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고려대 교수의 ‘공정과 중도의 미래사회’

〈아함경〉에 돈 관련 법문 많아
부처님은 위대한 경영학자
형편 따라 소비하는 것이 ‘중도 경제’
불교경제공동체로 대안의 삶 찾아야

불교에서 돈은 어떤 존재인가? 기독교가 자본주의발전에 막대한 기여를 한 것과는 반대로 무소유로 대표되는 불교는 돈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려대 행정학과 윤성식 교수는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아함경〉에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으며 돈을 어떻게 벌고 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불교자본주의를 통해 일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돈을 정의내리고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4월 6일 장충동 우리함께빌딩에서 열린 우리는선우 주최 윤성식 교수의 ‘공정과 중도의 미래사회-불교자본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아가 보자.

▲ 윤성식 교수는 … 고려대 행정학과와 오하이오 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리노이대 회계학석사, 동국대 불교학석사, 버클리대 경영학박사,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텍사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불교자본주의〉가 있다.
먼저 제가 어떻게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부터 얘기드리겠습니다. 지독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기독교와는 잘 안맞더라고요. 그런데 집안에 골치 아픈 일도 있고 출근하는 길에 보리수선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알고보니 그곳이 남방불교 위빠사나 선원이었습니다. 거기서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이후 교리에 관심을 갖고 조계사불교대학 야간 과정 2년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제가 이렇게 불교 공부를 하면서 뜻밖의 발견을 했습니다. 불교가 무소유만 강조하는 줄 알았는데 〈아함경〉에 돈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위대한 경영학적인 마인드를 부처님에게서 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님 당시 열렬한 신자들은 상공업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도 그들을 위해 돈에 대해 언급을 하셨을 겁니다.

막스베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독교가 기여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잘못되면 천민주의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토인비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불교가 서양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21세기의 많은 문제를 불교가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있는 듯보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불교에 심취하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워싱턴, 맨하탄 지성인들 모임의 대화 주제로 불교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죠.

불교자본주의를 연기자본주의라고 봅니다. 이렇게 연기적 세계관을 갖는다면 아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이 손실을 메워주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손실에 대해서는 기업이 국가에 도움 받고 이익은 기업 혼자 가져가냐는 거죠. 기업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영향을 받습니다. 환율 올라가면 수출도 잘됩니다. 그러면 국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고환율 정책을 쓸 것인지 저환율을 쓸 것인지 국가는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이익이라는 것은 많은 요인이 결합돼서 발생하는 것이지 완전히 기업 혼자만의 것은 없습니다. 손실도 자기 잘못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전혀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사건으로 내가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불교적기업이란 뭘까요? 스티브잡스는 대표적인 불교적 기업인이라고 봅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한 적 없다. 내 가족이 사용할 제품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라고 말했죠. 그의 삶 자체가 무척 검소했습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사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티브잡스는 젠스타일의 열렬한 신봉자였죠. 아이폰은 군더더기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한 여자분이 립스틱으로 유리창에 ‘고마워 스티브’라고 썼습니다. 자기가 돈 주고 물건을 샀는데도 소비자들이 그렇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스티브잡스가 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의 고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무소유를 매우 강조하지 않습니까? 이 무소유의 개념을 우리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돈이라는 게 번뇌를 주니 단순소박하게 사는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소유, 또다른 하나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또 무소유가 됩니다.

결국 불교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위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산이 불어나면 그냥 불어나는구나 알아차리고 너무 신나하지 말라는 것이죠. 줄어들면 낙심하지 말고 줄어들고 있구나라고 알라는 거죠. 옷 쌓아두고 재물 쌓아두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선법을 권장하면 좋은 것이고, 악법을 권장하면 나쁜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도적 경제를 말해보겠습니다. 중도는 분수에 맞고 건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물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좋은 물건을 써도 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과하게 비싼 물건을 사면 문제가 생기겠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부자는 최고 기능의 휴대폰 써도 됩니다. 그런데 최근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된 휴대폰이 한정판으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부자라도 휴대폰에 다이아몬드까지 박을 필요는 없습니다. 겸손할 줄 알아야 되고 지나치면 안된다고 저는 부자들에게 말합니다. 부자라고 마구 쓰면 불교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길도에 가서 재미있는 걸 봤습니다. 대한민국 전복 80%가 완도·보길도 쪽에서 납니다. 전복양식이 매우 거친 노동이라 노약자는 섬에서 농사만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전복 양식자들에 비해 소득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은 전복양식자들은 돈을 거두어 노약자들에게 1년에 80만원 씩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이 돈이 큰돈이 아닌 듯 보이지만 시골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4분법 돈을 벌면 4군데 나눠 쓰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생계비, 생산비(투자비), 저축, 그리고 나머지는 빌려주어 이자를 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돈은 누구한테 쓸까요? 우선 자기한테 쓰고 나머지는 친척 친구 그 다음이 승가에 보시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보시를 많이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많이 내라고 해도 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는 선우는 4월 6일 장충동 우리함께빌딩에서 고려대 윤성식 교수를 초대 ‘공정과 중도의 미래사회’강좌를 펼쳤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가 생기기전에 불교는 이미 매우 바람직한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자본주의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는 무엇일까요? 바로 공정하고 자비로운 정법국가를 부처님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치우치지 않고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익을 탐하는 것 기교를 부리는 것 것을 극도로 피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매우 공정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자비로운 시장이 되는 거죠. 여기에서는 공존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불교는 서로 의존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 의존이 소비자들한테 이익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하는 것은 조건과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수하지 못한 회사도 효용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해충벌레도 다 생태계에서 역할이 있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경제에 있어서도 어떤 것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좀더 길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각각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인간도 그 중에 하나이고요. 우리가 이러한 삶을 불자들이 모범을 보일 수 있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불교 경제 공동체라는 개념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는 인도 중국 한국 일본에 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경전에도 불교경제공동체 단서가 있습니다. 외도하고는 거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경제활동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뭔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음식과 약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 병자와 어린아이는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이는 종교에 있어서는 불교적 정신을 지키는 것이며 어차피 불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모범이 될 때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집단지성이 지혜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협동조합 소비자조합 금융활동 등은 불교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책들을 읽어보면 연기정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장과 정부가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불교 경전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대안이 나와도 불교자본주의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절제, 슬로우라이프를 넘어 돈에 대한 문제도 불교로부터 찾고 불교에 대해 고마워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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