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우리절 신행

한북 스님/대구 보성선원 주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오래전 한 카메라 회사에서 썼던 광고 카피다. 기억의 유한성과 기록의 무한성을 강조한 명언이다. 광고 카피는 때때로 명언으로 남는다.

나는 거의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긴다. 글로 남기는 건 날마다 꼼꼼하게 쓰는 일기와 사무장이 쓰는 일지가 대표적이다.

언제 누가 어떤 봉사를 했는지 적어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리게 되고 자원봉사 통장에 누락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일지를 세밀하게 쓰라고 사무장에게 말한다.

물론 보살행을 하는 봉사자 입장에서는 통장에 기록하기 위해 봉사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주최자인 종무소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것이 봉사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사진은 기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매체다. 백 마디의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절에서는 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진으로 빠짐없이 기록한다.

한 달에 세 번 어르신 공양 때는 신도들이 전날 콩나물 다듬는 것부터 시작하여 어르신들이 공양 드시는 모습, 봉사자들이 밥을 짓거나 음식을 나르는 모습까지 다 기록한다.

독거노인 가구에 반찬을 갖다드리기 위해 음식을 조리하거나 도시락을 싸서 배달하는 모습도 사진 기록의 대상이다.

특별한 행사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웅전 삼존불 복장을 열던 날은 카메라 두 대의 셔터를 쉬지 않고 눌러댔다. 부처님오신날 관불(灌佛) 장면이나 봉축음악회 때 열창하는 가수들도 카메라를 거쳐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 온전히 살아 있다.

한 달에 한 번 불기 닦는 장면도 빠뜨리지 않는다. 매양 그 분이 그 분이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을지라도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어떤 신도님이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사진을 보면 다 나타난다. 사진을 통해 신도들의 보살행을 볼 수 있다.

법회라고 다르겠는가. 큰스님ㆍ작은스님 할 것 없이 법문하는 모습도 담고, 기도하는 신도들의 진지한 표정도 담는다.

전체의 모습을 잡기도 하고 신도님들을 한 분 한 분 따로 담기도 한다.공사를 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큰 공사든 작은 공사든 카메라가 따라붙어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정지된 모습으로 잡는다.

철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전기 배선이 어디로 지나갔는지 사진을 보면 다 알 수가 있다. 절 사진은 주로 사무장이 찍는다. 노출이 맞지 않기도 하고 초점이 나간 사진도 많지만 아무튼 꾸준히 찍는다.

매주 일요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법회를 하는 모습은 교사들이 촬영한다. 아이들이 합장하는 예쁜 모습도, 도자기를 만들거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공놀이하는 모습도 촬영한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찍은 사진으로 우리절에서는 가끔 전시회를 한다. 도량이 좁고 전시할 공간이 마땅찮기 때문에 대웅전 바깥벽에 두꺼운 합판을 붙이고 사진 액자를 내건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법당을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본다. 거기에는 우리절의 모든 모습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액자 속에서 순간은 영원으로 빛난다.

사진은 액자와 하드디스크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진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낼 때 동행하여 신문에 얼굴을 내밀거나 인터넷을 통해 개개인의 모니터를 장식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쇄물에 자리 잡기도 하고 맑은 인화지에 새겨져 앨범 속으로 들어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세월 따라 사람은 가도 이렇게 사진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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