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불교의 특징

▲ 암베드카르 우디안 기념관 (Ambedkar Udyan Memorial). 코끼리 위에 암베드카르가 서있다.

인도의 신불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불교와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한 개인이 주도한 대규모 개종식으로 의해 탄생했다는 점에서 그 시작부터가 독특한 일이며 그 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한 특정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이다. 따라서 신불교는 그만의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재가 리더십에 대한 강조는 신불교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것은 암베드카르가 자신의 저서 〈붓다와 그 가르침〉에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평등함을 강조한 결과이다. 그는 책에서 법은 출가자와 재가자에게 평등하게 설해졌으며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이는 생활양식에서 나오는 것이지 법에 있어서는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집단개종식에서도 암베드카르는 미얀마 출신의 찬드라마니 스님께 수계를 받았지만 자신을 따라 개종한 불가촉천민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수계를 했다. 이를 두고 이후에 재가자가 수계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암베드카르 사후에 열렸던 수계식들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승려들보다는 암베드카르가 세운 인도공화당의 지도부들이었다. 정치지도자들에 의한 개종운동은 외부인들에게는 이상해보일 수 있었지만 그 운동의 내부에 있는 이들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도자 암베드카르와 함께 일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현재도 인도에서 가끔 열리고 있는 집단개종식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인물들은 정치지도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인도정의당과 로드붓다클럽 등을 세운 우디트 라즈가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델리에서 개종식을 열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불교도가 되었다. 또한 인도공화당의 당수 아타왈레 람다스 반두가 있다.

그러나 이런 개종식이 계속해서 정치인들에 의해 주도됨에 따라 외부에서는 그 개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힌두교 관련 정당들은 불가촉천민들의 개종을 종교와 관련 없는 단순한 정치행위로 매도하고 있고 언론들도 그 순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의 불교도들도 그런 식으로 열리는 개종식이 진정한 불교로의 입문식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과 함께 불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개종식 이후 새로이 불교도가 된 이들에 대한 후속조치 또한 미흡하다.

가령 2001년 우디트 라즈에 의해 열렸던 델리에서 개종식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진정으로 불교를 받아들고 싶어 참석한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개종에 대한 결정은 행사 참여 후 하겠다며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주최 측이 제공하는 경비로 그저 서울구경에 나섰다고 말한 참가자들까지 있었다. 또한 이날 정부가 행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경찰들이 경비에 나섬에 따라 개종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가 상당수 있었는데 우디트 라즈는 개종의식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도 참가의지를 보인 것만으로도 불교도가 되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왔다.

또한 신불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계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암베드카르가 자신의 개종식에서 제창한 22가지의 서원이다. 이것은 전통불교의 오계 만큼이나 신불교도들에게는 중요한 지침인데 여기에는 불살생, 불망어, 불음주 등의 전통계율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불교도들의 특수한 상황에 해당되는 것들이 더 많다. 예를 들면 ‘나는 더 이상 힌두신을 숭배하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힌두종교의식을 행하지 않겠다.’, ‘브라만이 집전하는 의식을 허용하지 않겠다.’, ‘부처님이 힌두신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말을 믿지 않겠다.’ ‘인간의 평등함을 믿겠다.’ 등의 계율을 보면 전통불교와는 다른 신불교만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암베드카르가 신불교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신불교만의 특징일 것이다. 집단개종 후 불교도들에게 가장 큰 기념일은 부처님 오신날과 암베드카르 탄신일이다. 이 두 행사는 거의 유사한 형태로 치루어진다. 특히 암베드카르의 추종자가 많은 마하라스트라주의 신불교도들은 불교의 4대 기념일로 부처님 오신 날, 개종일, 암베드카르의 출생일과 사망일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거의 모든 불교사원에서는 암베드카르의 사진이 불상과 함께 놓여져 있고 그를 기리는 많은 문학작품, 포스터, 그림 등에서 암베드카르는 거의 부처님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사후에 나온 노래에는 그가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신이 인간으로 화했다가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도의 신불교도들은 일반적인 삼귀의 대신 사귀의를 하는데 이는 물론 기존 삼보에 대한 귀의에 암베드카르에 대한 귀의가 더해진 것이다. 인도의 신불교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화보다는 암베드카르 개인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 때문에 불자가 된 것이 사실이므로 사귀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개인 우상화에 대한 논란을 불러올 여지가 다분하다. 그들을 불교로 이끌어 준 암베드카르에 대한 존경심은 충분히 존중받아야겠지만 그것이 이런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존경심으로 자신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셨던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