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에 도입되는 요소들은 종교적 상징성과 한국성이 드러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
오래전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를 가곤했던 일본사찰에는 콜라나 녹차, 생수 등을 꺼내 먹을 수 있는 자동판매기가 있었는데, 이 물건이 그때는 꽤나 신기해보였다.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면서 이리저리 조사를 하고 사진을 찍다가 자동판매기에서 시원한 녹차 하나를 꺼내 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 꽤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나라 사찰에도 이러한 자동판매기가 도입되어 불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일본처럼 일상화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음료가 필요한 불자들에게는 이 자동판매기가 여간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자동판매기는 전기로 작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여러 가지 고장이 나고 작동을 멈추는 것이 문제였다. 일본사찰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재나 철제상자를 만들어 자동판매기를 넣어두거나 지붕을 씌운 쉘터를 만들어 기계를 보호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보호상자나 쉘터가 일본사찰의 전통적인 경관성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에 설치한 자동판매기는 아예 보호상자나 쉘터를 설치하지 않아 고장이 나거나 청결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러한 장치를 했다하더라도 디자인이 조잡하여 우리의 사찰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문제가 된다.

사찰은 특별한 장소성을 가진 곳이다.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다양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성을 오롯이 간직한 사찰환경 속에 도입되는 새로운 요소라면 오랜 세월 사찰에 도입된 다양한 요소들과 잘 조화될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 적용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러한 요소는 한국사찰경관의 수준을 낮추는 작용을 할 수 있어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경관요소를 도입할 때 기존의 경관요소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생활불교의 성격을 수용하고, 불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사찰에 도입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종교적 상징성을 전달해야 하고, 그것이 한국성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