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위한 슈마허의 중간기술론

과학기술 발달로 인간 행위 발전
정신 능력은 그 발전속도 압도 못해
대안책으로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 높아
생산성 높지않고 비인간화 안되는 기술

▲ 케이맥 로토뮬더스 앤 파이어니어 플라스틱스의 큐드럼. 깨끗한 물의 공급처로부터 수킬로미터 떨어진 아프리카 시골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손이 행복도, 불행도 가져온다
‘오늘날 인간의 손은 인류의 빈곤을 없앨수 있는 힘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는 힘도 동시에 주어졌다’고 1960년 케네디는 신년연설에서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케네디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희망과 더 많은 절망을 동시에 겹쳐져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 기술, 바이오. 에너지 정보통신의 발전등 놀라운 기술발전으로 많은 상품이 생산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구매하기 위해 오직 화폐를 보유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인류는 위기를 염려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더욱이 제어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이 과학과 기술을 앞세워 그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철학자인 장회익교수는,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행위능력은 발전했지만, 이를 통제할 정신능력은 그 발전속도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앞의 글에서 과학기술에 의존해서는 근본적인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삶, 자원을 덜 소비하는 삶, 적게 소비하고, 작은 것을 지향하고, 천천히 살며, 자발적인 가난, 주체적인 청빈으로의 ‘전환’이 근본이 되어야 하며, 그 토대위에 과학기술은 부분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순수의 영역이라고 말하지만, 과학연구의 방향성도 자본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과학자들 또한 비도덕과 비윤리인 접근을 서슴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 포섭되어있기 때문에 과학을 순수하다고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기술의 영향은 해당 사회 욕망시스템의 페러다임에 철저히 더욱 깊이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과 지배계급, 권력의 이익에 더욱 편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지속가능한 기술로서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활발해진 ‘적정기술’연구
최근 땔감이 부족한 인도나 아프리카에 태양열 집열판으로 만든 곤로를 만들어 보내고 있는 단체들이 있다. 반짝이는 철판들을 둥그렇게 초점이 모아지도록 붙여, 조리할 것들을 올려놓으면 훌륭하게 요리가 되는 태양열 곤로이다.

또 정수필터가 내장되어 있어 세균과 바이러스로 오염된 물의 99%를 걸러 마실수 있는 라이프스트로우(Life Straw)도 있다. 그리고 패트병에 세제와 물을 넣어 반투명 액체를 만들어 지붕과 연결된 천정에 끼워놓으면, 대낮에도 컴컴한 가난한 나라의 가옥에 55w 전등을 켠 효과를 볼수 있다.

이뿐아니다. 압축 볏짚을 쌓아서 벽체를 올리고 양면에 황토로 미장하는 방식으로 짓는 스트로베일(Strawbale)하우스는 흙으로 두껍게 미장하기 때문에 장마철 습기와 단열에도 아주 좋아서, 가난한 나라 뿐아니라 선진국의 생태적 건축으로 많은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태양광전지를 이용한 전기생산, 사탕수수로 만든 숯, 많은 양의 물을 담아 굴리며 옮길 수 있는 드럼통, 태양열을 모아 난방에 사용하는 난로. 햇볕온풍기, 손악력운동으로 충전되는 손전등, 물의 힘을 이용하여 산을 오르내리는 셔틀기차 등, ‘적정기술(AT : Appropriate Technolog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을 개발하는 개발자들과 개발도상국에 지원을 하는 NGO들이 늘어나고 있다.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트랙터가 개발도상국에 대대적으로 보급된다면 그 지역의 농업생산력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대규모 실업과 계층적 위화감과 혼란이 야기될 것이고, 석유에 의존하게 되어 국제시장에 장악되는 농업이 될 것이다. 따라서 트랙터라는 높은 기술 (High Technology)보다는 효율은 떨어지지만, 호미와 같은 전통적이고 원시적인 기술 (Low Technology)보다는 훨씬 우수한 기술, 이것을 통칭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고 부른다.

이 기술은 부자나 권력자의 기술이 아니라서 ‘민중기술’이라고 하기도 하고, 마을의 자립을 위한 기술이라고 해서 ‘자조기술’이라고도 말했지만 최근에는 ‘적정기술’ 라는 말로 정착되고 있다.

대체로 고도화된 거대기술은, 자본집약적이고 에너지의존 비율이 높고, 노동절약적인 기술이다. 또한 작업장이나 공장을 짓고 유지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돈과 석유가 들어간다. 그리고 이 기술은 인간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돈을 만드는 기술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자 고용을 최소화시켜 일꾼을 줄어들게 만드는 기술이다.

결국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사람을 자본에 포섭시킨다. 그러나 ‘적정기술’은 생산성도 높으면서 비인간화되지 않는 수준의 ‘중간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지속가능한 기술’을 지향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중간기술론
‘중간기술’은 슈마허(E. F. Schumacher)가 1973년에 쓴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나온 용어이다. 이 책은 환경론자들에겐 경전과도 같은 책이며, ‘불교경제학’으로의 전환을 강조한 책으로 유명하다. 그는 선진국과 가난한나라의 빈부격차를 고민하다가, 간디의 마을자립 경제운동과 불교경제학에서 영향을 받아, 선진국의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립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높은 고도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중간규모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슈마허의 중간기술은 ① 직장을 대도시권에 집중시키지 않고,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만든다. ② 이와 같은 직장은 고액의 투자나 다량의 수입을 필요로 하지 않고,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비가 싼 것이어야 한다. ③ 생산기술도 비교적 간단한 것이어야 한다. ④ 원재료는 주로 현지의 것을 사용하고, 제품도 현지에서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많은 돈이 필요없고 누구나 쉽게 자신의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소규모 사람들이 모여 생산이 가능한 기술로, 사회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여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인 생산과 소비를 통해 건강한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이다.

실제 필자가 활동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마을의 전기공급을 위해 고가의 소수력발전기를 지원하여 설치한 적이있다. 그러나 오지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이 문맹이라 이 첨단기계를 작동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 설치된 후 곧바로 고장난 흉물이 될 운명에 처했다.

이처럼 첨단기술은 결국 관리, 수리, 고장을 외부에, 돈에 의존해야한다. 따라서 중간기술은 현지의 재료, 현지의 전통과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적은 자본으로 비교적 고치기 쉬운 간단한 기술을 활용한다.

슈마허는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해결하고, 나아가 이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선진국 스스로도 첨단기술의 비인간성에서 벗어나게 될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중간”이라는 용어가 미완의 기술 또는 첨단기술에 비해 열등하다는 오해를 줄수 있어 최근에는 ‘적정기술’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가난한나라의 원조로서의 적정기술
초기에는 가난한나라의 빈곤퇴치를 위해 제안된 것이 이제는 환경위기를 앞두고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 (MDGs)에서 제기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위해 OECD의 많은 원조공여국들이 지속가능한 기술로서, 원조의 효과를 위해 적정기술 지원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슈마허가 1966년 영국의 서식스대학에 중간기술개발집단(ITDG, 현 Practical Action)을 설립한 이후, 1969년에 미국의 신연금술연구소, 1976년 카터정부때 설립된 국립적정기술센터(NCAT) 등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독일 국제협력단(GIZ), 네덜란드 개발기관(SNV)등, 선진국의 기술원조기관들, 국제개발기업(IDE), 킥스타트(KickStart),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샥티(Grameen Shakti), 라오스의 선라봅(Sunlabob), 인도의 셀코(SELCO)등의 사회적 기업과 유수의 공과대학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도 적정기술 ‘붐’이 일고 있다. ‘나눔과 기술’,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등 과학기술 전문가들이나 ‘굿네이버스’, ‘팀앤팀’, ‘대안기술센터’ 등의 NGO 단체들,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 ‘한동대학교 그린 적정기술 연구협력 센터’와 같은 대학 내 기관 및 교육 프로그램 등이 생겨나면서 민간 차원에서 크고 작은 적정기술 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적정기술은 시장에 의존하기 보다 인도적 구호, 기부의 방식으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술 발전과 확대에 장애가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적정기술은 환경친화적 기술이자 인간의 얼굴의 기술로 앞으로 더욱 주목을 받으며 발전 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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