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을 찍는 불자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한 불자가 있다. 사업가인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우리절에서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한다. 처음엔 ‘영정사진’이라고 불렀는데, 몇몇 어르신들이 ‘영정’이라는 말이 들어가니까 기분이 나쁘다고 하시면서 오래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장수사진으로 바꿔달라고 하셨다.

이름 바꾸는 데 법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냉큼 바꿔드렸다. 노인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더니 역시 옳은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영정사진을 찍지 않고 장수사진을 찍는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네모난 소프트박스 조명과 가장자리가 자줏빛인 배경지를 우리절에 갖다 두고 그때그때 자신이 직접 설치하여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후래쉬가 천장을 향해 터지도록 하는데 2개의 조명도 동시에 터져 세 개의 조명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촬영하면 얼굴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아 사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다.

처음엔 촬영대상자를 65세 이상으로 제한했었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도 찍게 되어 지금은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다. 매번 어르신 공양에 참석하시는 단골손님들은 대다수가 찍었지만 지금도 찍지 않고 ‘버티는’ 분들이 있다. 아직 정정하니 영정사진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그 배경에는 오래 살고 싶다는 염원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영정사진이 어떤 사진인가. 자손들이 오래토록 볼 사진 아닌가. 그런 사진을 찍는데 아무렇게나 찍을 순 없을 터, 약속이나 한 듯이 할아버지들은 양복을 입고 오시고 할머니들은 한복을 싸오신다.

이날은 미용사도 봉사하러 온다. 어떤 할머니는 즉석에서 파마까지 한다. 미용사 보살이 머리카락을 롯드로 말고 비닐캡까지 씌워드리면 할머니들은 얌전하게 한쪽에 앉아 머리가 되기를 기다린다.

미용사 보살은 화장품도 여러 가지 갖고 와서 할머니들 얼굴을 꾸민다. 할머니들은 뽀얀 얼굴에 발그레한 볼, 빨간 입술, 짙은 눈썹으로 변신하고 수줍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 나타난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 할머니들도 무죄다.

4~5년 영정사진을 찍었더니 요즘은 소문이 퍼져 멀리 사시는 노인들도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오신다. 처음엔 매월 사진을 찍었었다. 몇 년을 그렇게 찍었더니 찍을 만한 분들을 다 찍고 이젠 대상자가 많지 않아 석 달에 한 번으로 횟수를 줄였다가 올해부터는 신청이 들어오면 모아서 찍는다.

사진작가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직접 포토샵으로 손질한 후 디지털 사진인화 전문 업체에서 인화하고 액자까지 만들어 어르신들께 공양한다. 어르신들은 아주 좋아한다. 지금까지 액자를 가져간 분이 700~800분은 족히 될 것인데 그 모든 비용을 부담하였다. 우리절이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데 있어서 그의 영정사진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어떤 이는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지만 어떤 사람은 죽을 고생을 하다가 떠난다. 어떤 이는 건강하게 오래 살지만 어떤 사람은 요절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건 참 평등하고 공평하다.

영정사진은 모든 죽음을 기억하게 한다. 많은 어르신들의 자녀는 영정사진을 보며 부모 생각에 잠길 것이다. 사진작가의 이름은 신상용, 세월이 흘러 그의 이름은 잊혀져도 그의 선행은 새겨질 것이다, 진여의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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