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끝>암베드카르 불교해석의 특징

▲ 불가촉천민 출신인 마야와티 前 쿠마리 우타르 프라데시 주 장관이 암베드카르상에 참배하고 있다.

암베드카르의 불교관 독특
업이론 부정…대립이 苦의 원인
붓다 출가 정치적 망명으로 해석


 암베드카르는 불자가 된 불가촉천민들이 불교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을 저술하기로 결심하고 이후 〈붓다와 그의 가르침〉을 출판한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불교관을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다소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도 담겨져 있다. 또한 그는 ‘불가촉천민의 구원’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개종을 했기 때문에 책에서도 그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불교의 교리는 삭제하거나 부정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부정했다. 그는 생과 사가 모두 고통이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며 이 교리가 불교를 염세적인 종교로 보이게 한다고 비난했다. 사성제 때문에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며 그는 이것이 후세의 승려들에 의해 추가된 개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드러냈다. 그는 업이론 또한 불교를 잘 모르거나 불교를 힌두교와 유사하게 만들려는 사람에 의해 도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생에 지었던 업의 결과가 다음 생에 올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업의 결과는 현생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생의 업으로 다음 생이 결정된다면 모든 것이 과거의 업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므로 현재의 인간의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암베드카르 입장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의 현재 고통이 과거 자신들의 악행 탓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업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의 악행이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을 핍박한 사람들 또한 내생에 어떤 과보도 받지 않게 된다. 업이론을 부정하기 보다는 전생의 악행으로 인해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상위카스트들이 그들을 핍박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님을 인지시키고 더이상 악행을 짓지 않도록 계도하는 편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또한 암베드카르는 종교가 개인의 정신적 구원의 도구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올바름을 확립하는 사회적 지침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종교관은 그의 불교해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부처님 또한 사회개혁가로 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저서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며 부처님의 출가에 대한 독특한 묘사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이 출가 전 싯다르타 태자였을 때 이웃 부족인 콜리야족과 로히니 강물의 사용을 두고 분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부처님의 종족인 샤카족은 콜리야족과의 전쟁을 결의했고 싯다르타 태자는 그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반목하게 되자 그는 해결책으로 자신이 출가를 하겠다며 이것이 일종의 정치적 망명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출가를 한 싯다르타에게 샤카족의 사신들이 찾아와 콜리야족과의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전하며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청했다. 그러나 그를 출가하게 만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국가나 개인 사이에 수많은 대립들이 존재하며 이 대립이 번뇌와 고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그 사회적 대립의 원인을 찾기로 결심하고 수행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는 것이 암베드카르가 말한 부처님의 출가동기이다.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부처님의 출가동기인 사문유관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현재 많은 학자들 역시 부정하는 부분이므로 암베드카르가 자신의 책에서 사문유관을 비이성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부처님의 출가를 정치적 망명으로 해석한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암베드카르는 부처님의 출가에 사회·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게 있어 부처님은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전 생애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쳤듯이 부처님도 사회적 부당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개혁가이기를 그는 바랐을 것이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설법을 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사회개혁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책에서 그는 ‘이 세상에 수많은 불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붓다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력행자가 되어도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중생구제를 위해 설법을 결심했다는 경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부처님의 첫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 역시 부처님을 시대의 모든 지적 훈련을 거친 ‘사회 개혁자’로 받아들였다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함이라는 것이 암베드카르의 주장이다.

또한 사회적 대립을 고의 원인으로 보는 암베드카르의 견해 또한 기존의 불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다. 부처님은 경전에서 고는 욕망 때문에 생기고 욕망은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하셨다. 따라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고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암베드카르와 불가촉천민들에게 있어서 고통의 원인은 카스트로 인한 계층대립이었으므로 그 부분을 부각했겠지만 세상의 모든 분쟁과 대립이 사라진다 해도 생로병사가 지속되는 한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는 간과한 듯하다.

그의 독특한 불교해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종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조에 따라 경전에 나오는 신화적인 내용을 가급적 배제하며 현대에 맞는 합리적인 불교교재를 집필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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