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따라향기법문 108선원순례단, 첫 순례 동행기

버스 출발하자 법당으로 변해
불국선원서 대중공양 후 좌선
분황사 등 참배하며 서원 세워

의왕 청계사(주지 성행)는 1월 23일 경주 불국사와 불국선원, 석굴암과 기림사, 분황사를 참배하는 제1회 108사찰과 선원 순례를 개최했다. 이날 첫 순례에는 순례단 단장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을 비롯해 자연 순례단 회장 등 청계사 신도 임원 33명이 함께했다.
경주=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불국정토의 108선원 순례를 앞두고 서원합니다. 부처님 법의 향기가 널리 퍼지고 승보공양의 문화가 자리 잡는 그 날까지 정진해 나갈 것입니다.”

단순한 순례가 아니었다. 1월 23일 하얀 순례복을 맞춰 입은 33명은 매서운 겨울날씨에 얼음장 같은 법당에서 미동도 없이 스님들의 수행정진에 함께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서원했다. 순례에 참여한 이들의 표정에는 깨달음을 향한 구도열정이 드러났다. 의왕 청계사(주지 성행)가 주최한 ‘마음따라향기법문 108선원순례’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이날 순례는 ‘마음따라향기법문 108사찰과 선원 순례단’이 창단된 지 100일 만에 이뤄진 행사였다. 2012년 10월 15일 창단된 이후 순례단은 순례에 앞서 많은 준비를 해왔다. 기도복과 가방을 맞추고 한글 법문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순례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선원 순례를 통해 스님들의 정진에 힘을 보태고 스스로 마음자리를 닦자는 것이다. 순례단은 올해에만 4월, 6월, 9월, 11월 등 안거기간에 맞춰 전국 선원을 순례할 예정이다. 순례는 5년 동안 이어진다.

긴 준비 끝에 108선원순례단은 이날 경주 불국선원을 비롯해 불국사, 석굴암, 기림사, 분황사 등 경주 일대에 순례의 첫 발을 내디뎠다. 새벽 6시 안양 인덕원역에서 출발한 버스에는 순례단원들이 준비한 공양물이 차례차례 실렸다. 출발과 동시에 버스는 달리는 작은 법당으로 변했다.

주지 성행 스님의 법문에 이어 모두들 따로 마련한 법문집을 들고 법문을 외웠다. 법문 소리와 함께 순례단을 태운 버스는 5시간이 걸려 경주 불국사 불국선원에 도착했다.

선원에 도착하자 말소리는 절로 줄어들었다. 안거 중인 스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자 함이었다. 내리던 진눈개비도 순례단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 모습을 감추었다.

선원장 종우 스님의 안내로 순례단 33명은 선원에서 대중공양물을 올리고 불국선원에 모셔진 월산 대종사 영정에 절을 했다. 이어 순례단은 선원장 종우 스님의 지도하에 스님들의 공양시간 동안 선방에서 좌복을 깔고 잠시 좌정에 들었다.

“진심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바뀌어도 진실한 마음, 생각을 지키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거짓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그 마음을 찾아보세요.”

수개월동안 정진한 스님들의 청량한 기운이 순례단에 전해졌는지 모두들 삼매에 빠진 듯 했다. 30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순례단은 다시 길을 나섰다.

불국선원장 종우 스님에게 참선을 지도받는 108선원순례단원들
자연 순례단 회장은 당시에는 스님들과 같이 안거를 하지 못하는 재가자들이 주변 사찰에 머물며 100일 기도에 동참했다고 한다”며 “안거 기간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고 이에 동참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선원에서 점심공양 후 불국선원을 둘러본 것도 잠시 순례단은 선원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불국사로 향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순례단을 반기는 듯 했다.

불국사에서는 대웅전 뒤 무설전에서 법회를 진행했다. 관광객이나 기도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한 배려였다. 하지만 기도포와 순례단복을 맞추고 합송하는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불국사를 찾은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108선원 순례단원들이 경주 불국사 참배 이후 백운교에서 화이팅 하고 있다.
지심귀명례를 하며 기도가 시작됐다. 차가운 법당도 이들의 열기에 곧 훈훈해졌다. 법당 바깥에서는 금강 같은 발원이 새어 나왔다.

팔을 다쳐 불편한 이들은 한 손으로나마 합장을 하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 서 있을 땐 가슴에 모은 두 손으로 신심을 부여잡았고, 굽은 등은 하심 하겠다는 서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순례단원들은 함께 순례에 동참한 도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청계사에서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매순간 정법 수호에 앞장 설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을 모아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렸다. 또 항상 비어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께 안내하겠다고 서원했다.

법회가 끝나고 성행 스님은 순례단원들에게 불국선원과 불국사가 새겨진 염주 알을 나눠주며 단원들을 격려했다.

법회 이후 직접 만든 염주알을 나눠주는 성행 스님과 순례단원들

이날 순례에 참여한 혜안심 보살은 “평소 참선 수행하며 전국 제방 선방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스님들의 정진하는 모습을 보며 벅찬 환희를 느꼈다”고 말했다.

자운 거사는 “개별적으로 다니기 어려운 선원을 찾아 도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며 “완주까지 함께하며 불교 안에서도 필요한 역할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일정은 불국사 이후 석굴암, 기림사 순례에 이어 분황사에서의 모전석탑 탑돌이와 서원지 소지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순례단의 서원을 담은 불꽃은 경주의 밤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경주 분황사에서 분황사 역사와 의미를 듣는 순례단원들


의왕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
“선원 공양 전통 되살릴 것”
의왕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

“사라져 가는 선원 대중공양 전통을 살리기 위해 모임을 만들게 됐습니다. 승보공양 문화가 교계에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청계사 주지 성행 스님은 108선원 순례에 대해 “불제자로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동안 선원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이 부족해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번 108선원 순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스님은 그동안 선원 공양을 홀로 다녔다.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는 선방 수좌 스님들을 볼 때마다 그 원력에 청계사로 돌아와서도 힘이 넘쳤다. 좋은 것은 권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신도들에게 선원 대중공양을 겸한 순례를 제시했고 신도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이어졌다.

선원 순례라는 이색적인 주제로 인해 순례단 모집에서부터 많은 이들이 몰렸다. 하지만 청계사가 순례단 창단을 발표한 직후 참가는 마감됐다. 인원을 33명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안거기간 수행하는 곳을 방문하기에 많은 인원을 꾸리기 힘들다”며 “적은 인원이지만 선원 곳곳을 다니며 보고 느끼고, 또 정성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음으로 스님은 순례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단복에 들어가는 문양부터 기도포 문구, 염주의 재료 등을 직접 챙겼다.

순례에서 스님은 사찰마다 직접 문화재를 해설하기도 했다. 스님은 “의상대사께서는 처음 발심할 때 이미 그 목적에 도달한다고 하셨다”며 “시작과 끝이 하나요, 원인과 결과 또한 하나라는 ‘초발심변정각’의 마음을 가지고 108사찰과 선원 순례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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