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멀리(대둔사로)돌아갔으리라 여겼기에 그 동안 학림암에 있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교활한 백파노승에게 얽힌 것이로군요. 이 노인(백파)은 강설(講說)이 화려하고, 소초(疏抄)에도 익숙하며 구변이 바다를 뒤집을 만하지만 선리에 대해서는 진정 그 깊이를 모르겠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나의 병세가 깊어져 한 번도 만나질 못했으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조카 같은 가까운) 그대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을 모르셨던가요. (백파) 그 노승이 글을 가지고 와서 한 두 번 보았을 뿐입니다. 이 사람은 (시와 문장에)재주가 뛰어나고, 도도하고 당당하며 경험한 것도 이미 많아서 일일이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대의 선은 부처에서 연원된 것이고, 또 대둔사에서 연원한 것입니다. 이 외에 (참고할 만한)다른 선이 없는데, 어찌 행장을 꾸리지 않으십니까. 여기에서 보낼 작은 물건이 있습니다만 장마철이라 보낼 인편이 없군요. 날이 개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계획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 병세는 차도가 없습니다. (이것도) 또한 선의 한 경계일 뿐입니다. 팔이 돌다리처럼 무거우니 또한 어찌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意謂歸錫遠擧 不料間留鶴林 爲白坡老狡獪所纏繞也 此老 亦於說講爛 熟疏? 口海爛? 至於禪理 寔未知其淺深也 顧此病情際劇 未與一會 殊可? 咸生不知是何人歟 帶來其老師書一再見之而已 此等 錦心繡口 滔滔盈盈 所經歷已多 不可方物耳 師之禪在金仙 又在頭輪 外此更無禪耳 何當理裝 此有奉送之微物 雨中無以寄去 待晴再圖亦佳 賤恙不增不減 亦一禪耳 腕如石? 亦得?皇 不式)
이 편지는 〈주상운타첩〉에도 수록되었다. 추사가 “그 동안 학림암에 있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편지는 1838년경에 쓴 것이라 짐작된다. 이를 통해 초의가 금강산을 유람 한 후, 학림암에 머물며 백파와 선리를 참구하고 있었음이 자명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추사는 “그대의 선은 부처에서 연원된 것이고, 또 대둔사에서 연원한 것입니다. 이 외에 다른 선이 없는데, 어찌 행장을 꾸리지 않느냐”하며 초의의 귀사(歸寺)를 재촉한다. 아무리 백파의 강설이 화려하고, 화엄이나 선문에도 밝아 소초(疏抄)에도 익숙한 인물이지만 선리의 깊이를 모르겠다는 것. 이어 백파와 초의의 관계가 함생(咸生)같은데 어찌 그 속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함생은 죽림칠현의 완적과 완함에서 연유된 것, 삼촌과 조카 같은 백파와 초의, 이들의 불가(佛家)관계를 이리 표현한 것. 언구의 연의도 추사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