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쓴 편지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편지가 왔다. 선생님이 직접 가져온 커다란 봉투에는 예쁜 분홍색 종이를 오리고 풀로 붙여 만든 편지봉투도 있고, 올록볼록한 입체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 멋을 낸 것도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연필로 무지개를 그리고 그 속에 글씨를 써넣은 편지, 인쇄된 밑그림에 색색의 형광펜으로 장식한 예쁜 편지도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조심스레 가위로 봉투를 잘라 편지를 꺼낸다. 정성이 담뿍 담긴 편지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삐뚤빼뚤 연필로 꾹꾹 눌러서 쓴 편지는 무려 쉰 장이 넘는다.

처음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은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쁘다고 한다. 5학년 시은이는 “나는 친구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장난꾸러기 회장이다. 그런 내게 장학금이라니! 장학증서를 받으면서 너무 놀랐다. 보성선원에서 잘못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름을 보았는데 내 이름이 또렷이 쓰여 있었다. 말로만 들어보던 장학금이라는 것을 받아본 나는 사실 어리둥절하였다”라는 글로 나를 웃게 만든다.

장학금은 아이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평소 실천을 잘 안 하고 규칙을 잘못 지키는데 이렇게 큰돈을 받고 나서 자신의 생활태도를 살펴보았다”고 6학년 채연이는 반성의 글을 남긴다.

6학년 유진이는 어른스럽게 부모의 인사를 먼저 전하고는 “저번 장학금으로 학용품과 책을 샀다”며 작년에 받은 장학금의 용도를 밝힌 후 올해의 계획도 적었다.

“엄마는 도와주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고 쓴 것은 규리다. 규리 엄마는 장학금 받은 걸 계기로 2학년인 아이의 마음을 다잡았나 보다.

2학년 규원이는 “선생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을 잘 듣겠다”고 다짐한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조손(祖孫) 가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를 언급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짠한 마음으로 편지를 넘긴다.

가난은 아이들의 동심에조차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4학년 수찬이는 “안 그래도 장학금이 필요했는데, 저희집을 살려주신 분”이라고 과장되게 표현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고, 5학년 지은이는 “형편이 어려워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고, 부모님을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가난한 부모는 죄가 없어도 자식의 미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현실이 슬프다.

얼마 되지 않는 장학금이 아이 인생을 변하게 할까만,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아이들은 이 장학금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6학년 오근이, 5학년 민지, 2학년 보배는 “선생님이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나를 장학생으로 추천하셨다”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생각이 깊은 아이들도 있다.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고 아이들에게도 장학금을 나눠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는 주인공은 5학년 문홍이와 3학년 은비다.

5학년 지은이는 “절에서 장학금을 쥐어주시니 내 꿈에 그 돈을 투자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히고서 장학금 받은 것을 계기로 “돈으로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봉사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며 봉사하는 삶에 관심을 갖는다.

매년 초파일이면 우리절에서는 인근 초등학교 두 군데에 장학금을 준다. ‘장학금을 준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액수가 적다. 나는 거창한 명분을 원치 않는다. 이 돈으로 사탕을 사먹어도 좋고, 예쁜 인형을 사도 좋다. 가난한 아이들의 갈증을 잠시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마음 같아서야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인연을 맺어주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마음 한 켠이 묵직해진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