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노헤 쇼고 스님, ‘조선 침략 참회기’ 한국어판 출판

당시 日조동종 승려들
전쟁 지원 첨병 역할
안중근 장남 안중생
불러 이등박문에 사과

10년 간 자료 수집해
“역사 인식 바로 세우길”

‘춘무산 박문사에서는 주위의 송림을 뚫고 고요한 독경 소리가 들려온다. 이 독경은 메이지의 원훈 이토 공(이토 히로부미)을 하얼빈 역에서 쓰러뜨린 자격 안중군의 아들 중생 군이 공이 서거한지 30년 세월이 지난 오늘, 기이하게 같은 달에 공 영전에 아버지의 죄를 눈물로 사죄하여 그 영혼을 위로함과 동시에 아버지의 추선 공양을 올리고 아버지를 대신해 보국의 정성을 다짐하는 추도 법요의 일환인 것이다.’

이는 1939년 10월 15일 <경성일보>에 보도된 ‘이토 히로부미도 받아들였다 박문사 사죄의 법요’ 기사 중 일부다. 당시 신문에는 조동종 박문사 주지 우에도 슌에이가 안중근의 위패를 안준생에게 건네는 사진도 실렸다. 일본 불교 종단인 조동종이 나서서 안중근의 아들에게 이토 히로부미에게 참회시키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 불교 조동종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에 와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 <조선 침략 참회기>가 발간됐다.

저자는 일본 조동종 아오모리 윤쇼지 주지 이치노헤 쇼코 스님. 원제는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로 지난해 발간돼 일본 전국도서관협회 우수 도서로 선정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치노헤 스님은 책을 통해 한일 합방부터 일본의 패전까지 조동종이 당시 조선 반도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철저한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고증하고 있다.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가 1895년 명상황후 시해에 깊이 관련된 사실부터 청일·러일전쟁 등에서 종단 승려들이 첨병 역할을 한 것, 한일합방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법요를 봉행하고 전국에 포교소를 개설해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것들을 명백히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현 신라호텔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현창하기 위한 박문사를 세우는 데 조동종 승려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이 자리에서 안중생이 이토에게 사과를 하게 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담았으며, 군산의 수탈사와 함경북도 군사도시 나남의 패전 후 풍경까지 세세히 그려놨다. 또한 군산 동국사의 참사문비를 세우기까지 과정도 생생히 기록했다. 

일본 조동종 이치노헤 쇼고 스님. 자신의 책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의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이 같은 방대한 조선 침탈사를 저술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이치노헤 스님의 원력이었다. 스님은 10년 간 일본, 한국을 오가며 사재를 털어가며 사료를 모았다. 오로지 제대로 된 불교사를 조명하고 싶어 이뤄진 대작 불사였다.

이치노헤 스님은 4월 2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점기 불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일본에도 별로 없다”며 “제대로 된 불교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사료를 모아서 기록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로 한일 양국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찾아 잠들고 있던 사료를 발굴했다. 인터넷 옥션에 올라와 있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엽서들도 구입했다”며 “이렇게 모은 사료들은 책을 저술한 후에 군산 동국사와 동국대, 군산시에 전부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치노헤 스님이 자신의 종단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면서까지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치노헤 스님은 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스님은 “일본인은 당시의 시대를 잊으려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이 시대에 대한 역사 의식이 희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사는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다면 올바른 미래로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이 분단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 책을 통해 일본 불교가 한반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서로가 노력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책의 마지막, 이치노헤 스님은 동아시아 근대 불교사는 현대로 이어지고 있고, 조동종의 포스트콜로니얼(후기식민사회)은 아직도 방황하는 중이라고 쓰고 있다. 한일 양국의 불교계가 근대를 바로 볼 때 아픔의 연쇄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치노헤 스님은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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