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의 화엄 세계- 도올 김용옥

오대산 중심에 화엄사상있어
탄허 “교육 통해 불교 거듭나야”
선불교에는 儒佛道 모두 담겨
한암·탄허 법맥 계승해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는 탄허(1913~ 1983)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큰스님 글씨-월정사의 한암과 탄허’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개막식이 있던 날인 4월 15일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탄허 스님의 화엄 세계-20세기 한국의 불교의 정맥(正脈)과 그 고뇌’를 주제로 강설했다. 김용옥 선생은 “탄허 스님은 교육만이 불교의 미래를 밝히는 길이라고 하셨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맥(禪脈)을 잇고 있는 우리는 선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며 “유불도(儒佛道)가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선”이라고 강조했다.

▲ 도올 김용옥은 … 1948년 충남 천안 태생으로, 동양고전에 뜻을 두고 고려대학교 철학과로 편입해 동ㆍ서양고전을 공부했다. 이후 국립대만대학 철학과에서 노자철학으로 석사를, 일본 동경대학 중국철학과에서 명말청초의 사상가 왕 후우즈(王夫之, 1619~1692)의 우주론으로 석사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왕 후우즈의 〈주역〉 해석을 둘러싼 문제들을 동ㆍ서 고전철학의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여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1985년 고려대 철학과 교수를 맡았으며, 1986년 교수직을 떠난 뒤 학문의 길을 걷다, 1996년 원광대 한의과대학을 학부생으로 다녀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했다. 이 밖에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 미국 뉴잉글랜드 복잡계연구소 철학분과 위원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여자란 무엇인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노자와 21세기〉 〈도마복음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탄허 스님을 말하면서 오대산을 지나칠 수는 없다. 오대산은 스님을 품었으며, 스님은 결국 스승이신 한암 스님처럼 오대산인(五臺山人)으로 거듭나는 인생을 걷게 된다.

오대산은 산 전체가 문수성지로 규정된 남한 유일의 불교 성산(聖山)이다. 또 그 속에는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사고(史庫)와 같은 유교문화와 성오평(省烏坪)이라는 무교의 성지, 또 한무외로 대변되는 신도교(新道敎)와 선도(仙道)문화도 존재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대산은 동양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의 사상공간이다.

삼국시대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자장 율사(576?~658?)는 반듯한 청정 율사(律師)이면서 모든 것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화엄사상가였다. 이러한 그의 불교정신을 일관하는 가치가 바로 문수신앙이다.

자장 스님은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 유학하게 된다. 이때 종남산(綜南山) 율종의 도선(道宣)과 교류하고, 화엄사와 지엄(智儼)을 통해서 화엄학을 수학한다. 자장 스님의 화엄에 대한 이해는 문수보살에 대한 종교적 열망을 갖게 되고, 오대산행을 하게 된다.

오대산에 도착한 자장 스님은 북대에서 수행하고, 다시금 북대와 중대 사이의 산상연못인 태화지(太和池)의 문수석상 앞에서 7일간 간절한 염원의 기도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는 이적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이때 자장 스님은 문수보살에게 물질적인 신표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사와 사리를 전해 받는다. 그리고 신라의 명주(溟洲) 지역에도 중국 오대산과 기운이 통하는 오대산이 있어, 문수보살이 항상 나투어서 가르침을 주는 곳이니 이곳을 찾아 참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643년 신라로 돌아온 자장 스님은 황룡사의 2대 주지가 돼 9층 목탑을 건립해 불교를 통해 국론이 결집될 수 있도록 했으며, 양산 통도사를 창건해 부처님의 문수보살에게서 받은 가사와 사리를 봉안했다. 끝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한 태화지를 상징해 자신의 원찰인 태화사를 울산에 건립하고 사리를 모신다.

이후 자장 스님은 말년에 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신라의 동북방이 소란스럽자, 안정을 위해 명주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장 스님은 평창의 오대산을 찾게 되고, 중대 사자암위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며 오대산이 문수성지임을 선포하게 된다.

삼국유사에서는 오대산 월정사에 대해 서술하는데, 풍수를 보는 상지자(相地者)는 “나라 안의 명산(名山) 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니 불법(佛法)의 길이 번창할 곳”이라고 한다.

이 밖에 창병에 걸린 세조가 상원사 앞 개울에서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병이 낫는 등 대대로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였다. 때문에 오대산의 중심에는 화엄사상이 깔려있다. 이러한 이유로 탄허 스님이 한암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화엄경〉에 심취했다.

탄허 스님과 한암 스님
탄허 스님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전쟁 시대에 사신 분이다. 주역에 밝았던 탄허 스님은 전쟁이 날 것을 예언하고 한암 스님께 말씀 드렸더니, 한암 스님은 상원사를 지키겠으니 피해있으라고 했다.

이후 인민군의 근거지가 될 만한 곳은 모조리 태우고 있던 한국군이 상원사에 들어오자 한암 스님은 “너희들은 군인으로 상부의 명령에 따라 불을 지르면 되고, 나는 승려로서 마땅히 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니 망설이지 마라. 어차피 승려는 죽으면 화장하는 것이니, 내 걱정은 말고 불을 질러라”며 정좌했다. 이에 압도당한 군인들은 문만 떼어다가 불을 지르고 내려갔다. 상원사를 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2일 한암 노사는 당신의 할 일을 모두 마쳤다고 판단했음인지 앉은 채로 깊은 선정에 들어 고요히 열반에 드신다.

불교정화운동으로 많은 혼란이 있던 당시 탄허 스님은 “우리 민족과 불교가 살려면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승려교육이 제대로 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님은 인재양성에 노력했으며, 지도자급 인재는 도덕성을 갖춘 인재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동양의 유불도(儒佛道) 삼교(三敎)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당나라 선승의 정맥이 남아 있는 곳이 대한민국 밖에 없다. 여러분은 이렇게 고귀한 선이라는 것이 이미 유불도를 합한 것을 알아야 한다. 인류의 모든 지혜의 궁극이 바로 선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 스님과 젊은이들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티베트 불교나 위빠사나에 빠져있다.

▲ 강당에 모인 700여 관중들은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경청했다.
선을 알려면 화엄사상 알아야
탄허 스님은 이러한 선을 제대로 알려면 반드시 화엄사상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화엄을 모르고 선을 이야기 하느냐”는 것이다. 또 화엄사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노장사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화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화엄(華嚴)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 모습을 뜻한다.
〈화엄경〉에서 꽃의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메밀꽃, 잡초 이런 것들이다. 이런 잡초들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별의별 꽃을 피운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잡초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온몸을 던져서 피우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거체전진(擧體全眞)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든 존재는 그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금사자가 작은 쥐를 잡을 때는 코끼리에게 덤비는 것처럼 전력을 다한다.

이처럼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우듯 이 세계에 현현하고 있는 모든 것, 물, 바람 소리 등 모든 것이 그대로 현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화엄이다.

〈화엄경〉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이 살구꽃이 정원에 만발한 모습을 보고 선한놈인지 악한놈인지 알수있겠는가.

이 꽃이라는 것은 진망(眞妄)이 교차하는 그 자체다. 서로 거체전망해도 거체전진이나 같은 것이다. 결국은 가짜가 없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허망하고 번뇌라고 하는데 〈화엄경〉에는 없다. 여자는 득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화엄경〉에는 없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도움을 받아 진리를 깨우치러 떠나는데 만나는 선지식 가운데에는 어린아이도 있고, 창녀도 있고, 악마도 있고 별별 중생이 다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화엄에서는 ‘네가 곧 부처다’라고 했다. 나라는 모든 존재를 포함한 산천의 화장 세계가 다 위대한 부처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불교가 〈화엄경〉이 없었더라면 기쁘게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엄이 없이는 선을 이해할 수 없다.

임제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했다. 이런 임제사상이 가능 한 것이 화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말했다시피 선을 이해하려면 노장 사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라는 것은 불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노장 사상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장자는 “손가락이 손가락을 가지고 그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 말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은 말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즉 언어와 문자를 떠난 자리에서 봐야만 도(道)라는 실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화엄교리에서 말하는 사법계(事法界)란 우주만물과 세계만물을 가리키고, 리법계(理法界)란 참된 공(空)의 리를 가리킨다 했다. 기본적인 사상은 리가 일체의 사물 가운데에 있고, 각 사물은 모두 완전한 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허망한 것이고 그 세계에 부처님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도 허망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로 꽃을 피우며 화장세계를 이루는 것이 사상계라는 것이요, 여러분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화엄의 세계에는 승속의 구분이 없다. 재가자들도 똑같이 성불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오로지 성불해서 진리를 증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발심을 일으킬 때 여러분은 이미 부처가 된 것이다. 여러분들은 교육을 통해 거듭나야 불교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한 탄허 스님의 가르침을 잊지마시고, 월정사는 그 분의 사상을 충실히 이어갈 수 있는 위대한 도량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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