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면서 오지 않았으니 소승 법문”

초의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표현

 

 

제주 대정리로 유배된 추사는 적거지의 고단한 삶을 초의에게 가장 많이 하소연하였다. 때로는 투정을, 혹은 달관된 불교의 경지를, 차를 보내달라는 걸명(乞茗)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는 간난(艱難)했던 제주 시절, 그의 큰 위안처가 차와 불교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중에 제주에서 보낸 것이 가장 흔한 연유는 여기에 있다. 이번에 소개할 편지는 〈완당전집〉 ‘여초의’ 16신와 〈벽해타운첩〉에 수록된 것으로, 제주 유배 초기인 1842년 3월3일에 썼다. 제주 적소에서 초의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추사의 마음이 잘 드러난 이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한 번 온다면서도 실제 오지 않았으니 이는 성문 제 2과입니다. 어찌 대아라한이 도리어 소승법문을 행하십니까. 범부의 관점에서 보아도 큰 바다는 하늘에 붙어 있어 있는 것인데 만약 법안으로 보면 이것을 꺼릴 것은 없을 듯합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단월행을 한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세간의 이치로는 시원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함이 있어서입니까. 청산이 깔깔대며 웃고, 백운이 웃은 것을 느끼지 못하시는군요. 내 편지는 잠시 묵혀두고 그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영진(影塵:그림자와 티끌)으로 이어지지 않는군요. 이에 우리 집의 하인 편에 보내니 참선하는 자리에 걸어두면 좋겠습니다. 나는 관하의 주름져도 주름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증함도 없고 감함도 없을 따름입니다. 허 소치는 혹 대둔사에 왔습니까. 이만 줄입니다.

(一往來而實無往來 是聲聞第二果 豈大阿羅漢反作此小乘法門 以凡夫觀之 大海粘天 若使法眼觀之 似無此? 未知謂何 聞作檀越行云 尙有世諦之拖泥帶水歟 不覺靑山呵呵白雲笑笑 拙書留俟飛錫 影塵莫屬 玆因家付去 試?之禪坐處爲佳 此狀 有觀河之皺而不皺者 無增無減耳 許痴或來山中耶 不宣 壬寅 3月3日))

 

제주도를 찾아온다던 초의의 언약이 몇 차례 무산된 듯. “한번 온다면서도 오지 않았으니 이는 성문제 2과”라는 그의 불평은 초의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이리 표현한 것이다. 성문의 제 2과는 욕계 수혹(修惑)의 9품 중에 6품을 끊은 성자이다. 하지만 9품 중 3품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으니 천상과 인간 사이를 한번 오고간 이후에야 열반에 든다는 것.

따라서 천상과 인간 세상을 내왕해야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처럼 초의는 제주도와 뭍을 왕래해야만 최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 말이 은근하다. 제주도는 아득한 땅이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곳임을 그가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다. 대아라한의 경지를 넘어선 초의가 소승법문을 행하느냐는 그의 희언은 추사다운 멋이기도 하다. 범부의 눈으로 보아도 하늘과 바다는 붙어 있는 것, 법안으로 보면 꺼릴 것이 없다는 장쾌한 논리는 그의 자유로운 불교적 입각처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실제 초의가 단월행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전적인 의미의 단월행은 육바라밀 중에 시주물을 베푸는 재시(財施), 불법을 들려주는 법시(法施)인데, 실제 초의의 단월행은 무엇을 보시한다는 것일까. 또 초의가 오기를 기다려 편지도 묵혀두고 기다린 추사는 오지 못한 초의를 이해한 것일까. 자신의 정성을 담아낸 글씨를 써서 초의에게 보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벗, 초의가 항상 곁에 두고 감상하기를 고대했던 추사였다. 살가운 우정이다.

관하(觀河)는 석가모니 부처께서 파사익왕에게 원래 생멸이 없음을 보여 준 법문이다. 주름은 변한 것이니 멸(滅)을 받고, 주름지지 않은 것은 변한 것이 아니니 생멸(生滅)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런 표현 기법은 추사의 사유(思惟)가 얼마나 깊고, 불교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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