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미얀마에서는 700년간 불교가 단절된 인도와 달리 부처님 당시의 불교문화가 그대로 생활 속에 살아있다. 아이들의 출가는 의무화 되다시피 돼있다.
지계와 교학 공부에 스님들 자부심 가져
불교가 삶 깊숙이 문화로 살아 있는 나라
미얀마 최고의 해외수출품은 ‘위빠사나’

‘초기불교 지관 문제’ 논문발표 계기
미얀마 선원서 100여일 수행 정진
“양국 불교 비교진단·발전 모색을”

 

필자가 처음 미얀마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미얀마가 아니라 인도였다. 1990년도 델리대의 석사과정에서 미얀마로부터 유학 온 두 스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를 통해서이다. 이후 계속해서 여러 미얀마스님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 보드가야의 미얀마 절에도 머물러 보고 미얀마 스님들과 여행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차츰 알게 된 점이 있었다. 다른 나라 스님들에 비해 미얀마 스님들은 자긍심 또는 자부심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자부심이 스스로 지계(持戒) 수준과 경전과 논서에 대한 교학 공부에 대한 긍지에서 비롯됨을 알게 됐다. 같은 상좌부 스님이 모여 사는 인도의 델리대 불교학과나 국제학생 기숙사 그리고 보드가야 성도지에서 만난 미얀마 스님들에게서도 같은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최근에 미얀마를 찾아 미얀마 현지불교를 체험하면서 미얀마 불교인의 자부심에 더 수긍하게 되었다. 미얀마는 불교국 가운데에서도 스스로 불교 종주국이라는 긍지가 강하다는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확실히 미얀마는 인도나 다른 나라와 달리 불교가 일반인의 삶 깊숙이 살아 있는 문화로 정착되어 있음을 느낀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경우, 불행하게도 13세기 이슬람의 결정적인 불교파괴 이후 약 700년간 이상이나 불교가 단절되었다. 때문에 인도에서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인도불교 문화와 전통이 인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미얀마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는 스리랑카에서도 제대로 느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미얀마 불교를 찾는 외국인은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최근 미얀마 방문 시에 만난 영국출신의 미얀마 전문가인 로버트 테일러 교수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미얀마에서 가장 확실한 해외수출품이 있다. 다름 아닌 ‘위빠사나 수행’이다!”

인터네셔널 테라바다 상가 유니버시티 교수 오타라 스님과 조준호 교수(사진 왼쪽)
필자가 미얀마를 처음 찾은 것은 2011년 겨울 방학을 맞이해서였다. 총 82일의 여정 중 먼저 7박 8일은 법화정사 성지순례팀을 따라 주요 불교유적지를 답사했으며 이후 약 75일간은 마하시 선원, 빠옥 그리고 쉐오민 등 주요 위빠사나 선원에 머물며 선원 일정을 따랐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2012년 12월 인도와 미얀마가 공동 주최한 국제불교세미나에 발표 차 21일을 머물렀다. 이때는 양곤으로부터 6시간 걸리는 미얀마 시골절에서 7박 8일간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마침 인도에서 석사과정을 같이했던 미얀마 스님이 주지로 있는 절과 인연이 닿았다. 그 스님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미얀마 절에서 오랫동안 포교활동을 하다가 은사스님이 입적하시자 뒤를 잇기 위해 미얀마로 귀국하였다. 필자와는 21년 만에 다시 보게 됐다.

국내에서 미얀마를 가고자 한 마음이 든 까닭은 앞에서 로버트 테일러 교수가 말했듯이 위빠사나 수행 때문이었다.

1999년 필자가 ‘초기불교에 있어 지(止)·관(觀)의 문제’라는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면서 위빠사나의 중요 행법인 정념(正念 : sati) 개념이 주요 논쟁점으로 부상했다.

정념 개념에 대한 논쟁점은 다시 지관(止觀) 차제문제와 동아시아 전통의 화두선과의 비교적인 문제로 발전하였다.

처음의 쟁론은 주로 미얀마를 내왕했던 연구자들과 시시비비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초기불교의 지관 이해’에 대한 반론과 이론(異論)은 미얀마의 몇 몇 선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한국인이 많이 머무는 미얀마 선원을 직접 답사해 보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연구 등의 바쁜 생활에 미얀마를 방문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려대에서 진행한 학술진흥재단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작심을 하고 미얀마 선원에 입실했다. 선원의 일과표에 따라 충실하게 공부하려 노력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선실(禪室)에서 좌선과 경행을 한 후 아침 공양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과 아침 공양 후 다시 오전 공부 시간 전의 휴식 시간에는 빠짐없이 현장체험의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다시 점심 공양 전후와 저녁 공부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2~30분 가량 재정리를 했다.

처음에는 각 선원의 지도방법과 공부내용 등에 대해서만 기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그 양이 늘어났다. 한정된 시간 속에 정리하는 손은 마치 자동기술하는 기계처럼 춤을 추었다.

시간이 지나자 선원의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것뿐 아니라 점차 미얀마 문화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얀마 선원을 탐방하면서 미얀마 수행자는 물론 수많은 한국 수행자를 만났다. 미얀마 구석구석의 여러 수행처에 많은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머물고 있는가에 무척 놀랐다.

오래전부터 미얀마를 내왕하면서 공부를 착실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한 수행자들 가운데는 처음부터 미얀마 불교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국불교에 실망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미얀마 불교에 심취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문과 실천적인 모든 면에서 깊이 공부하는 숨은 고수가 많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을 떠나 밖에서 바라본 한국불교는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미얀마 불교를 통해 한국불교가 훨씬 더 잘 보일 수 있었다. 안에서 잘 안 보이던 것이 다른 나라의 불교와 만나게 될 때 그 동안 전혀 몰랐던 여러 면들이 속속 드러났다. 한국불교와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선원에서 탁발한 공양음식을 먹는 미얀마 스님들
필자는 오랫동안 자만해오던 점이 있음을 느꼈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테라와다 불교권의 스님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이미 상좌부불교를 안다고 자부해왔다. 미얀마를 가보지 않아도 미얀마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나름 개인적인 체험으로 ‘외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 나라는 가보지 않았다하더라도 교류하는 그 사람을 통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던 것이 막상 미얀마불교 현장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으면서 내가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과는 굉장히 다를 수 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많은 점에 있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알아갔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미얀마에서 단기 출가를 통해 초기불교와 인도불교를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옷과 자신의 위치 또는 신분에 따라 세상이 달리 드러난다 한다. 미얀마를 통해 과거의 인도불교 또는 초기불교의 모습을 여행해 보고 싶기도 한다.

앞으로 연재에서는 미얀마에서의 100여 일 동안 머물며 일어났던 일들을, 그리고 느끼고 생각했던 점들을 이야기해 보려한다.

이는 미얀마불교를 통해 한국불교를 보고, 한국불교를 통해 미얀마불교를 보게 되는 경우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생활불교가 내면화돼 자리잡혀 있는 대표 불교국인 미얀마를 바라보며 반대로 한국불교의 허와 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진단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준호 교수는

동국대 및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석사ㆍ박사로 BK(Brain Korea)21 불교사상연구단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고려대 철학과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불교학연구회 및 한국불교학 이사, 불교평론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종교문화적 그리고 사상적 기원에 대한 비판적 검토〉, 〈실천불교의 이념과 역사〉(공저), 종단본〈부처님의 생애〉(공저), 〈역경학 개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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