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잘못을 덥석 껴안아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해요

▲ 그림 최주현
(지난 호에 이어서)
하여튼 여러분이 천당에 가고 안 가고, 또 도리천으로 행하는 일이 되고 안되고, 이거는 전부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가난하게 갖지 마세요. 어떤 게 닥치더라도 대치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 지금 생각을 해 보세요. 누굴 믿겠어요? 대신 살아 주는 사람이 있나, 대신 아파 주고 죽어 주나, 대신 먹어 주나, 배불러 주나 뭐, 잠을 자 주나, 똥을 눠 주나. 아니, 하나도 대신 해 주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나무는 자기 뿌리를 믿어야지 누굴 믿습니까, 지금.

그래서 한생각 사이에, 한 찰나 사이에, 우주 삼라대천세계를 도는가 하면…, 사람으로서는 도는 횟수를 말로 할 수가 없죠. 그리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건 (컵 받침을 들어 보이시며) 이런 거 하나를 귀중하게 생각하고 하는 겁니다. 지금 ‘자신’을 찾으면 원심이 되는 겁니다. (컵 받침을 들어 보이시며) 이런 거 하나에 코드가 다, 촘촘히 끼워져 있어요. 그건 이제 법으로 나가는, 천차만별로 나가는 길이죠. 그런데 자기의 원심이 있기 때문에 아프면 의사가 필요하고, 또 죽을 때는 지장이 필요하고, 죽는 걸 살릴 때는 칠성이 필요하고, 산에는 산신이 필요하고, 물에는 해신이 필요하듯이, 각각 소임을 맡아서 하는 종류가 여기 쫙 붙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거 하나만 찾으면 다 상황에 따라서 쓸 수가 있죠. 줄창 아프기만 한 것도 아니고 또 줄창 성한 것만도 아니고, 잘되는 것만도 아니고 잘못되는 것도 있고, 가지가지로 모든 게 (컵받침을 들고 가리키시며) 여기에 달려 있는데 상황에 맞게 코드를 끼우면 여기에서 자유스럽게 그냥 자동적으로 에너지가 나와서 용도대로 해결하는 거예요. 아프면 ‘주인공,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어.’ 하고 관하고, 못살면 ‘못살게 되는 것도 여기서 나오는 거니까 잘살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관하는 것도 그 코드를 끼우는 거거든. 그러니까 자기 앞에 다가오는 그 모든 거를 다, 용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거기에다가 관해서 대치를 하고 가는 거죠.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 쫘악, 원자에서 입자가 나가듯 그냥 쫙 나가서 자기 할 도리를 다하고 원자로 집중을 하는데요. 그러니까 허공에도 이 생명들이 꽉 차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에너지가 있는 거지 생명이 없다면 무슨 에너지가 있겠습니까?

지장보살이 그랬다면서요? ‘다 승천하게 만들고 내가 나중 가야겠다.’ 하고 문고리를 잡고선 아무리 끝날 때를 기다려도 끝이 나지 않더래요. 좀 간 사람은 더 가고, 갓 젖 떨어진 사람은 또 다가오고 이러니까 뭐 끝날 사이가 없죠. 그러는 반면에 지장은 그런 말을 했죠. ‘우리가 사는 것이 끝없는 진리로구나. 나는 몸이 있든 없든 소임이 이거니까, 지위가 이거니까 그대로 거기까지 이끌어 주기 위해서 영원히….’ 그것은 영원히 들어가고 나가고가 없죠. 자동적으로 들고 나는 데에 손색이 없으니까. 걸림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이가 얼토당토 않게 말을 하는구나. 저이가 알고 그러는 건가, 모르고 그러는 건가.’ 하고. 허허허…. 때로는 그럴지도 몰라요. 어떤 때는요, 그렇기도 해요. 나는 평상시에 그냥 이렇게 하면서 사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경험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얘기를 해 봐도 믿질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거지 어떻게 합니까, 글쎄? 그리고 경험해 보지 않았던 거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책을 보고 경을 보고 배운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얘기할 수 있지만 난 하도 무지랭이라 알 수가 없죠. 경을 본 것도 아니고 읽은 것도 아니고 통달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사람 사는 이치의 진리는, 부처님의 말씀과 지금 변천해서 돌아가는 이 진리가 뭐가 다릅니까?

부처님께서도 처음에 비구니 보고 다섯 살 먹은 사미한테 절을 하라고 시킨 것은 그땐 아만이 많은 여자들이 비구니가 됐으니까 그렇게 방편을 썼지만 그 후에 ‘공부하는 데는 여자 남자가 따로 없느니라. 시대가 변천하면 그것을 다시 고쳐도 좋다.’ 이렇게 하셨을 텐데…. 부처님이 그렇게 안 하셨을 거 같습니까? 하다못해 물고기 하나라도 불성이 다 있고, 불성이 있는 거는 다 똑같지만 자기의 마음의 차원에 따라서 모습을 다 그렇게 가지고 나오는 거뿐이죠.
옛날에 내가 그런 얘기 한 예가 있죠. 아들 사 형제를 낳아서 기르고 있는데 그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언을 하셨대요. “내가 죽걸랑은 관에 넣어서 물에다 갖다가 넣으면 물이 갈라지면서 받아들인다. 그러니 그렇게 해 다오.” 했단 말입니다. 아마 살아생전에 이 공부를 능숙히 다 하신 모양 같습니다. 그래서 즉 말하자면, 천자. 아니, 그럼 이렇게 그냥 말해 버리죠. 죽은 세상의 천자요. 허허허…. “그래야 나는 내 길을 찾아가느니라. 그러니까 그렇게 해 다오.” 그랬는데 아들 체면에 “아버지를 물속에다 넣었다고 어떻게 하느냐?” 하고 그 유언한 말을 듣지 않았단 말입니다.

세 아들이 다 안 듣고 모두 밤을 새우다가 곯아 떨어져서 자니까 막내아들이 몰래 지게를 갖다 대곤 그냥 관을 얹어 가지고 가서 강에다 넣었어요. 강에다 넣으니까 물이 쫙 벌어지면서 그냥 관을 받아들이거든요. 그러고는 막내는 얼른 그냥 헐레벌떡거리고 들어와서 자는 척 하고 있는데 아, 뭐 아버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니까, 그 세 아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짚으로다가 만들어서 옷을 입혀 가지고 관에다 넣고 돌을 넣고 적당히 해서 초상을 다 치뤘단 말이야. 치뤘는데 큰아들이 한 달 있으니까 죽고, 또 한 달 있으니까 둘째가 죽고, 또 한 달 있으니까 셋째가 죽고 아, 그 넷째만 남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형수들이 아이구, 이거 큰일났다고, 우리 막내까지 다 이거, 한 달 있으면 또 죽을 거 아니냐고 해서 족보를 짊어지워 가지고는 바깥으로 나가시라고 그랬어요, 그걸 며느리들은 모르니까. 그래서 그 막내아들이 족보를 짊어지고 이제 먼 길을 떠났어요.

떠났는데, 그 말을 다 하려면 기니까 생략하고 합시다. 어떤 길을 가다 보니까 묘지가 있는데 묘지가 묘지로 보이질 않고 집으로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들어가니까 “저기 좀 가 보자.”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더랍니다. 따라 가니까 가는 길목에, 소 세 마리가 쭉 매달려서 음매 음매 하고 눈물을 흘리거든요. 그래서 “저 소가 어쩌면 저렇게 눈물을 흘립니까?” 하니까 “저건 네 큰형이니라. 저건 네 작은형이니라.” 그래, 삼 형제가 다 거기 소로 돼서 와 있는 거예요. “저놈들이 소 모습을 가지고 한평생 좀 살아 봐야 알 거다.” 이러더라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생각할 땐 그것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라 바로 일체제불의 마음이 그렇게 말씀하신 건데 듣질 않았다, 법을 어겼단 얘기죠. 그러니까 한 철은 소 모습으로 살려야 되겠다 하니까, 즉 말하자면 그 아버지가 저승 천자라고 할 수 있죠. 저승 천자라는 게 말이 안 나와 가지고 아까 그랬죠. 하하하…. 그래서 그 아들이 “이래도 인연이 된 자식이고 저래도 자식인데 어째서 아버님은 그러십니까?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까 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 형님이 그렇게 하셔서 아버지가 제대로 오시지 못했습니까?” 그래도 오시지 않았느냐 이거죠. 그러니까 될 거는 꼭 되니까 그렇게 노여워하지 마시고 인도환생해서 다시 나가서 살게 해 주시라고 하니, 그때서야 고개를 젓고는 웃으면서 말을 듣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생활하시는 것이
내 불성이 있기 때문에 여여하게 산다고
또 다 갖추어졌기 때문에 여여하게 산다고
그 자연적으로 들이고 내는 게 걸림이 없다고
이렇게 하시면서
한생각 사이에 어떠한 것도 걸리지 않게 하십시오.


그런 거와 같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남을 섭섭지 않게 말을 해 주느냐에 따라서 모두가 주어지는 거죠. 여러분은 뭐, 다른 세계로 또 태어나서 대통령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부통령 노릇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누가 “너희는 절대 못 해!” 이러는 게 아니고 연방연방 바꿔지죠. 우리나라도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뭔가 쌓아 놓은 게 있기 때문에 그렇죠.
하여튼 여러분이 지금 생활하시는 것이 내 불성이 있기 때문에 여여하게 산다고, 또 다 갖추어졌기 때문에 여여하게 산다고, 그 자연적으로 들이고 내는 게 그냥 걸림이 없다고, 이렇게 하시면서 한생각 사이에 어떠한 것도 걸리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뭐 다 상세계에…, 아이, 웃고 있네요, 모두. 하하하.
(질문자를 향하여) 어쩐 일이에요?

질문자1(남): 큰스님, 저희 두 부부는 부산에서 올라왔습니다.
큰스님: 예. 알겠군요, 부인을 보니까.

질문자1(남):
예. 저희 부부는 현재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나이가 지금 오십 중반에 들어 있고 큰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실천을 해 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노력을 하지만 저희 부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생의 업보성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인과에서 오는 것인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서 큰스님께 당돌하게 질문을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저희들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지요?
우리 두 사람 밑에 아이들이 넷이나 있고 저희들 나이가 지금 오십다섯이 모두 넘었는데 최근에 와서 집사람이 늘 저의 행동에 대해 의심을 합니다. 대문 밖을 나가면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의심하고, 두 사람이 다 같이 직장을 나가도 저 사람은 직장에 근무하는 도중에도 온통 내 생각만 합니다, 남편의 생각….
큰스님: 행복하시군요. 허허허….

질문자1(남):
저 사람이 현재 어떤 여자하고 노닥거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제 직장에다 전화를 하루에 골백 번 하게 됩니다. 그러니 직장에 있는 모든 동료들이 “네가 무슨 죄가 있지 않느냐? 왜 여러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에 전화가 저토록 오게 하느냐?” 이런 문제가 제기가 되고, 그래도 해결이 안돼서 지금은 아예 저희 학교에 와서 정문 앞에서 딱 기다립니다.

큰스님:
허허허….
질문자1(남): ‘이 사람이 어느 여자하고 놀아나는가를 내가 꼬리를 잡아야 되겠다.’ 이와 같은 식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아!” 나는 그렇게 합니다. “부처님, 하나님 앞에도 맹세를 하지만 내가 죄가 되지 않도록 살려고 하는 사람인데 믿어 줘야 안 되겠느냐.” 그런데 자기도 모르겠다 이겁니다. “내가 왜 당신을 이렇게 못 믿고 자꾸 따라다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식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이제 근 2년 정도 끌고 오는 증세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무조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이 지독하게 미워집니다. 이제 와서는 부부라도 차라리 옆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극도의 마음까지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큰스님께 이 문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어떻게 해야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큰스님: 아주 간단해요. 허허허…. 지금 그런 데서 행복하다 못해 지겹죠? 사랑은 주는 게 사랑이지 끌어 잡아당기는 게 사랑이 아니야. 모든 거를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게 있어. 그래서 모든 거를 자기 탓으로 돌리라고 하는 거야. 자기가 없었다면 남편도 없고 다 없어. 그런데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있는 거야. 그러니 잘하든 못하든 자기 탓으로 돌려. 그리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묶어 놔 보세요. 더 끊고 나가려고 애를 쓰죠. 그냥 확 풀어 놓으면 아주 자동적으로, 나갈 때 나가고 들어올 때 들어오죠. 그러니까 그렇게 집착하고 상상하고 그러지 말고 따뜻하게 그냥 다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서로 똑같이 그러란 말이에요.
똑같이, 부인이 잘못하는 거는 남편이 ‘이것도 다 내 탓이야. 주인공, 너만이 저 사람 그렇지 않게 해.’ 하고 자유를 주고, 또 댁은 남편에게 그렇게 하면서 자유를 줘. 주인공은 둘이 아닌 까닭에 어디를 가서 뭘 행해도 그냥 주인공에서 알아지고 주인공에서 자동적으로 다루어 줘. 다스려 준단 말이야. 그걸 모르고 자기가 말로 행동으로 온통 붙잡으려고 하니 붙잡아지나, 그게?

질문자2(여):
자꾸 미운 짓만 가려 가면서 해요.
큰스님: 이거 봐! 우연히는 없어. 이 세상에 금은 금방에 모이고 넝마는 넝마전에 모이고 무쇠는 무쇠전에 모여. 그렇게 끼리끼리 모이는 거를 어떻게 말로 다 하리까. 그래서 끼리끼리 모인 거야. 응? 끼리끼리 모였는데 누구에게 죄가 있고, 누구의 죄는 더하고 덜하고가 없어. 그러니까 거기에서 ‘아하, 이것도 내 탓이고 저것도 내 탓이로구나. 내가 이 세상에 나지 않았다면 무엇이 걸림이 있고 무엇이 상대가 있으랴.’ 하곤 그냥 다 거기다 놓으라고 지금 공부시키는 거 아니야?
거기다 놓고 미워도…, 그 밉다는 소리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밉다고, 아주 보기 싫다고, 또 그냥 아주 죽이고 싶도록 밉다고 하면 당신이 외려 마구니가 돼. 오늘 지금 이 시간부터 ‘미운 것도 이 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밉지 않게 하는 것도 너야.’ 하고 뒤집어서 돌려서 입력을 해야 그 입력 들어간 대로 나오지.

질문자2(여): 큰스님! 제가요, 이분과 결혼한 지 26년이 됐는데 저한테 봉급을 안 줬거든요. 그리고 저를 얼마나 많이 두드려 팼는지 정신이 이상해지고, 제가 아직껏 성한 데가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가 정신이 좀 이상해져서 부끄러운 거 창피한 거를 몰라요. 그래서 지금도 자기 학교 교장한테 가서 얘길 하거든요, 제가요. 그러면서 스님 법문을 밤 12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 5시까지 카세트 듣고 비디오 보고, 이거 다 옳고….

큰스님: 이거 봐. 그러면은,
질문자2(여): 예.

큰스님:
그러면은 발길로 그냥 쾅 차서 버려. 허허허….
질문자2(여): 미워 죽겠어요, 보면은. 그런데 안 보면 또 안 돼요.

큰스님:
아니, 이 세상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날 미워하시겠지만 한마디 해 보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남을 곯리다 보면 당한 사람이 또 본인을 곯려요. 그러니까 제발 한 식구가 화목하게, 아버지 노릇 잘하고 어머니 노릇 잘하고, 남편 노릇 잘하고 부인 노릇 잘하세요. 한 집안에서 부부지간에 이러면 자식들이 보고 배울 게 없어요. 그래서 부모가 그러던 게 자꾸 입력이 돼 가지고 자연적으로 그런 짓이 나오는 걸요. 그러니까 자식들까지 못살게 한다는 얘기죠. 그러니 제발 그러지 마시고 이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아주 똑같아요. 응, 똑같으니까…, 하여튼 이렇게 똑같이 만들려고 해도 참 어려우실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가 더 이렇게…, 왜 남자라고 했을까요? 그것을 덥석 껴안아 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여튼 이제 이 시간부터 서로 미워하지 마시구요. 미워하고 이렇게 나가시면 세세생생을 또 그걸 둘러요. 그 인연이요, 영 안 떠나요. 네가 그랬으니까 내가 그러겠다, 내가 그랬으니까 네가 그런다 이러고, 요다음에 또 만나서 대대로 내려가면서 그러거든요. 그렇게 만들지 마세요. 부탁합니다.

사회자:
질문이 없습니다.
큰스님: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아나가면서 행하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이치를 얘기했으니까 이치를 아셔서 그대로만 하신다면, 아마 여러분이 이 다음에 돌아가셔도 6대, 7대, 8대, 9대 후손까지도 다 보살필 수 있고 역대 조상님을 다 보살필 수가 있습니다. 그거를 명심하시구요. 여러분이 이 공부를 해 보면 자연적으로 터득을 하시게 돼요. 터득을 하시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걱정인 거는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고요, 정신계가 항상 빠지고 돌아가거든요. 정신계가 빠지고 돌아가니까 화두를 잡아도 ‘이게 뭣고? 이 몸뚱이가 뭣고?’ 하고 몸뚱이 화두를 잡는단 말이야. 몸뚱이가 나로 인해서, 바로 내 자신으로 인해서 형성됐다고 생각을 한다면 현 시대를 그저 걸림이 없이 넘어갈 수 있죠. 그런데 ‘이게 뭣고?’ 한다면 이건 몇천 년 전에 ‘이게 뭣고?’ 한 거와 지금 ‘이게 뭣고?’ 한 거와 다른 게 하나도 없으니, 진전이 하나도 없죠.
아까 얘기했지만 그 줄 잡고 올라가는 거 있잖아요. 지금 우리가 천야만야한 데를 올라가죠. 아무리 천야만야해도 그 줄이 있기 때문에 올라가는 거거든요, 재차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 줄이 우리의 자성불, 바로 그 줄이에요. (합장하심) 이제 생각들 잘 하시겠죠? 누구나가 좋은 데로 가게요.

대중: 예.
큰스님: 그리고 ‘천도는 왜 자꾸 하라고 그러나?’ 하겠지만 천도는 차원에 따라서 되는 거기 때문에 천도는 할 수만 있으면 자꾸 해야 되겠죠. 그렇다고 해서 남한테 빌려다가 하라는 말 안 합니다. 그리고 억지로 밥 굶고 그거 갖다가 하라고 안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아이, 요다음에 생기걸랑은 하자.’ 하고 생각하면 바로 그게 거기까지 통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남한테 빌리거나 이래서 꼭 해야 되겠다 하는 게 아닙니다. 있으면 하고 정히 없으면 못하는 거야. 그리고 못하는 대신에 ‘돈 생기면 해 드려야지.’ 하는 그 지극한 마음이 필요하다 이거죠.
사회자: 다음은 법형제를 대표하여 본원 회장님께서 합동 천도재를 위한 발원문을 올리겠습니다.

신도회장 발원문!
삼보에 귀의합니다. 만시지탄(晩時之嘆)의 감회를 되새기며 오늘 우리 법형제들이 한마음 주인공 자리로 하나가 되어 지극 정성으로 대행 큰스님을 모시고 영가님들을 위한 천도법회와 천도재를 봉행케 되었으니 영가님들께서는 부디 감응하시고 극락왕생하소서. 만나면 헤어지는 만고불변의 진리야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법형제들은 전생의 다겁생의 인연으로 대행 큰스님 문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도반으로 법형제의 연을 맺고, 돈독한 신심과 각별한 우의는 혈육의 형제와 다를 것이 없건만, 우리 곁을 떠나 영원의 세계로 가셨으니 유족들의 슬픔이야 헤아릴 길 없겠으나 우리 법형제 형과 아우들의 마음 한구석 또한 허전하기 그지없나이다. 영가님들께서는 이 생에서 못다 한 일들 다 잊으시고 끊임없는 집착을 훌훌히 털어 버리고 대자대비하신 제불보살의 한마음 주인공 원력으로 아미타부처님 계신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시어 세세생생 법락을 누리소서. 영가들이시여, 남은 유족들과 법형제 형 아우들 모두 건강하게 원하는 일 다 잘 이루어지고 돈독한 신심으로 대행 큰스님의 가르치심, 위없는 깨침의 언덕에 이르도록 음덕을 베풀어 주소서. 다시 한 번 서방정토 아미타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합장 축수하오며, 법형제 영가님들께서 극락왕생하시고 대자유인으로서 소원을 다 이루시도록 발원하노니 부디 감응하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사회자: 사부대중께서는 다 일어나 주십시오.
‘일체제불의 마음’이 있겠습니다.
(법회 후 합동천도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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