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眼象)→영기창

안상은 영기창이며 생명력 가득

영기문 꽃불단에서 여래와 보살 화생

 

안상(眼象)이라는 용어는 잘못 이름 지어진 아상(牙床)에서 비롯된 웃지 못 할 용어임을 앞서 알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본학자들이 책상(冊床)이나 평상(平床), 그리고 큰 상이라 할 불상 대좌인 목조 불탁(佛卓)이나 불단(佛壇) 같은 조형에서 무엇인가 찾으려 했음은 중요한 단서임에는 틀림없다. 불상이든 석탑이든 석등이든 밑 부분 기단부에 반드시 상 같은 구조에 영기창이 있기 마련이므로 어떤 장르든 가장 중요한 조형임에 틀림없으나, 안상이라는 아무 의미 없는 용어를 씀으로써 안상은 물론 불상과 석탑과 석등의 개념을 올바로 정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석조물부터 살펴보자. 고려시대 거돈사(居頓寺) 원공국사(圓空國師) 부도(浮圖)(1025년)의 기단부의 하대석과 중대석을 보면, 하대석에는 영기창만 있고 아무런 도상이 없지만, 중대석은 영기창 안에는 신장상(神將像)이 조각되어 있다.(그림①)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가 그저 막힌 공간에 신장상을 조각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고 무한한 공간이 열려 있는 저편에서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영기창을 통하여 신장상이 나타나는 광경이다. 즉 현신하는 모습으로 신장상의 영기화생이다. 탑신석에 영기창을 깊이 파내어 불상을 높게 조각한 고려시대 부도가 불국사에 있다. 이것 역시 무한한 공간을 나타내려고 깊이 파낸 것이며 그 영기창을 통하여 여래가 영기화생하는 광경이다.(그림②) 화생이란 현신(現身)을 의미한다. 그 막힌 공간이 실은 무한한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의 그 희열은 잊을 수 없다.

 

온갖 성스러운 존재의 드러남 표현

아마도 영기창이 가장 많은 부도가 쌍봉사(雙峰寺)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일 것이다.(그림③) 浮圖란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으로 한자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승려의 탑을 여래의 탑과 구별하기 위하여 예부터 쓰여 진 용어이다. 요즈음은 승탑(僧塔)으로 학계에서 널리 쓰여 지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승탑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이 탑은 기단부 맨 밑의 영기문에서 승탑이 영기화생하는 장려한 광경이다. 하대석과 중대석에 모두 영기창이 있으며 온갖 영수(靈獸)와 영조(靈鳥)가 나타나고 있다. 그저 정지된 조각이 아니다. 다시 탑신 밑에 기단부가 있으며 각 면의 영기창에서 가릉빙가가 날아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탑신부의 직사각형도 일종의 영기창으로 비천이 날아오르고 사천왕상이 나타나 승탑의 사리를 수호하고 있다. 영기창 넘어로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인식하고 영기창을 통하여 온갖 성스러운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저 벽면에 조각하여 정지하여 있던 성스러운 존재들이 갑자기 살아나 전체가 역동적인 조형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환성사(環城寺) 대웅전 불단의 일부를 보면, 맨 밑에 영기창을 넘어 용들이 나오려하며,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또한 나오고 있다.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나오는 것은 만병에서 영기문이 나오는 것과 같다. 맨 밑 부분에 용들이 많은 것은 맨 밑 부분에 물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그 위의 교묘하게 제3영기싹으로 구성한 영기창에서도 각각 보주나무(사람들은 국화라 부르지만 차차 설명하게 될 것이다)와 연꽃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 역시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영기꽃들이다.(그림④) 바로 이러한 생명력 가득 찬 불단에서 마침내 여래와 보살이 화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단은 단지 현실의 꽃으로 장엄한 것이 아니라, 용과 영기꽃이 영기창을 통하여 나타나서 여래와 보살을 화생시키는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려보고 비교하면 확연히 보여

아직도 의심하는 분이 계시면 무위사(無爲寺)벽화의 본존의 대좌를 보기로 하자.(그림⑤) 대좌의 중대석을 보면 큰 영기창이 뚫려 있고 그 영기창의 턱을 넘어 용이 앞으로 나오려 한다. 용의 모습이 사자같이 보이지만 용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어서 이런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이 대좌에도 물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물은 물(대생명력)에서 탄생한다. 여래도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영기창을 통하여 영기문이 생기며 그 영기문에서 여래와 보살이 탄생한다. 인도의 여신 락슈미의 탄생과 같은 맥락이다.

사진의 작품을 자세히 보시라. 시간이 있으면 프린트해서 투명지를 대고 그려보시라. 그려보면 알 수 있다. 글을 쓰듯이 그림을 그려보라.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안상이 영기창이고 그 안에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으며 그 대생명력이 가득 찬 공간에서 만물이 탄생한다는 진실’은 지식으로 금방 전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놀라운 인식을 거쳐야 체험할 수 있는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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