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푹 자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 그림 최주현

마음 도리 알고 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문) 한동안 환희심에 차서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 몸에 병이 생기고 고통이 커지면서 공부도 뒷전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 마음 도리는 알고 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정신 차리게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답)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참 위급하고 모든 게 그냥 급급하고 아주 죽겠지만, 이런 얘기도 있죠. 세상에 나온 게 없기 때문에 갈 것도 없노라고요. 옮겨 놓을 뿐이지 어디 갈 게 있으며 어디 올 게 있는가. 본래 근본 그 불성 자체의 성주는 그대로 있건만 몸뚱이가 떨어져서 지수화풍으로서 다 흩어진다는 거. 그러나 그것도 매장할 때 얘기지 지금은 화장하니깐 뭐 지수화풍으로 흩어지고 말고도 할 것도 없어요. 지금은 이렇게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 뜻은 다 같죠.

그러니 이 몸뚱이가 살 양으로 애쓰면 죽어지고 죽으려고 한다면 살아지는 거죠. 그러니까 죽으려고 살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죽이는 것도 너, 살리는 것도 너. 만든 것이 너기 때문에 부숴 놓는 것도 너, 아프게 하는 것도 너, 고장난 것도 너니까, 네가 한 거니깐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탁 맡겨 버리세요, 그냥. 맡겨 버리면 다 알아서 할 건데 맡겨 놓질 않기 때문에 그놈의 걸 안 해 주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아, 공장에 취직을 해서 갔는데 맡겨 주지 않은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믿고 맡겨 줘야 일을 하지, 잘못하든 잘하든. 그래서 한 번 잘못한 건 병가지상사라고 이것이 한 번 잘못했다 하면 그건 능력이 늘어 가지고선 ‘아, 요럭하면 잘못하지 않는 거로구나.’ 하고 한번 이렇게 돌려보게 되는 거죠.
그럼으로써 모든 일체를 쉬어라, 놔라, 맡겨라, 물러서지 마라. 그리고 감사해라. 모든 것은, 너의 몸뚱이는 네 주인의 시자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 시자가 주인에 의해서 움죽거릴 뿐이지 너는 쉬어야 된다. 너와 더불어 모든 일체를 다 바로 쉬어라 하는 거죠. 그것은 종 문서를 놓지 않고는 절대 그 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어느 스님께서, 내가 그때에 스무 살도 못 될 때예요. “스님, 얼마만큼 가면은 죽습니까? 죽으려고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아요.” 하니까, 내 몸뚱이가 죽는 줄 알고 말입니다. 이 안에서 죽어라, 죽어라, 자꾸 ‘죽어라’ 그러거든요. 이거 몸뚱이가 아주 죽어 버리라는 줄 알고 그냥 차 속에도 들어가고 막 그랬거든요. 근데 안 죽어져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서 “스님, 얼마만치 가면 죽습니까?” 하니까 눈을 뜨고 푹 자라는 겁니다. “눈을 뜨고 푹 자야만이 죽느니라.” 그러거든요. 그거예요, 바로! 여러분이 눈을 뜨고 푹 자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 하나하나 움죽거리고 이러는 것도, 즉 말하자면 전자자동기에 의해서 이게 그대로 돌아가는 거죠. 내 마음에 의해서 스위치만 눌렀다 하면은 그냥 자동기로 돌아가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도 한마디로 규정을 지었지 않습니까. 한 점의 마음에 있는 거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고 남 달린 코도 달렸고 남 달린 눈도 달렸고 귀도 달렸고 이 오관을 통해서 엽렵하고 똑똑하게들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마음에서 한 칼을 뽑았다면 그냥 낄 수는 없지요.

애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문) 요즘은 애 하나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혼하고서도 애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실수로 임신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도 지울 수는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인연을 만나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지금 임신 3개월입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우리가 임신을 한다 하면 정자와 난자가 5억이나, 한번에 5억이나 들끓게 됩니다. 그건 왜 5억이라고 말을 했을까요. 삼천도 지금 의학적으로는 그냥 우수하게 되는데 왜 5억이라고 말을 했는가. 한 생명이 생긴다면, 물질이 생긴다면 그 물질 속에 몇 마리나, 그 생명이 얼마나 많기에 한 몸이 생기겠습니까. 아직 점령을 안 했다 하더라도 생명이 하나 생겼다 하면 벌써 구조는 다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가 한 마리가 딱 임신이 됐을 때는 그 여러 마리가 한 마리로 전부 귀합이 되는 겁니다. 물질이 되는 게 아니라.

모든 그 생명은 하나니까 거기로 다 해서 하나가 돼 버리는 거죠. 하나가 돼 버리니까 나머지는 물로 그냥, 즉 말하자면 없어지고 마는 거죠. 우리가 볼 때는 그게 다 죽고 없어지고 한 마리만 된다 이러는데, 천만에요. 만약에 개수로 따진다면, 3천 마리라면 3천 마리가 한 마리가 돼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가고 옴이 없이 그렇게 무궁무진하다는 그 뜻을 모르고는 본부 맛을 못 봅니다. 그런데다가 애가 들어설 때에도, 들어서서 삼 개월이 된다면, 삼 개월 되기 전만 하더라도 엄마와 자식과 탯줄에 의해서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주고 받고 주고 받는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예가 있었죠. 임신을 하자마자 남편이 고만 교도소에 가게 됐답니다. 그래서 그 애를 낳을 때까지 그 교도소를 다녔답니다. 거길 다니면서 본 거라곤 그거밖에 본 게 없는 거죠. 열 달 내내. 만 아홉 달 만기가 되도록 그것밖에 본 게 없는 겁니다. 허구장창 나서면은, 사식 가져 다니고 허구장창 옷 가져 다니고, 온통 그것 걱정이라. 그랬는데 그 아이를 낳았는데 꼭 그 모양인 거예요.

그러나 몸뚱이가 아무리 다녀도 마음이 그렇게 말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그놈의 거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모든 게 그렇게 보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그냥 들어간 거죠. 그 영향이 어디 가겠어요? 물질의 영향도 보급이 되지만 바로 마음의 영향도 보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질없는 일들을 하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 만신 집이나 뭐, 그 만신 집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만신이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고 그런 거니까. 그러나 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녔으면 중학교 갈 줄 알고 고등학교 갈 줄 알고 대학 갈 줄 알고 대학원 갈 줄 알아야지, 그리고 사회에도 나설 줄 알아야지 인간이 아닐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좀 더 우리가 알 양으로 노력을 해 봤더라면 그런 걸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나가다 보면 그 영향이 어디에 미치느냐 하면 바로 애한테로 다 미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것도 유전을 받아 가지고 무당 어머니에 무당이 또 난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게 유전이죠.


여러분이 사시면서 때에 따라 어떠한 뭐가,
자갈밭이 닥친다
가시밭이 닥친다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그 본부를 찾는 법이에요.
그렇게 공부를 한다면
여러분은 세세생생 끄달리지 않을 것이고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뿌리 없는 뿌리에
영양을 담뿍 줄 수 있는
그러한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것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소소하게 우리 살아나가는 데도 그 영향이 애들한테 얼마나 미치느냐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먹는 대로 영향을, 의학적으로는 먹는 대로 영향이 애한테 간다. 약을 먹으면 약이 영향이 가고. 이런 것만 알았지, 그 보이지 않는 참 기묘한 그 뜻이 전달이 되는 거는 도대체 모르거든요. 인연에 따라서 만나서 내가 임신을 했다면 거기에 영향을, 자기의 영향대로 거기에 미치게 되죠. 그러니 내가 작으면은 그 아이도 작지 어떡하겠습니까. 영향을 자꾸 받았으니까.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느니라.’ 이런 말을 했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난하고 쪼들리고 배우지 못하고, 어떠한 영향을 받는다 할지라도 마음이야 가난해서 되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하지 않는다면은 모든 일이 전체 가난하지 않아요. 하다못해 죽을 한 그릇 먹어도 허허 웃으면서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하고 아마 하늘을 보고 웃을 겁니다. 이 정도는 돼야지, 지금 우리가 손바닥만한 데 지금 오물쪼물 모여서 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네 가정 내 가정 찾고 온통 야단들을 하십니까. 이 지구 한 덩어릴 딱 따져놓고 본대도, 그 손바닥만도 못한 놈의 거를 가지고 온통 야단들이거든요. 도대체 이게 될 노릇입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애들이 배 속에서 받는 영향은 너무도 큽니다. 그런데다가 사회 상식이라든가 교양이라든가 이런 건 또 낳아서 받는단 말입니다. 낳아 가지고도 받아요, 그놈의 걸. 애 보는 데 뭐, 별 욕 다 하고 별 싸움 다 하고, 그저 나가고 들어오고. 벌어먹는 것도 중하지마는 벌어먹는 것도 본부에다 연방 전달을 해 가면서, 상응하면서 한다면, 만약에 부부 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 애들은 천상 착해요. 본부가 항상 지키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고아들처럼 내버리고, 이것은 뭐 먹을 거나 주고 그저 조금 저거 하면 돈이나 주고 이러니까 애들이 아, 외롭고 ‘야, 집에 들어가 봤자야 뭐 그것도 없는데, 친구한테나 가야지.’ 이럭하다 보면은 망가지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걸 꼭 아셔야 합니다. ‘나는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이러니까 남편이라도 생각해 주겠지.’ 천만에요. 자기의 욕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살려고 앨 써도 그것은 아랑곳없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어느 가정에서든지 자기가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편이 손이 안 닿을 때에 일하는 건 괜찮아요. 와서 가깝게 닿을 때는 언제나 내가 항상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돼야 됩니다. 동생이 돼 주고 딸이 돼 주고 때에 따라서는 할머니도 돼 줄 수 있어야 그 가정이 풍부하고 그 본부의 근본을 따라서 오직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 이겁니다. 또 남자는 언제나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행을 다 하면서 또 결국은 아버지도 됐다가 친구도 됐다가, 또는 동생도 됐다가 아들도 될 수 있어야 그 집안이 화목하고 재미있는 집안이 되는 거예요.

예전에 노인네들 말씀하실 때 이런 게 있지요. “너는 끄트머리도 먹지 말고 머리도 먹지 말고 중간만 먹어라. 중간만 먹어라. 네모반듯한 걸 먹어라.” 이렇게 말 한마디 하는 게 뭔 줄 아십니까. 그 물건을 반듯하게 먹으라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유래로 아주 ‘반듯하게 먹어라.’ 이러거든요. 그거라도 반듯하게 먹으면, ‘내가 요거 반듯하게 먹으니까 애 마음도 반듯하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라도 먹으라고 그래서 그렇게 한 거죠, 모르는 사람들한테. 물건이야 끝을 먹든 머리를 먹든 중간을 먹든 그건 상관없어요. 마음 주동만 똑바로 선다면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사시면서 때에 따라 어떠한 뭐가, 자갈밭이 닥친다, 가시밭이 닥친다,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그 본부를 찾는 법이에요. 그렇게 공부를 한다면 여러분은 세세생생에 끄달리지 않을 것이고, 또 자녀들한테도 바로 그 영양이 비 내리듯 주어질 거예요. 이것은 물질로 영양을 섭취를 시키는 게 아니라 뿌리 없는 뿌리에 기둥 없는 기둥이 멈춰서, 멈춰서 꽂힌 게 아니라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그 뿌리 없는 뿌리에 영양을 담뿍 항상 줄 수 있는 그러한 이치가 있는 겁니다.

사랑을 한다면 당연히 착이 생기는데…
문) 우리가 사랑을 한다면 당연히 착이 생기게 마련이 아닌지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착을 다 떼라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답) 왜 집착을 두지 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항상 자식을 낳았다 하더라도 그 자식에 착을 두지 마라, 또는 형제에 착을 두지 마라, 부부에 착을 두지 마라 하는 것은 이미 본래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하기에 진짜 사랑을 알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로 사랑한다는데 물질을 보고 사랑을 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랑은 때에 따라서 가정에서 벌이를 못해 온다거나 또 부인이라면 아파서 드러누웠다거나 어떠한 문제가 일어서 아주 발에 턱턱 채일 정도가 된다면 점차적으로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은 그지없지만 나중에 결국에 가서는 ‘어서, 그저 고생하지 말고 죽었으면….’ 이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정말로 벌이를 못하고 내내 몇 년간 놀아 보십시오. ‘저거는 아이구, 그냥….’ 이렇게 점차적으로 그 애정이라든가 이런 건 다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이 문제들이 진짜 사랑을 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도,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는 겁니다. 진짜 사랑이 뭔 줄 아십니까. 그래서 자비라고 했습니다. 그렇듯이 진짜 사랑을 알려면은 내가 같이 들어갈 수 있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한 번 죽기 어려워라 했더니 두 번 죽기 어렵다 하는 것이 같이 들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상대를 두고 나를 두고 항상 이렇게 되니까.
물론 물질로써 상대는 상대대로 있지요. 하지만 그 상대와 더불어 일부러 둘이 아니라고 생각 낼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나하고 인연이 돼서 아는 사람이나 친척간이나 자식지간이나 부모자식, 이게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돌아가는 거죠. 같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질을 가지고, 같이 돌아가는 거는 생각지도 못하고 물질을 가지고서 거기에 연연해서 사랑한다느니 또는 거기에서 연연해서 잊지 못하고 ‘너는 이렇게 이렇게 돼야 할 텐데….’ 아니, 그쪽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나는 나대로 생각하고 그쪽은 그쪽대로 생각하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 쌍방이 다 다른 길로 가는 거죠. 문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도 있죠. “야! 형제가 단 둘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러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사랑하는 까닭에 그 물질의 착을 뛰어넘게 하기 위해서 냉정하게, 어떠한 부처는 그렇게 얘길 했답니다. “언제 형제가 있었던가. 너의 형제는 벌써 이미 죽었고 너의 형제는 없느니라.” 하고요. 그런데 그걸 한번 뒤집어 생각하면 그건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뿐만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참 내가 억겁 소릴 잘 하지마는 그 모습을 바꿔서 바꿔서 이날까지 점차 바꿔 나왔습니다. 바꿔 나오는 동안에 난 이걸 생각했습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모습을 바꿔서 갖다 놓으면은 그 집 식군 줄 알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면은 저 집 식군 줄 안다 이겁니다. 전자에 살던 인연은 아예 까맣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내가 아는 바로 봐서는 그렇게 뒤섞이다 보니까 내 형제가 아닌 것이 없고, 내 부모가 아닌 것이 없고, 내 자식이 아닌 것이 없고, 전체 이것은 내 남편 내 부인 아닌 것이 없어요. 이렇게 사랑이 깊고 깊은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는 생각이 예전에 덜컥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막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가짜 사랑만 알고 진짜 사랑은 몰라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한테 항상 얘기하는 것은 진짜 사랑하기 때문에, 그 물건 아닌 진짜는 바로 한마음 한 줄에 꿰여 있는데 왜 바깥의 모습에다, 물질에다 착을 두느냐 이겁니다. 물질을 보고 착을 둔다면 절대로 그것은 같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둘이 되기 때문에. 이해되십니까.
공부하고 싶은데 절에 다니기가 힘들어요
문) 절에 열심히 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지만 돈벌이도 해야 하고 집안 살림도 돌봐야 되는 처지라 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면 좋겠습니까.
답) 우리가 지금 벌이해서 밥 먹고 살고 이게 문제가 아니죠. 그러나 또 문제가 아닌데 문제가 되는 거죠. 내가 살아야 공부를 하지 내 몸뚱이가 죽으면은 그 공부를 못하거든요. 이런 공부 할 수 있는 한도량에 한마음으로서 이렇게 만나기가 참 어려운 문제죠. 시대를 좇아서 딱 만나기가. 그러니 그 믿음이 진실해야 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냥 믿지 않으면서 입장만 해놓고는 그냥 일한다고 바쁘다고 안 오다가 무슨 일만 생기면은 그때는 그냥 딴소리 하는 거죠, 뭐. 그러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좀 했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집안에서 살림하는 사람들이 살림하는 데에 모든 게 살림 따로 있고 그 믿는 마음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렵고 가난하고 부자고 그걸 떠나서, 우리가 소꿉장난을 하는데 해가 지면은 모두들 그걸 다 버리고 가지 않습니까. 소꿉장난을 좋은 거를 갖다 놓고 하든 언짢은 걸 갖다 놓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깨진 뚜가리를 갖다 놓고 소꿉장난을 하든 좋은 그릇을 갖다 놓고 소꿉장난을 하든 하등 상관이 없어요. 외려 깨진 뚜가리에다가 놓고선 오손도손 싸움 안 하고 그냥 먹는 걸 보면 좋구요, 좋은 그릇에 놓고도 그냥 싸우고 팽개치고 모두 이런 거 보면은 정말 뚜가리 생활보다 그게 외려 참 살기가 고통스럽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어가더군요.
이 말로 어떻게 다 하리까. 우리가 그냥 한 철 살다가 죽으면은 다시금 그 영혼이, 이 마음공부를 못한 사람들은 영혼이 그냥 눈도 보이질 않고 귀도 띄질 않았기 때문에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게 돼 있거든요. 아무 데나 그저, 뱀이 사는 데나 까치가 사는 데나 짐승이 사는 데나 토끼가 사는 데나, 아무 데나 자기가 닥치는 대로 들어가게 돼 있어요. 그러나 이 공부 한 사람들은 뜻을 알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 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간다 이런 소리죠.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는 우리가 절에 다녀서 무슨 뭐를 어쩌겠느니, 뭐 잘되느니 못되느니 이거를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훨훨 벗어나야만이 이 내 한 몸 벗어나는 데 수천수만 명이 벗어난다 이겁니다. 수천수만 명이 벗어나게 되면 그 수천수만 명이 또 벗어나게 만든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모든 거를 합류화시키는데 목적을 두란 말입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주인공에다 합류화시키는 거, 그거를 목적을 삼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냥 다시금 깨상이 돼버리고 맙니다. 그러니 진실한 믿음을 갖고 바로 생활하는 그 속에서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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