야오가’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보고 김영환 보살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들이 기생과 살림을 차린 것을 못마땅해 했던 백석 부모의 반대로 백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며 결국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김영환 보살은 자신이 기생 출신이었기에 못이룬 사랑에 한이 맺힙니다. 평생을 쓰지않고 모아 이룬 것이 바로 길상사 전신 대원각이었습니다. 말년에 김영환 보살이 입적하시기 전 묶었던 곳이 자야헌입니다. 평생 백석을 잊지 못한 것입니다.”

순례단원들은 이들의 애뜻한 사랑에 안타까움과 부러움을 함께 표했다. 이날 길상사에는 평소 종교간 소통과 화합을 중요시한 법정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한 수녀님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순례단은 수녀님들과 챙겨온 다과를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호박주스 한잔은 종교간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여주에서 왔습니다. 수련기 수녀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정식 승려가 되기 전을 사미, 사미니라고 합니다. 깃에 붉은 동정을 단 스님들입니다.”
“네, 불교는 이렇게 순례하는 재가자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단복도 맞춰입고 보기 좋습니다.”
맛있는 호박주스 한잔은 종교의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다시 길을 나선 순례단은 前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주석처였던 경국사를 둘러보고 흥천사에서 점심공양을 진행했다. 흥천사는 최근 분규사찰이었던 것을 조계종에서 인수한 사찰이다. 때문에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곳들이 많았다.

자연 순례단 회장은 “흥천사 상황이 안좋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이 곳을 찾았다”며 “십시일반 모은 보시금이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열악한 사찰 상황으로 인해 공양도 관음전에서 진행됐다. 순례단원들은 자신이 먹은 음식그릇을 설거지 하며 일손을 덜었다.

순례단의 발길은 청량리에 위치한 청량사로 이어졌다. 현재 비구니 사찰인 청량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기도 했던 곳이다. 신라말 창건된 곳으로 1987년 명성왕후의 묘인 홍릉이 조성되며 현재자리로 옮겨졌다. 비구니 스님들이 거주하는 사찰답게 정돈된 경내가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화단과 풀밭은 순례단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했다.

법정 스님의 진영과 유품이 모셔진 진영각에서 차분히 앉아 스님의 무소유정신을 되새기는 순례단의 모습
순례단이 끝으로 찾은 곳은 화계사였다.화계사는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처인 국제선원이 있기도 한 곳이다. 이날 화계사에서는 외국인 수행과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화계사 연수국장 지오 스님이 순례단을 맞아 부처님 8상성도에 대해 재미있는 해설을 진행했다.

지오 스님은 “부처님께서 태어날 때 한손은 하늘을 한손은 땅을 가리키시며 외치신 천상천하유아독존이 현재는 싸이의 ‘젠틀맨’으로 다시 나투었다”며 “한국인도 외국인도 모두 손을 들고 외치는 그말,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말이 바로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뜻”이라고 말했다.

순례단은 지오 스님의 해설에 이어 짧은 시간 참선과 소원지 소지의식을 진행하며 순례의 아쉬움을 모두 떨쳐버렸다.

선인행 보살은 “서울이 가깝지만 쉽게 못오던 곳”이라며 “순례를 통해 탐진치의 마음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화계사에서는 잠시 입정에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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