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3월 열린논단, 이성동 전문의

불교평론이 3월 21일 ‘선과 뇌과학’을 주제로 이성동 박사(정신과전문의. ‘선와 뇌의 향연’ 번역자)를 초청해 3월 열린논단을 개최했다.
불교의 선체험이 뇌과학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성동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뇌과학이라는 자연과학적 입장이 선적체험의 전부를 파악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뇌과학적 규명이 종교체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동 박사는...정신과 전문의, 명일 M의원 원장으로 신경과학과 불교의 만남, 마음과 뇌의 연관성 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육체의 문화사>,<불교와 과학, 진리를 논하다>,<선과 뇌>,<스타벅스로 간 은둔형 외톨이>,<달라이라마-마음이 뇌에게 묻다>,<정신분열병의 인지 행동 치료>, <정신분열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 등이 있다.
20세기 들어서며 서양에 전해진 불교는 심리학자, 의학자와 같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테라와다 불교의 마음챙김 명상 또는 위빠사나 명상이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그 효능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받습니다. 1970년대 후반 존 카밧진 박사에 의해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이 시행되며 다양한 증상의 호전 등이 밝혀집니다. 이러한 임상적 효과는 과학계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불교명상을 포함한 다양한 동양의 명상은 심신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이 상식화됐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20세기 후반에는 종교 체험을 과학화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뇌 영상을 촬영하는 기술이 급격한 속도로 발전을 이루면서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종교적 체험을 과학기술로 연구하는 신경생리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병원에 있으면 치매로 인해 찾아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뇌세포가 파괴되며 인격이 무너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평소 머리가 좋고 연구를 많이 하던 교수들도 뇌의 기능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격이나 마음이 뇌세포에 의지 하는지를 살피게 됩니다.

서양학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초기 학계에서는 국소주의적 연구가 중점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인격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없을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피는 등입니다. 후두엽은 어떤 기능, 어느 부분은 어느 기능 등 부분적인 역할을 살피는 연구가 진행됩니다. 

국소주의 연구 중 대표적인 사례가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의 사건입니다. 이는 뇌의 각 부분의 기능연구를 촉발시킨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철도노동자였습니다. 일을 하던 와중에 파이프가 뇌를 관통하게 됐습니다. 물론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만 전두엽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뇌에 손상을 입은 그 사람의 성격은 날로 변하게 됩니다. 온순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던 그는 폭력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최근에는 뇌의 여러 부분이 네트워킹으로 연관돼 활동한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물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부분이 손상을 당하더라도 주변에서 보상작용을 통해 일정부분을 보완하는 것 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달라이라마가 서구사회에서 활동하며 명상과 종교활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이 급격히 진행됩니다.

최근 과학은 놀라운 수준으로 까지 발전했습니다. 원숭이 뇌와 로봇을 연결해 원숭이가 ‘왼쪽 팔을 올려야 겠다’고 생각하면 로봇이 왼팔을 올리기도 합니다. 

삼성이나 애플에서는 눈동자에 따라 화면이 움직인다든지 하는 기술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의 뇌파와 고승들의 뇌파를 공명시키면 공상 과학에서 나오는 평화의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뇌과학 연구의 근원도 이러한 내용을 현대사회에 활용하고자 함입니다.

뇌과학 실험 중 좌뇌의 출혈이 일어나 우뇌 활동이 강화된 실험대상을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이 실험대상은 우뇌의 활동이 강화되자 시간의 흐름이 살펴지며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해탈의 상태와 비슷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과 해탈일까요. 불교와 뇌과학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체험이 기반입니다.

임상적으로 환자를 돌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호소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어디가 아파요’하는데 실험적으로 아프다는 것이 없다면 아프지 않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까. 이를 달리 생각해서 선정의 깊은 체험을 뇌과학에서의 기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없다고 할 것입니까.

임제종에서 한때 스님들의 뇌파를 찍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깨달음의 뇌파가 나온 스님들이 있고 또 아닌 스님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스님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까.

불교는 내면적인 자기 관찰을 통해서 마음의 문제에 접근해가는 방법을 위주로 하지만 서양의 심리학 및 정신의학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서의 심리현상을 밝혀나가는 접근법을 중시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길의 궁극적인 길은 무엇일까요?

불교는 수행을 통해 우리를 산만한 생각에서 해방시켜주고, 현재 이 순간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더욱더 잘 알게 해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이고 어떻게 단순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직관을 부여합니다. 과학은 그 직관을 객관화시키고 활용하기 편하게 만드는 방편입니다.

현재 과학으로서 드러난 종교적 체험의 사실은 수행이 뇌의 정신 생리를 변화시킨 다는 것입니다. 현대 뇌과학의 연구성과들은 그 것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랜 수행은 자기 훈련과 마음챙김을 더욱 발달시켜 서서히 자아중심적인 문제들을 드러하게 합니다. 우리는 수행을 비롯한 종교적체험으로 인한 행복을 현대과학을 통해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는 서로의 영역에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수행으로 대뇌의 감각피질을 확장할 수 있고, 시각피질이 손상되었어도 청각피질의 일부를 시각 쪽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측두엽의 언어영역을 활성화하여 어린이 난독증을 고쳤다거나, 명상과 수행을 통해 강박증 우울증등 정신장애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은 불교와 뇌과학의 미래에 무한가능성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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