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일기- 어느 날의 일기 ①

▲ 한북 스님/ 대구 보성선원 주지
호스피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행하는 의료행위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행하는 갖가지 봉사활동을 말하는데 나는 약 6개월 정도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활동하다가 성대결절이 생기면서 그걸 치료하는 동안 당분간 쉬게 되었다. 그동안의 일을 일기로 썼다. 그 중 일부를 싣는다.

8월 7일
863호실. 58세인 백영자 불자님은 내가 다가가자 나를 바라보며 합장했다. 위암. 몸이 많이 수척한 상태인데 수시로 토하고 있었다. 갈색 물질을 한동안 토해내고 나면 생수로 입을 헹구기를 반복했다. 맡기 힘든 냄새가 진동했다. 토하기가 끝나자 내가 말했다.

“보살님, 절에 자주 다니셨어요?”
“자주는 못가고 형편 따라 갔어요.”
“무슨 기도를 하셨어요?”
“관세음보살 했습니다.”
“저랑 관세음보살 기도할까요?”
“기도해 주시면 저야 고맙지마는 스님이 안 귀찮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불현듯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마흔 여덟, 한창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분. 우리 엄마도 말기에 이랬었지. 음식을 드시면 다 토해 버리시더니 결국 꼬챙이처럼 말라서 떠나셨다.

백영자 보살님 모습에서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니 눈물이 스멀스멀 배여 나왔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 이 분을 얼른 데려가소서. 고통없이 편히 데려가소서. 발을 주무르며 관세음보살님을 불렀다.

“이제 됐습니다. 스님 팔 아프지 않습니까.”
백영자 보살님은 왼쪽 발 맛사지가 끝나자 그만하라고 했다.
“팔 안 아픕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왼쪽 발만 하고 말면 오른쪽 발이 서운해 하지 않습니까.”
오른쪽 발을 주무르면서 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관세음보살께 빌었다.

8월 11일
863호실. 백영자 불자 옆에 젊은 처녀가 짐을 싸고 있었다. 백영자 보살님은 나를 보더니 그 처녀에게 말했다.

“스님한테 인사해라.”
딸이 머리를 숙이는 사이 보살님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얘가 우리 막내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데 일부러 왔네요. 바쁜데 오지 말라 해도 왔습니다.”

딸이 짐을 들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엄마, 내가 며칠 있다가 올게.”
딸이 엄마 손을 잡고 말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괜찮아. 얼른 가거라.”

엄마는 얼른 가라고 하면서도 딸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놓지 않고 한동안 잡고 있었다. 마지막 모습을 뼈에 깊이 새기기라도 하는 듯이. 엄마가 잡고 있던 손을 놓자 딸이 병실 입구로 가더니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순간 엄마 눈에 물기가 맺혔다. 딸은 병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칫거리더니 침대로 도로 달려와 엄마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어이 통곡했다. 엄마 눈에서도 유리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엄마, 엄마!”
엄마와 딸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바탕 울음바다를 만들더니 엄마가 감싼 팔을 풀며 말했다.
“가거라. 괜찮다. 나는 괜찮다.”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딸은 엄마를 바라보고 있더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딸이 떠난 후 내가 관음경을 읽고 관음정근을 하는 동안 엄마는 내내 눈을 감은 채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빌고 있었다. 부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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